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강가에서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안도현 [그리운 여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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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4-12-06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서재에도 올려둔 시네요... 생각나서 찾아봤더니 9월 어느날 이런 댓글을 달아둔...

"어딘가 잡지에서 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때는 정보여고 3년차였다. 차가운 강물 속으로 뛰어내려 형제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눈발이 마치 우리 아이들 같았다. 정말 그랬다. 힘들게 하루하루 버티는 어떤 아이들... 내가 살얼음이 되어 보듬어주고 받아줄 수 있을까? 생각은 그렇게 말짱했는데 돌이켜보면 우리는 서로에게 많은 상처도 준 것 같다. 인문계 고등학교로 옮긴 지금 가끔 너무 일찍 삶을 알아버리고 온 몸으로 힘겨워하던 그 아이들이 그립다."


겨울방학 보충을 우리 반 아이들 23명이 하지 않겠다 합니다. 담임의 입장이 난감하네요. 성적과 공부라는 매개 없이 그저 온 몸으로 삶을, 하루하루 생활을 고민하고 아파했던 그 시절이 조금은 그리워요. 이 역시 하나의 삶이며 생활이라면 할 말 없지만... 그래도 좀더 본질적인 것에 대한 고민이라는 차이가 있겠지요? 시험에, 점수에 방해받지 않고 아이들과 맘껏 사랑하며 '공부'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