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둥! 북을 울려라, 두둥! 두둥! 드디어 2012년 글밭 나래 우주인 첫 번째 모임을 했다. 뭐 다른 특강 들으러 가느라 못 온 친구도 있었고, 목요일은 도저히 시간이 안 돼서 못 하겠다는 친구도 있어서 모두 다 모이지는 못했지만, 그까짓 게 뭐 대수랴! 미약한 출발이나마 우린 이미 달리기 시작했으니 그 끝을 향해 달려갈 밖에…….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첫 번째 모임하고 다들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예상했던 분위기였을까? 아니면, 조금 실망했을까? 아님 모두들 진지하고 예리한 지적에 깜짝 놀랐을까? 음, 나부터 말한다면, 좀 놀랐다. 와, 숙제도 대충 해온 것 같은 분위기더니 다들 자기 숙제 발표할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주 엄청난 글을 써 왔더군. 전부 자기만 못한다고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모두들 개성 있는 시각과 깔끔하고 정돈된 글쓰기로 자기 생각을 잘 표현했더라. 내가 너희만 했을 땐 어땠을까, 생각해 보면 이런 발표 자리엔 정말 주눅이 들어 끼지도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 내가 처음에 요구했던 것처럼, ‘듣기’에만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다면, 그래서 발표자에게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자세를 갖춘다면 정말로 행복한 독서토론 모임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해 봤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저녁 전 9교시를 활용할 수 없어서 생활나누기를 못 한다는 거야. 이것도 정말 중요한 아이템인데…… 아쉽다. 기억을 떠올려 보면, 지난 모임 시작하면서 내가 요즘 어떻게 지냈어?, 이렇게 물었는데 다들 딱히 할 말이 없다고 했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겠지만, 나는 자신을 사랑하고, 늘 자기 생활을 살피는 사람은 날마다가 새로운 날들이라고 믿는다. 그러니 너희들의 오늘을 잘 떠올려 보렴! 사실, 생각해 보면 하루하루가 다 다른 날이지 않아? 똑같은 수업을 들어도 느낌이 다 다를 것이고, 어제 본 친구도 오늘 보면 또 다른 느낌일 수 있는데…… 조금 더 예민한 감각을 벼려주면 좋겠다. (아, 근데 생활나누기는 어떻게 하지?)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인생, 읽었어? 우리가 푸구이처럼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운명을 만약 미리 알게 된다면 어떨까? 무서울까, 슬플까, 담담할까, 괴로울까, 체념할까…… 내 미래가 저렇게 예정되어 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가? 그러면…? 그런데 예전에 내가 이 책을 읽고 작가가 우리에게 말하려는 메시지는 써 놓은 게 있는데, 대충 내용이 이렇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 것 같다. 이런 인생도 의미가 있는가? 우리가 죽을 고생을 하며 살아도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지 않는가? 그런데, 왜 우리는 살아야 하는가? 작가 자신은 이런 말로 스스로의 질문에 답을 해 두고 있다. ‘사람은 살아가는 것을 위해서 살아가지, 살아가는 것 이외의 그 어떠한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나도 작가의 질문을 씹어본다. 우리도 가끔은 사는 것이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곧잘 말한다. 그러면서도 늘 오늘의 고통스러운 삶이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줄 밑거름이 되리라고 기대한다. 그래서 결국엔 현재 우리의 고통스러운 삶이 지나가고 나면 이 고통 속에서 피어난 그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기도 한다. 그러나 위화의 소설을 읽고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해 보건데, 우리가 눈물을 보태며 고통스러운 강을 건너더라도 그 강 건너엔 우리가 기대한 그 무엇도 없을 것이라는 데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우리네 삶은 비루한 것인가? 희망은 어디에도 없는 것인가? ‘희망이 없다’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삶이 비루하다는 데는 대체로 수긍한다. 그러면 그런 비루한 삶은 왜 살아야 하느냐고?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돌려주고 싶다-비루하다고 살지 않으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느냐고? 살아간다는 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주어진 것이니 선택하고 말고의 문제를 이미 초월한 문제라고 말이다.
