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을 가르쳤던 내가, 수능이 끝난 요즘, 바쁘다고 하면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모두들 '농담이시겠지' 하는 표정이거나 '아니 왜?'라는 얼굴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바쁠 일이 없지만, 사실 나는 요즘도 바쁘다. 물론 공부하느라 바쁜 것은 아니고, 고백하자면 '논다'고 그렇다.


   오늘은 교직원 조례 시간에 교사와 학급에 '구입도서 신청 목록'을 만들어서 돌렸다. 도서관에 신간도서를 넣어야 하는데, 교직원과 학생들의 희망도서가 당연히 1순위다. 평소에도 도서실 게시판을 통해서 신청을 받지만 구입할 수 있는 목록에 비하면 턱없이 적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약 800-1000권 정도는 살 수 있을 것 같다.(내 책이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다.)


   1-3교시까지는 도서실에 앉아서 책을 보려고 했으나, 몰려드는 3학년 학생들 때문에 잠시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책 빌리고 반납하러 오는 것은 물론이고, 대학에 넣을 자기소개서 검토해 달라는 학생들도 있고, 인터넷을 사용하고 싶다는 학생, 음악을 듣고 싶다는 학생, 재미있는 책을 골라달라는 학생, 나에게 개인적인 부탁을 하러 오는 학생.(주로 복사 부탁, 사무용품 빌리러 옴 ^^;;) 나는 도서실에 온 아이들과 사진을 찍었다.(거의 애원 수준이다. 이제 한 200명쯤 찍었는데, 12월까지 찍는 건 끝내고, 방학 때는 편집 작업을 할 것이다.)


   4교시에는 점심을 먹고 점심시간에는 도서실에 앉아서 대출/반납 업무를 했다. 5교시에도 자기소개서 두 개 검토하니 시간이 금방 갔다. 계속해서 추운 도서실에 앉아 있었더니, 한기가 느껴져서 교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앞으로 도서실에서 사야할 책을 고르기 위해 '추천도서'로 나와 있는 책을 구경했다.


   퇴근시간이 지나 텅 빈 교무실에 앉아 있으려니 더욱 썰렁했다. 날씨도 추운데 집에 바로 갈까 하다가 오늘은 저녁 시간에도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학교 근처의 목욕탕에서 목욕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와 저녁시간에 도서실 문을 열었다. 저녁 시간은 점심 시간처럼 붐비지는 않아도 그래도 꾸준히 찾아오는 학생들이 제법 있다. 도서실을 정리하고 학교를 나서니 7시 20분.


   따져 보면 뚜렷하게 무엇인가를 한 건 없는데, 하루를 훌쩍 지나가 버렸다. 하루하루의 시간이 정말 움켜쥐었던 모래알처럼 스르르 흘러버리는 것 같다. 괜히 마음만 더 조급해지는 것 같다.


   읽어야 할 책도 많은데... 오늘은 여기까지! 조금 정신이 맑을 때 몇 페이지라도 더 보자! 나에겐 서른 네 권의 책이 쌓여 있지 않은가? (이번 겨울 방학까지는 책 한 사도 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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