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이 과제 편지는 얼마만이야? 까마득하네. 저번에 월든, 모임에 안 온 사람은 못 본 지가 한참 됐지? 기말을 앞두고 모였던 모임, 월든(데이빗 소로우, 이레) 읽고 얘기 나눈 것도 좋았는데…… 물론 책을 다 읽어온 사람이 적어서 책 이야기가 조금 피상적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하는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라고 생각해. 어쩌면 하고 나면 곧 사라지고 말 이런 얘기들이 무슨 소용이 있나 싶지만, 그래도 그냥 무작정 열심히 달리는 것과 어디로, 어떻게 달리는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열심히 달리는 것은 분명 다르지 않겠어? 지금은 비슷해 보여도 스스로의 의지로 달리는 것이라면 아마 우리는 분명 더 먼 곳에 이르게 될 테니까 말이야. 아무튼 지난 모임은 어설펐지만, 소박해서 더욱 좋은 시간이었다.
지금이 기말시험 전에 꿈꾸던 시간일 텐데, 어때? 행복한 순간을 즐기고 있어? 아니면 막상 꿈꾸던 시간이 되고 보니 예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는 시간이 계속 되고 있는 거야? 만약 그렇게 살고 있는 불행한 사람이 있다면 내가 슬프고도 무서운 이야기하나 해 줄까? 기말고사가 끝난 지금, 시간이 마구 흘러간다는 느낌이 드는 사람, 시험 치기 전에 하고 싶었던 그 무엇을 지금 하고 있지 않은 사람은 말야, 아마 대학을 가서도 똑같은 생활을 할 거야. 우리는 대학만 가면 무엇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 두잖아? 근데 그게 막상 대학에 가면 또 쉽지가 않거든. 그건 그냥 신기루일 뿐이고, 늘 스스로에게 하는 거짓말인 셈이지. 지금 이 순간을 자기의 계획대로, 의지대로 즐기지 못하는 사람은 대학에 가서 시간이 아무리 많아도-요즘 대학생들은 시간도 많지 않다고 하더라만- 마찬가지 일거야. 그러니 시험 전에 꿈꾸었던 대로 지금은 아주 짧은 자유와 여유를 만끽하시라. 무엇을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고, 네가 무엇을 하기로 했느냐에 따라 네 의지대로 지내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난 천상 잔소리꾼인가 보다.)
이번에 읽을 책은『한티재 하늘1,2』이다. 아직 책을 가져간 사람이 적어서 못 읽었지? 음, 이 책은 정말 나의 ‘추천도서 목록 넘버 원!’이다. 너희들에게 낯선-사실, 나에게도 그리 녹녹하지 않은- 경북 사투리 때문에 처음엔 몰입하기 힘들겠지만, 조금만 노력을 들인다면 금방 빨려들 만한 내용이니까 그때까지 참고 버텨줘. 아마 책의 구성 때문에 줄거리 이해하기가 그렇게 쉽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첫 번째 과제로 등장인물의 인생을 정리해 오렴.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의 삶의 여정을 좇아가 보시라. 혼자서 모든 인물을 다 할 수 없으니 좋아하는 인물 서너 명만 정리해 오면 된다. 또 소설에 읽어보니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의 삶이 짠하지. 그런데 이게 과장이 아니라 이것이야말로 이름 없이 이 땅을 살다간 우리네 조상들의 삶일 거야. 그래서 두 번째 과제는 가만히 이 사람의 이름을 떠올리면 한 없이 마음이 안타까워지는 인물을 생각해 오시라. 왜 특별히 이 인물에게 더 마음이 가는지 그 이유도 가만히 떠올리고 정리해 오시라. 세 번째 과제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역사적인 사건 조사하기. 민초들의 일상적인 삶은 역사적인 사건 때문에 영향을 받기도 하잖아. 그러니까 그런 사건의 배경이라든가, 결과를 중심으로 소설의 배경이 되고 있는 사건을 조사해 오면 된단다.
우리 모임은 12월 31일(월요일) 오후 3시부터 시작할거야. 모이는 곳은 3학년 4반 교실에서…… 그날은 올해 마지막 날이니까 오는 사람에게 내가 간식 쏘겠어. 특별한 일이 없으면 생활나누기(방학 계획, 들어 보려구) 하고 책 읽은 얘기 나누고 과제 발표하고 그러면 아마 4시나 4시 반쯤이 되지 않을까? 그 때쯤 마칠 예정이니까 그 날 자기 일정에 참고해라.
근데 우리 활동집 만들려면,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해야 하겠지? 일단 자기 자료부터 꼼꼼하게 정리해 두는 게 준비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이것만 잘 해두면 자료 모아서 정리하는 것이야 문제도 아니겠지! 그럼 모두의 건투를 빈다.
겨울방학에 조금 더 자라려고 애쓰는, 느티나무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