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방학 잘 보냈어? 벌써 개학한 지 일주일도 더 지났는데, 그동안 3학년은 중간고사 기간이라서 난 오후엔 주로 자리를 비웠지. 그래서 이렇게 늦게야 숙제를 낸다. 우리 방학 동안에 뭘 좀 해 보려고 했는데, 나의 게으름 때문에 겨우 영화 한 편 본 게 다였네. 아쉽다. 이런 아쉬운 마음을 잊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겨울에 다 풀겠어.(쫄지 마!) 그 땐 내가 너희들을 괴롭힐 거야.
이번 모임은 다음 주 목요일에 할게. 아, 그리고 2학기에 달라진 점 한 가지. 이제부터는 목요일 9교시부터 모임을 할 거야. 9교시엔 생활나누기라는 활동을 해 보겠어. 생활나누기는 일상적인 자기 생활을 되돌아보고 친구들에게 자기 생활을 얘기하는 거야. 이러면, 맨날 똑같은 일상인데 무슨 할 얘기가 있나, 미리 걱정하는 친구도 있겠지? 사실은, 너희들만 그랬던 게 아니라 지금껏 나랑 동아리를 했던 모든 학생들이 다 그런 말을 했지. 그런데 참 이상하지, 처음에 뚝뚝 끊기던 얘기소리가 모임이 거듭될수록 끊임없이 이어지는 걸 봤거든. 아마 너희들도 그렇게 될 거라고 믿어. 자기 자신을 사랑하려면 자기의 일상을 사랑해야 하고, 자기의 일상을 사랑하려면, 그 일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과정이 필요하겠지? 그러니 이번 모임을 위해 개학하고부터 나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나를 찬찬히 떠올려 봐 줘. 꼭 특별한 일이 아니어도 좋아. 그냥 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되, 그때그때 생각난 게 아니라 조금은 네 생각을 정리해서 말해주기만 하면 돼. 처음엔 내용을 적어 와서 발표하는 게 좋아. 쓰는 과정에서 많은 것들이 정리될 테니까 말이야.
생활나누기를 시작한 기념으로 특별한 주제가 있는 생활나누기 숙제도 낸다. 음 주제는 말이야. 친구들을 (심층)인터뷰 해 보는 건데, 제목은 당신의 밤이 알고 싶다, 이다. 한 마디로 친구들의 사생활을 캐는(?) 건데 평소 학교 다니고 있을 때 집에 가서 주로 하는 일, 자는 시간, 다음날과의 관계…… 등 집에 간 이후 잠들기 전까지의 모든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받아와서 얘기해 보는 거지.(물론 사생활 침해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발표할 때는 이니셜만 말해야겠지?) 난 항상 학교에서 시체처럼 자는 아이들의 밤 생활(?)이 궁금했거든. 주로 낮에는 잠들어 있는 친구들을 중심으로 인터뷰를 정리해 오면 좋겠다. 꼭, 평소의 밤이 아니어도, 주말 저녁도 괜찮고, 야자를 안 하는 학생의 생활도 괜찮다. 대신, 좀 깊이 있는 얘기를 끌어내주면 좋겠다. 그냥 학원 갔다 와서 몇 시에 잔다, 끝! 이런 거 말고, 왜, 라는 질문을 계속 던져서 그 친구의 속마음이 우리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네가 다리 역할을 잘 해주면 고맙겠어. 아무튼 기대해 볼게.
이제 이번에 읽을 책 얘기 좀 해 볼게. ‘철/예/거’로 시작하는 단어 중에서 고르라니까 ‘예’를 가장 먼저 선택하더군. ‘예술’ 관련 책이라고 생각했겠지? 그런데 ‘예수전’이라고 하니까 너희들의 표정이 떨떠름하더라. 우리 동아리 친구들 중에는 기독교(개신교, 천주교, 성공회, 그리스정교회 등)를 믿는 사람도 몇 있는 걸로 아는데, 설마 이 책으로 싸움이 나지는 않겠지? 아무튼 표정이 내가 마치 전도(傳道)를 하려는 건 아닌지 의심하는 분위기더라. 난 전도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어. 다만 ‘예수’라는 인물에 대해 보이는 사람들의 반응에 무척 흥미로운 대목이 있어서 골랐어. 아마 인류 전체의 역사를 다 훑어본대도 예수만큼 사람들에게 오해받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 같다. 너희들의 첫 번째 반응이 바로 예수라는 인물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지. 보(믿)는 사람에 따라 예수를 신으로 믿기도 하고, 역사적 실존인물로 이해하기도 한단다.
그러니 이 책을 읽고 김규항이라는 사람이 본 예수는 또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 잘 생각해 오렴. 그래서 내가 막연히 알고 있던 예수와 책을 읽고 나서 알게 된 예수는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해서도 글을 써 오시라.(꼭 써 오렴) 아, 그리고 이왕에 인터뷰하기로 했던 거 이런 것도 함께 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주변의 친구들에게 <당신이 알고 있는 예수는 어떤 존재(사람, 신)인가요?><또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나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이런 질문을 기본으로 해서 인터뷰해 오기. 음, 그렇게 하려면 빨리 이 책을 읽고 예수의 생애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있어야 할 것이다. 조금 늦었지만 알차게 준비해서 모임할 때 풍성한 말(言)식탁을 차려 보자. 새로운 시작이다. 준비 많이 해 오시라.
태풍이 몰려오는 여름밤에, 느티나무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