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벌을 대신할 방법을 고민합니다(하)

송승훈(광동종고)

 

5. 체벌에 대한 잘못된 대안들
5-1. 때리는 것보다 더 학생들을 꽉 잡을 수 있어요! : 빽빽이
   백지를 주고서 거기에 깨알같은 글씨를 꽉 채워오라는 벌이다. 전국적으로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는 벌로, 학생의 모든 삶의 영역을 제약하는 최악의 벌이라 할 만하다. 이 벌은 ‘공부를 시킨다’거나 ‘애들을 잡아야 한다’는 선의를 내세우지만, 빽빽이가 공부가 되리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우매하다 하겠고, 만약 학생들을 잡아놓겠다는 의도라면 그것은 일상의 식민화라 하겠다. 겉으로 보기에는 깨끗한 벌 같지만, 빽빽이를 해오지 않으면 가혹한 체벌이 기다리고 있기에, 체감 공포는 최고다!!! 일상의 영역을 식민지화하는 벌이어서, 학생들은 머리가 점점 나빠진다. 학습의 관점에서도 폐해가 아주 심한, 그리고 몸으로 느껴지는 고통도 아주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도 최고인 벌로, 이 벌이야말로 ‘가혹행위’로 규정하고 교육법으로 금지시켜야 한다.

5-2. 이렇게 감동이 오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 반성문 쓰기
   옆자리 선생님이 감동을 받은 표정이다. 그러면서 한탄한다. “애들이 쓴 반성문을 보면 어휴 눈물이 날 정도로 가슴이 찡~한데 왜 하는 짓은 계속 그 모양인지 모르겠어요.” 나는 그 말을 들으며 가슴이 철렁~했다. 그리고는 아~하고 속으로 신음을 삼켰다. ‘선생님 그거 아니에요. 그거 다 사기에요.’ 아이들은 교사의 마음을 이미 알고 거기에 맞춰준다. ‘요즘 아이들을 뭘로 보는 겁니까.’ 반성문을 일상적으로 써오게 하는 교사도 있는데, 그 교사에게 속한 아이들은 반성문 몇 장을 정말 순식간에 다 써낸다. 정해진 각본이 뻔한 글이어서, ‘무조건 잘못했습니다. 선생님 좋은 분이십니다. 제가 죽일 놈이지 선생님 같은 분이 신경써주시는데 그런 일을 하다니요. 다음부터 잘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반성문 쓰기는 학생을 사기꾼으로 만드는 지도방법이라 하겠다. 반성문이라는 글의 양식 자체가 전망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항복과 굴종의 표시밖에 안된다. 학생들은 그러는 척하는 것이고. 거기에 교사가 자기만족할 뿐이다. 이에 대한 대안은, 생활일기나 생활이야기 또는 그 상황을 그대로 재현하는 글을 쓰게 하는 것이다.

5-3. 학교판 박정희 향수? : 해병대 체력단련
   요즘 와서 왜 이런 방식이 자주 텔레비전에 등장하는지 답답하다. 고생을 안 해 봐서 아이들이 버릇 없다는 생각 때문일까. 세상이 어지럽다 보니 과거 독재자들을 난데없이 조명을 받더니만, 이제는 그간 계속 청산의 대상이던 군사문화가 학교에서마저 대안 이미지로 자꾸 제시된다. 사회에서 박정희 향수가 부는 것과 비슷해서, 예민하게 주의해야 한다. 물론 집단체력단련도 교사가 함께 학생과 똑같이 뛰면 교육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칫 체벌을 하지 못하게 된 데 대한 보복으로 가해지는 과도한 육체훈련이라면. 또는 잘해주면 기어오른다며 학생들이 아무런 문제제기도 하지 못하게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무력시위라면.
   그리고 짚고 넘어갈 것 한가지가 있는데, 선착순 뛰기다. 왜 힘없는 아이들은 두 배로 벌을 받아야 하는가. 체력이 약한 아이들은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아도 강한 아이들보다 힘이 더 드는데, 힘이 없는 아이들이 또 운동장을 돌아야 하는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선착순 뛰기는 동료를 밀쳐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비교육적 가치를 담은 벌이다.