(위화, 인생, 을 읽고 쓴 감상문 중에서)
아마 부모님이 이 소설을 읽으신다면 내 말에 공감하시리라 믿는다.(아직 너희들은 앞길이 창창하니 이런 내 말이 잘 흘러들지 않겠지만! 그래서 무척 아쉽다.) 조금 더 인생의 속살을 맛 본 사람들은 알기 마련이거든. 눈물의 강을 건너면 아름답고 찬란한 무엇인가가 우리를 맞아줄 것이라고 믿지만-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열심히 공부하지!- 사실은 그 강을 건넌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을지 모른다구! 그럼 왜 열심히 살아야 하냐구? 그건, 글쎄다. 그걸 알면 내가 이러고 있지는 않겠지.
그만하고! 이제는 우리 모임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우리 모임은 다음 주 목요일인거 다들 알고 있지? (24일) 책의 완독은 기본 중에 기본!(이런 걸로 잔소리 안 하게 해 주렴.) 글쓰기 숙제는 “나의 인생은 어땠나”라는 주제로 너희들의 부모님을 인터뷰 하는 거지. 일단 부모님을 통해 알고 싶은 너희들의 인생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질문을 만들어 보렴. 그리고 그 질문을 앞에 두고 부모님과 얘기를 해 보는 거야. 너희들은 잘 기억도 나지 않는 것도 좋겠지. 예를 들면, “내가 태어났을 때 엄마(아빠)는 어떤 기분이 드셨을까?”, “아주 어릴 때 나는 어떤 아이였나?”, “나 때문에 엄마(아빠)가 가장 자랑스러웠던 적은 언제였나?” 뭐, 이런 질문지를 만들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아무튼 그런 질문지를 열 개를 만들고 부모님과 앉아서 얘기를 해 봤으면 좋겠다. (인터뷰이가 부모님인데 인터뷰의 주제가 인터뷰어인 거 좀 아이러니하지 않니? 그래서 더 재밌을 거 같은데?)
부모님과의 인터뷰가 부담스럽다면 이건 어때? 1) 내 인생 최고의 사건과 내 인생 최악의 사건!이라는 주제로 각각 사연을 소개하는 글을 써 올 것! 2) 내 생애 80번째 생일을 맞아 써보는 가상의 자서전을 완성해 오는 것이야.
여행을 코앞에 두고 이 글을 받아가는 너희들의 마음은 어떨까? 종이만 받아 두었다가 여행 가서는 마음을 홀딱 제주도에 빼앗기고 이 숙제는 잊어버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근데, 그래도 좋아. 아니, 그래야 해. 여행 가서는 여행자의 눈으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렴. 지금의 너희들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자기 인생에 최선을 다하면 사는 거야.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생각보다 못 나온 중간고사 성적이 아니라, 지나간-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그 순간에 어쩌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사실일 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언제나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 그러니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줘. 여행가서는 마음껏 보고 듣고 느껴라.(짧은 생활나누기로 제주도 여행기를 들려달라고 할 테다. 어디가 가장 맘에 들었는지 말할 준비를 해 오기를…… 이러면 맘껏 즐길 수가 없으려나?) 어쨌든 잘 다녀오시라.
비 오는 늦은 밤에 느티나무가 쓴다.
[덧붙임]
고백하자면 이 숙제글은 2년 전에 내 준 숙제글을 다듬고 고친 글이야. 2년 전에도, 그 전 해도, 또 그 전 해에도 위화의 ‘인생’ 이라는 책을 아이들과 읽었었지. 그런데도 이번에도 이 책을 또 골랐어. 이제 책읽기를 시작하는 너희들에게 가장 권하고 싶은 책이거든. 내가 아주 유명하고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라서 내가 추천하는 책을 수많은 사람들이 읽게 된다면 나는 어떤 책을 추천할까 생각해 봤어. 고심 끝에 위화의 이 감동적인 책을 고를지도 모르겠다.
- ‘인생’을 읽고 울지 않는다면, 아직 당신은 인생을 모르는 것이다. 이 책에 대한 나의 헌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