오늘 학교에서 남은 업무처리와 짐정리를 했다. 그냥 생각보다 무덤덤했다. 아침부터 학교에 갔으나, 일은 아주 늦게야 끝났다. 일은 지금까지 받은 공문을 차례로 정리하고 나서 색인목록을 만드는 것과 교과서 대금을 정확하게 계산하는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사실, 오늘 뿐만 아니라 어제도 학교에 가서 일을 했으나 다 끝내지 못한 터였다.

   그러나 오늘은 점심도 생략해 가며 일한 덕분인지 저녁 5시 반쯤에는 모든 일을-만족스럽지는 않지만-끝낼 수 있었다. 신경을 조금 더 쓴다면 시간이 더 필요했지만 오늘은 도서부 학생들이 우리집에 놀러 오는 날이기 때문에 딱 그 시간까지만 여유가 있었다. 짐을 한가득 손에 들고 택시를 기다렸다가 겨우 택시를 타고 집에 왔다. 집은 아주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어린 손님을 맞을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간단하게 김치전으로 요기를 하고 아이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밥상을 꺼내어 닦고 책상도 대충 정리하고 앨범도 꺼내 놓았다.

   7시 전까지는 온다던 녀석들이 7시 30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소식이 없길래 속으로 '어디서 휴지를 사들고 오는가 싶었다.' 7시 30분쯤, 드디어 벨이 울리고 명랑한 소리로 인사를 했다. 안해가 정성껏 준비한 김치전을 내놓고 오렌지주스를 준비했더니 모두 즐겁게 먹느라 야단들이었다. 아이들은 아무 것도 아닌 일에도 깔깔대며 웃어서 집안이 떠나갈 듯 시끄러웠다. 거리낌없이 웃고, 떠들며 마음껏 즐기는 모습이 '살아있다는 건 저런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자장면, 짬뽕, 탕수육을 시키고 아무래도 음료수가 부족한 것 같아서 아파트 앞 수퍼에 갔다 왔다. 오면서 아이들과 함께 놀려고 윷도 샀다. 모두 둘러 앉아 결혼 사진과 야외촬영, 신혼여행 사진을 보며 간식을 먹고, 음료수를 마시고 있으니 주문한 음식은 금방 왔고, 흔한 음식에도 맛나게 먹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리 예쁠 수가 없었다.

   저녁을 거의 다 먹고 준비해 둔 윷놀이를 시작했다. 모두 12명이 모여서 3명씩 한 모둠이 되고, 그래서 4모둠이 윷놀이를 했다. 흥미진진한 윷놀이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정말 모를 것이다. 윷놀이가 원래 긴장감이 높고, 변수도 많은데다 말을 어떻게 놓느냐에 따라서 의외의 결과가 자주 일어나는 놀이라 모두 윷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재미있었다. 게다가 조금 더 재미있게 하기 위해서 몇가지 규칙을 새로 정했기 때문에 모두들 더욱 좋아했다.

   윷놀이를 두 판 하고 나니 어느새 10시가 다 되었다. 그 때쯤엔 애들을 보내야 하지만, 조금 늦게 온 녀석들도 있고, 모두 일어서는 걸 아쉬워하는 것 같아서 지금껏 계발활동하면서 배운 단체놀이를 했다. 처음엔 '홍삼' 게임이라고... 신나게 떠들면서 할 수 있는 게임이었는데, 벌칙은 '노래부르기' 이제 3학년 올라가는, 수줍음이 많은, 수용이가 세 번 걸려서 노래를 불렀다.

   다음 게임은 모둠 놀이로 '야채'게임이라는 것인데, 모 방송국에서 하는 '후라이팬' 놀이랑 하는 방법은 비슷하지만, 조금 더 어렵다.(예전부터 알던 게임이라 방송국에서 이 게임하는 거 보고 좀 황당했다.) 이 게임의 벌칙도 역시 모둠별로 노래부르기. 신나게 게임을 했는데, 영근-은진-아름 모둠이 노래부르기 벌칙이 걸렸다. 영근이는 '내 여자니까'를 부르고, 은진이와 아름이는 '어머나'를 열창했다.

   이러다보니 시간이 한참 지나가 버렸다. 서둘러 가야할 시간이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일어나기 싫어하는 눈치였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마무리는 안해와 나의 노래부르기였다. 우리는 아이들 앞에서 자주 부르는  '바위처럼'을 불렀다.

   이것으로 신나고 유쾌한 집들이는 끝났다. 간단하게 뒷정리를 하고 있으니 또 이쁜 아이들에게서 집에 잘 도착했다는 문자가 왔다. 나도 답 메세지를 보냈다. 오늘 너무나 즐거웠다고, 같이 와 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이제 너희들이랑 헤어져야 하는 게 너무 아쉽다고 그랬다.

   지금까지는 같이 있을 땐 정을 듬뿍 주고 받으며 지내고, 헤어져야 할 때는 그냥 웃으면서, 조금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헤어지자고 마음먹었었다. 그래서 종업식날, 아이들 앞에서 인사하는 날에도 그리 우울하지는 않았다. 그냥 싱긋 웃으며 가볍게 인사를 하고 내려왔었다. 그런 방식이 어쩌면 진한 아쉬움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은 너희들과 헤어지는 것이 무척 아쉽다는 말을 해버렸다. 집안을 대충 치우고 안해와 앉아 오늘 집들이한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었다. 안해는 아이들이 구김살이 없고 밝아서, 또 저희들끼리 잘 지내는 것 같아서 참 보기 좋다고, 준비하는 과정은 힘들어도 오늘 참 즐거운 집들이였다고 좋아했다. 나도 아이들의 찰랑거리는 웃음이 구석구석에 묻어 있는 것 같아서 집이 아직도 생기가 도는 것 같은 느낌이다.

   역시 아이들을 집들이에 초대하길 잘 했다. 몸은 조금 힘들었어도-특히, 안해가- 유쾌, 상쾌, 통쾌한 느낌이 이렇게 오래가니 말이다. 아무튼 좋은 밤이다.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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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굼 2005-02-27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네요^^같이 있었던 것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