5-4. 이거 체벌을 대체한다는 제도 맞아요? : 벌점제도
   벌점제도는 아무래도 학생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것 같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이 제도를 칭찬하는 학생은 별로 보지 못했다. 교사들 또한 떨떠름한 표정들이다. 체벌을 대체한다는 이 제도에 대한 반응이 왜 이럴까?
   첫번째는 벌점을 주면서도 할 체벌은 또 다 한다는 문제제기이다. 때리시던 분들은 벌점을 주면서도 못내 아쉬운지 손을 댈 때가 많은 모양이다. 과거에는 때리고 끝났는데, 이제는 때리고서 벌점까지 준다는 것이다. 벌점제가 체벌을 없애기는커녕 통제를 위한 족쇄로 변하는 순간이다. 과거에는 교문에서 복장이 걸리면 한두 대 맞고 벌 쓰면 끝났지만, 이제는 한두 대 맞고 벌점 받고 엎드려뻗쳐까지 하고 와야 한다는 불만이다.
   두번째는 벌점제가 주는 스트레스가 크다는 불만이다. 생활하는 과정 그 자체가 평가의 요소가 된다는 사실은 무척 아름다운 이야기처럼 들린다. 시험성적이 아니라 생활 태도가 평가 요소라니, 꼭 인성교육에 한걸음 더 다가선 것 같다. 그러나 여기에는 문제가 많다. 벌점을 받았다고 그 벌점을 상점으로 대체해야 한다며, 만만한 선생님께 목숨 걸고 쫓아다니는 모습하며, 상점을 많이 받아 나중에 선행상을 받는 학생을 보면 묵묵히 제 일을 소리없이 하는 학생이라기보다 요령있게 어른-교사에게 잘하는 학생일 때가 많고(그래서 두뇌좋은 일진회 짱이 선행상을 탈 뻔한 적도 있다), 좀 불러다 특별실 청소를 시키려 해도 ‘상점 주실 거죠? 안 주면 안 해요’ 하고 싹 돌아서는 아이들을 보게 되고, 이거 영 벌이 벌 같지 않고 상이 상 같지가 않다는 원성이 자자하다.
   이 제도가 갖는 문제는 운영하면서 고칠 문제가 아니라, 제도 자체에 내재한 모순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더구나 본래 취지대로 시행해도 문제가 많은데, 본래 취지마저 왜곡해서 이 제도를 시행한다면 어떨까. 벌점제도가 처음 시작될 때 어느 학교 풍경이다. 교사들 전반적으로 반대하자, 어느날 갑자기 교장의 명이라며 실시했다. 학생부 교사들이 다짐하던 목소리가 들린다. “맛을 보여줘야 해. 그렇지 않으면 벌점을 우습게 본대두.” 그 앞에서는 '모래시계', '삼청교육대'에서 본 군대 유격훈련 피티체조가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다. 끝나고 여학생 몇몇은 담임선생님한테 가서 눈물 흘리고 있고. 이거 벌점제인가? 아닌가?

   벌점제는 일상의 짜증화다.

   그리고 체벌? 사라지지 않았어요.


6. 글을 마치면서 : 남은 이야기
   체벌에 대해 글을 쓰다 보니, 꼭 황색저널처럼 되어버렸다. 그러나 어쩌랴. 이 모든 게 오늘날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는 실제 상황인 것을. 교사인 내가 신나는 학교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하고,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맥이 풀린다. 추한 현실을 자꾸 드러내야 현실에서 자유가 점점 더 넓어진다고 하니, 그 말을 믿을 뿐이다.

6-1. 현상을 보고 욕하는 것 당연하지만 원인을 살펴달라,
   “교사 집단을 범죄자 취급하면서는 교육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이 말은 나에게 무척 굴욕적이다. 비굴하게까지 느껴지는 변명이다. 욕먹을 게 있으면, 욕먹는 게 당연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아쉬운 것도 있다. 교사집단의 엉망인 행태에 대해 비난하면서, 왜 교사들이 그렇게 나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파고드는 목소리를 보지 못했다.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난다면, 아궁이를 살펴야 하는 법이다. 문제를 일으킨 교사 몇을 쳐버린다고 해서, 낡은 학교사회가 개혁되리라 믿는가.
   돌아보면 학교 사회란 곳은 얼마나 비민주적인지! 일방전달식의 교무회의, 3년 안 된 교사가 교무회의에서 발언하면 눈치 주는 분위기, 논의하다가 말이 막히면 ‘학교는 교장의 명에 따라 움직이게 되어 있다’고 말하는 오만함이 있는 곳. ‘진정 중요한 것들은 외면하면서 지나쳐도 별 상관없는 작은 잘못에만 매서운 우리들’(김명인, '동두천')이 우리네 교사들의 모습이다. 군것질할 돈을 모아 굶주린 북한 사람들을 돕게 했다고 교무실에서 교감에게 멱살 잡힌 교사가 있는 한, 교사 집단의 낡은 행태는 영원할 것이다. 교사가 교사답게 교단에 설 수 있을 때, 교사의 부정적 모습들도 자체 치유될 수 있다.
   건강한 교사가 나올 수 없는 환경에도 관심 가져주기를! 이런 학교상황에서는 멀쩡한 교사도 '여고괴담'에 출현하기에 적당한 교사가 되기 쉽다.

