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잘 보내셨나? 나는 비가 온 걸 핑계 삼아 집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그냥 푹 쉬었지. 푹 쉬고 낫더니 개운한 게 아니라 더 푹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 그런 걸까? 밑으로 밑으로 계속 가라앉고만 싶다. 에구구, 아침부터 이런 우울한 얘기는 그만!
너희들에겐 지난 모임이 어땠어? 음, 난 한 마디로 멍했지. 뭔가 스텝이 엉킨 느낌? 애초에 설계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 실타래가 잔뜩 엉켜 있는 모습을 봤는데 그걸 어떻게 풀어야 하나, 막막한 느낌이 들더군. 내가 생각한 결론은 우리 모두 초심에서 좀 멀어졌다는 거야. 나 같은 경우만 해도 독서동아리 계속 하고 싶다,는 열망이 일상에 치이면서 가라앉은 걸 인정할 수밖에 없고, 너희들도 아, 모임에 들어서 열심히 해야지, 하는 간절함이 모임을 하면서 무뎌진 거 아닐까 싶어. “건네진 책은 다 읽는가?, 책을 읽고 네 의견을 보태는가?, 네 생각을 정리하면서 글로 써 보는가?, 숙제를 하면서 ‘왜’라는 생각을 해 보는가?, 모임에서 기본적인 예의는 지키고 있는가?, 모임에서는 상대방의 말에 집중하려는가?, 상대방의 의견을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고 자기 의견을 말하려는가?”
네 마음속의 대답은 어때? 이 물음에 대한 답이 전부 “아니다”라고 해도 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남아있으니 그나마 다행인 거 아냐? 앞으로 남은 모임에서는 위에 던져진 질문에 모두 “그렇다”라는 답을 할 수 있도록 조금 더 에너지를 쏟아내자. (나 역시 마찬가지고!) 지금껏 우리 모임이 자기에게 큰 의미가 없었다면 그건 풍성한 식탁을 준비하지 못한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너희들 스스로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도록 자극하지 못한 내 잘못이 제일 크기는 하다만…… (이건 내가 반성해야 할 문제고!)
자, 이제 지나간 일은 마음에 담아두자. 그리고 달라질 수 있도록 애써보자. 이번에 읽을 책 얘기를 해 봐야겠지? 박성우의 ‘거미’. 주말부터 읽고 있으려나? 마음만 먹으면 하루 만에도 다 읽을 수 있는 책이니까(하루가 뭐야? 한 시간 정도면 충분히 읽을 수 있을 거 같아!) 벌써 다 읽었어? 읽었으면 어떤 느낌이 들었어? 이 책으로 무슨 활동을 해 보면 좋을까? 먼저 책을 읽은 느낌을 써 오고, 마음에 들었던 시를 한 번 낭송해 보도록 하자. 시에 맞는 반주가 있으며 더욱 좋겠지? 그리고 그 시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낭송한 시를 읽고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도 함께 발표해 보도록 하자.(그리고 자신이 평소에 좋아해서 친구들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시가 있다면 함께 낭송해도 좋다.)
아, 생활나누기도 해야지? 생활나누기는 사연이 있는 노래 부르기. 자기가 부를 노래를 고르고 그 노래에는 어떤 사연이 있는지 설명한 다음에 라이브로 노래를 부르는 거지. 여기서 사연이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느냐겠지? 수많은 노래 중에 굳이 이 노래를 고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너는 어떤 답을 할까? 그 이유를 말하고 그 노래를 네가 부르면 된단다.[생각난다. 작년에 동아리 학생들과 처음 이런 주제로 생활나누기를 했는데, 실실 웃으면서 그냥 부를 노래가 없어서 애국가를 부르는 녀석이 있어서 나한테 혼났지.] 예전에는 꼭 노래방이 아니어도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는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요즘은 마이크가 없으면, 또 가사가 자막으로 나오지 않으면 노래를 못 부르는 것처럼 생각하더군.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닐 텐데 말이야.
아무튼 이번 모임은 더욱 기대가 된다. 한 마디로 문학의 밤인 거잖아? 시와 노래가 함께하는 밤이니까. 남들 다 자습할 때, 우리만의 공간에서 이런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생각만 해도 짜릿하지 않나?(나만 그런가?) 시간은 다음주 목요일인 20일이네. 장소는 아직 협의는 안 됐지만, 일단 음악실에서 보는 걸로 하자구.(합창대회 언제 하는지 알아봐야지.) 그럼 멋진 밤을 위해 노력을 많이 해 주길 바래. 늦었지만, 숙제글을 넘기고 나는 3학년 ‘자기소개서’의 글더미로 풍덩 빠져야겠다.
아까 점심때부터 숙제글 받으려고 여러 번 나를 찾아 온 친구들에겐 미안!
- 오늘은 어째 쫌 기운이 없는, 느티나무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