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론대회를 맡은 이유

   사실 토론대회 공문은 방학 전에 왔다는데, 나는 잘 몰랐다. 내 업무담당은 도서관 운영과 교과서 공급이기 때문에 토론대회 개최는 담당부서가 따로 있어서 아마 그리고 간 모양이다. 그러나 2학기가 시작되자 담당선생님께서 공문을 주시면서 나보고 행사를 맡아 달라고 하셨다. 굳이 딴사람의 일까지 떠맡아 가며 '착한 척'하고 싶지는 않았으나, 내가 아주 관심 있는 '토론회'였기 때문에 한 번 해보기로 결심했다.

  • 토론대회의 준비 과정

   우선 토론대회에 참가할 희망자를 모으는 일이 가장 큰 일이었는데, 학급 담임선생님들께 돌릴 안내문을 만들고, 학교장의 결재를 받았다. 각 학급에서 모인 토론자는 1,2학년을 합쳐 모두 11명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개인적으로 찾아와 '토론대회에 참가하고 싶다'는 두 명의 학생이 더 있었다. 본인이 하고 싶어하는 의지를 최고의 자질로 생각하는 나는, 당연히 승낙했다.

   토론의 주제는 이미 공문으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내가 별로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공문에는 '우리 사회에는 '잘못된 법'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경향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였다. 토론의 주제가 너무 도덕적인 답을 요구하는 편향된 경향이 있어서, 토론의 공정성과 토론자들의 합리적인 선택을 위해서 '잘못된 법, 지켜야 하는가?'로 큰 주제를 잡았다.

   첫 번째 예비모임에서는 모두 모여서 잘못된 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각자에 생각을 물었다. 그러니까 여섯명과 일곱명으로 의견이 딱 갈렸다. (ㅋㅋ 극적이었다.) 그래서 서로 모여서 토론팀장을 뽑고, 의견을 정리할 시간을 주었다.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 모임의 계획과 토론의 형식과 소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로 했다. 참고로 토론의 소주제는,

 - '잘못된 법'이란 무엇인가? (혹은, 어떤 법이 '잘못된 법'이라고 할 수 있는가?)

 - '잘못된 법'을 지키는 것이 옳은가?

 - '잘못된 법', 어떻게 바꿀 것인가?

이었다.

   두 번째 모임은 야간자율학습 한 시간을 활용해서 도서실에서 예비모임을 했다. 일단 토론의 형식은 교육방송에서 하고 있는 '청소년 원탁토론'의 형식을 빌리기로 했다. 저번에 나눠 준 토론 안내 자료에 나와 있는 소주제에 대한 내부토론과 자료를 찾는 시간을 주었다. 1시간 정도는 토론준비를 하기에는 아주 부족한 시간이어서 아우성이었다.

  세 번째 모임은 토론 대회 전날 저녁 8시에 모였다. 이번에는 두 팀이 모여서 지금껏 준비한 자료와 토론의 쟁점에 대한 기본 입장을 서로 설명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토론 당일날 서로 딴 영역에서 이야기를 하게 되어 토론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기팀의 주장을 정리하고, 자료를 찾는 시간을 두었다. 그 날은 비가 엄청 많이 내렸는데도, 늦은 시간까지 아이들이 돌아갈 줄 몰랐다. 겨우 10시 30분에야 도서실에서 아이들을 내보냈다.

  • 토론대회의 실제

   토론대회는 화요일 6,7교시. 며칠 전부터 도서실에 토론을 위한 좌석 배치를 해 두었고, 매점에서 음료수를 사서 자리에 두었다. 6교시가 끝나니까 슬금슬금 모이기 시작했으나, 모두 모이는데는 시간이 좀 더 걸렸다.

   드디어 토론대회 시작! 사회는 내가 맡았고, 가벼운 인사와 기조 발제가 이어졌다. 그런데 토론자들이 너무 긴장한 나머지 목소리들이 떨렸고, 억양도 약간 어색했다. 그러니까 생각도 굳어지는지 준비해 온 자료만 읽기에 바빴다. 그런데, 본격적인 토론이 시작되자마자 '잘못된 법'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는 쟁점도 없어지고, 감정적인 문제로만 치닫다가 생각을 정리할 휴식 시간을 갖게 되었다.

   다시 한 번 토론자들에게 토론의 소주제에 따라서 이야기를 해 보자고 했고, 너무 극단적인 예를 들어서 자기에게 유리한 영역에서만 토론하려고 하지 말라고 충고해 두었다. 두 번째 소주제부터는 준비해 온 자료와 자기 생각을 적절히 소화시켜서 제법 토론이 되기 시작했다. 세 번째 소주제에서는 한껏 토론의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그러나, 7교시도 마치는 종이 울렸다. 그러다보니, 결론도 흐지부지 되어버렸다.(아이들은 더 해 보자고, 아쉽다고 했지만 내가 수업에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마칠 수 밖에 없었다.)

  • 토론대회 이후

   다음날 점심시간에 아이들에게서 평가서를 받았다. 평가서에는 자기 평가와 토론자 상호간의 평가, 그리고 토론회 자체에 대한 평가가 담겨 있다. 토론 평가서를 꼼꼼하게 읽고, 자기 평가와 상호 평가를 통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1학년의 OOO 학생을 최우수 토론자로 뽑았다. (이 학생은 10월 19일에 열리는 부산시토론대회에 학교 대표로 참가한다.) 토론회를 참관하러 온 아이들 세 명에게도 토론회 감상문을 한 번 써 보라고 했다. (참관한 학생 중에는 자기가 참가하지 못해서 무척 아쉬워하는 학생이 있었다. 토론회 감상문은 빨리 받아서 정리해 두어야겠다.)

   이것으로 열흘 동안 준비했던 토론회가 끝났다. 요즘도 토론회에 참가했던 그 아이들은 나에게 그 날의 토론회를 이야기한다. 무척 별난 경험이었던가 보다. 더불어 나도 아이들과 무엇인가를 만들어간다는 기쁨에 바빴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열정을 확인하는 일은 즐겁다. 언제든 토론대회의 주체는 내 몫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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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4-09-25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 정리의 황제... ^^ 이 글 읽으니 토론대회, 함 해보고 싶어지는걸요. ^^ (우리 학교는 이런 행사에는 무관심한 듯 잠잠~ 해요.) 그리고 토론대회 때 오고 갔던 아이들의 구체적인 발언, 주장들도 읽고 싶네요. 정리해주실? 샘은 늘 행복을 만들어가시는 것 같아요.

느티나무 2004-09-28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캠코더로 찍기도 했는데... 보여줄 정도는 안 되는 것 같아요 ^^ 혹시 다음에 편집하게 되어 수업시간에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거기까지 가려고 해도 일이 많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