6-2. 최고의 의술이란 병이 안 생기게 하는 것
   규칙과 법은 제 역할이 있다. 규칙과 법을 적용하고, 규칙과 법의 힘에 기대어서 이 문제를 푸는 것은 한 방법이다. 하지만 세상의 여러 일들 가운데는 규칙과 법으로만 해결되지 않는 일도 많다. 살이 썩어서 고름이 찼을 때 그 고름을 짜버리는 일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평소 몸을 건강히 해서 곪는 곳이 생겨나지 않게 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교사집단의 건강한 부위를 계속 키워주어서 곪은 부위를 치유한다는 생각도 함께 하면 좋겠다. 언제나 최고의 의술은 병을 생기지 않게 하는 예방의학이 아닌가.
   사범대학 교사양성과정 문제도 이야기하자. 인간과 인간의 만남에 대해 고민할 내용을 교사양성과정에서 가르쳐야 한다. 지금 사범대의 열악한 현실에서 안주하는 교육과정에서, 체벌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할 교사가 어디 길러지겠는가. 왜 사범대의 교육과정은 그토록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문제와 거리가 먼가. 교사들은 제대로 된 감정 조절 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다. 체벌이 이토록 중요한 사회 쟁점이자 교육 과제라면, 그것을 대학에서 체계있게 가르쳐야 한다. 관점없는 초임교사들의 무분별한 체벌이 문제가 될 때도 있다.
   이렇게 체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나도 초임시절 한때 학생을 때리는데 재미를 붙인 적이 있었다. 한번 두번 때리다보니까,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딱 집중도 더 잘하고 해서 멋모르고 학생들의 종아리를 걷어올리게 하고 손을 댄 적이 여러번이다. 너무 엉망이라고 판단되는 학생을 아주 세게 패준 적도 있다. 대학 때 교육에 대한 공부를 소흘히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학문이란 본래 현실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대해 인류가 고민을 축척해온 성과라고 하는데, 우리 사회에서 공부는 현실과 지나치게 거리가 먼가 보다. 나는 열심히 여러 외국 상담이론가 이름을 외우고, 이론을 배웠지만, 내 눈앞에서 나를 열받게 하는 ‘학생 한 사람’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살아있는 목소리를 들은 바가 없으니 말이다.

6-3. 폭력에 주눅든 학생은 나-당신-우리 사회 전체다.
   폭력에 주눅든 사람은 짜증내는 언어를 사용한다. 합리적으로 의사소통을 해보지 않았기에, 늘 뒤에서 상대를 씹어버리기만 했던 것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말문을 틔워주면, 건설적인 이야기는 별로 안 나오고, 온통 투덜거림 천지다. 가끔 ‘애들 잘해줘봐야 기어오르기만 해’ 라는 말을 듣는데, 아이들은 실제 그러기도 한다. 민주적 의사소통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은 대화의 언어를 갖지 못하고 불평의 언어를 가지며, 본능적으로 약육강식의 논리를 내면화한다. 끔찍한 일이다.
학교를 바꾸는 일은, 우리 사회를 바꾸는 일의 한 출발점이다. 힘의 위계에 따른 복종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를 좀더 부드럽게 만드는 일이다. 우리가 비폭력적으로 가르친 아이들이, 나중에 이 사회를 바꾸어가리라는 꿈을 꾼다. 동시에 이 과정은 폭력에 오염된 내 몸, 내 삶을 바꾸는 일이라는 희망을 갖는다.
   이 글에서는 학교 안에서 교사와 학생의 만남에 주로 초점을 두었다. 그러나 앞으로 체벌에 대한 대안은, 학생 생활지도 차원의 고민이다. 그것은 한 학교 안에 한정되지 않고, 지역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실천하는 영역이다. 이미 학생은 학교를 벗이나 사회의 여러 곳에 머물고 있기에 그렇다. 이 부분은 아직 남겨진, 앞으로 해야 할 과제다. 학부모들의 몫이다. <雲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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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4-11-03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씁쓸하긴 하지만, [지각하는 사람은 5대 맞기]하고나서 우리반 지각자가 부쩍 줄어든 것도 사실이거든요...에이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