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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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애란, 김애란 참 많이 들었다. 그러니 그 좋다는 소설집 달려라, 아비를 사서 읽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다시, 침이 고인다를 읽었다. 안타깝게도 그의 상상력과 감성이 내 마음에 와닿지는 않았다. 하긴 나는 김애란뿐만 아니라, 도통 2000년대의 한국 소설에 적응하지 못하는 박제된 독자인 듯하다. 아마 내가 박제된 독자가 된 데는 소설의 문장에 대한 내 무딘 감수성이 큰 원인일 것이다. 부끄럽게도 나는 문장에 대한 심미안이 없다. 그러니 문장이 아름답다는 글에는 난 항상 무덤덤하다.

 

   작년(2011년)에 문단의 가장 큰 이변이 황석영, 박범신 등 노장들의 소설과 나란히 걸린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이 평단과 대중의 관심을 두루 받았다는 것이라는 걸 기사로 본 적이 있다. 그런 기사를 읽으니 소설은 안 읽었어도 김애란이라는 소설가는 이미 내 마음 속에서 대단한 작가로 자리잡고 있었다.(이렇게 귀가 얇다.) 그런데 정작, 김애란의 소설 읽기는 연속해서 실패한 경험이 있어서 선뜻 손이 가지 않다가 '결국엔 읽어야 할 책'이라는 어떤 끌림때문에 작년에 거의 마지막으로 책을 살 때 슬쩍 끼워 넣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두근두근 내 인생에 대해 쏟아지는 찬사에 비해서는 역시나 좀 덤덤했다. 나빴다는 게 아니라, 폭죽처럼 쉴 새 없이 터진 찬사에 나도 모르게 큰 기대를 하면서 소설을 펼쳤나 보다. 그녀 특유의 재기발랄한 문장이 반짝반짝 빛나는 소설이라는 평을 해 놓은 평론가들의 양식이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니였는데, 이런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분명히 나랑 똑같은 문장들을 읽었을텐데 평론가들은 역시나 허풍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론가들은 주말에도 바빠서 개그콘서트도 안 보나 봐!

 

   소설의 내용은 열일곱에 어쩌다 보니 자식을 낳게 된 부모와 그들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 속의 부모는 이제 서른네 살이니 그 아들은 열일곱 살이다. 열일곱에 낳은 그 아들은 이제 그 옛날 부모가 자기를 낳았던 부모의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그 아들은 희귀병인 조로증에 걸려 몸은 이미 여든 살이다. 소설은 가장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된 사람과 가장 빨리 늙는 아들이 나누는 삶과 사랑, 늙음, 그리고 죽음의 의미를 잔잔하게 묻는다. 

 

  소설을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점 두 가지를 꼽는다면, 소설의 각 장면들이 무척 선명한 인상을 남긴다는 것과 인생에 대한 젊은 작가의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소설의 각 장면들이 꼭 구체적이고 세밀한 묘사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데도, 각 장면의 모습이 선명하게 머릿속에 떠올려진다. 경쾌한 스텝을 밟는 춤꾼을 보고 있는 관객의 마음처럼, 소설의 속도감 있는 내용 전개는 독자의 마음을 살짝 들뜨게 만들어준다. 또한 나는 인간의 삶과 사랑, 늙음, 죽음에 대한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이 젊은 작가의 상상력에 놀랐다.  

 

   예컨대, 다음의 문장들을 뽑아 읽어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얼굴에는 가임기 여성의 자신만만함과 자랑스러움이 그득했다. 자기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몰라 '진짜 권력'처럼 보이는 청춘의 민낯이었다. (37쪽)

 

내 생각에 그녀들은, 아마 미안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활달함 혹은 친절함이란 누군가와 무의식적으로 이별을 준비할 때 나오는 태도 중의 하나니까.(41쪽)

 

나는 어머니의 짐승 같은 소리를 듣고 마음이 놓였다. '아, 나는 나와 비슷한 울음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태어났구나'라는 것과 '아, 내가 어머니께 무언가를 느끼게 만들었구나'하는 안심이 들어서였다.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어도, 어머니의 눈물은 적어도 내가 전혀 무가치한 존재는 아닐 거라는 믿음을 주는 그런 눈물이었다. (45-46쪽)

 

미숙한 아이의 눈을 통해 세상을 경험할수록 성숙해지는 부모...... 어딘지 원인과 결과가 바뀐 것 같지만 그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가장 어리게 사고할수록 가장 지혜로워지는 일들이 매일매일 일어났으니 말이다. (63쪽)

 

진짜 어른. 그런 게 어떤 건지 알 수 없어도, 심지어는 오랫동안 그런 대우를 받고 싶었으면서도, 아버지는 자신이 그걸 진심으로 원한 적이 한번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버지는 인생이 뭔지 몰랐다. 하지만 어른이란 단어에서 어쩐지 지독한 냄새가 난다는 건 알았다. (중략) 아버지가 어른이란 말 속에서 본능적으로 감지한 것, 그것은 다름아닌 외로움의 냄새였다. 말만 들어도 단어 주위에 어두운 자장이 이는 게 한 번 빨려들어가면 다시는 헤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무엇이었다. (67쪽)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을까?'

......

'자기가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고 싶어서.' (79쪽)

 

고작 열일곱살밖에 안 먹었지만, 내가 이만큼 살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다면, 세상에 육체적인 고통만큼 철저하게 독자적인 것도 없다는 거였다. 그것은 누군가 이해할 수 있는 것도, 누구와 나눠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몸보다 마음이 더 아프다'는 말을 잘 믿지 않는 편이다. 적어도 마음이 아프려면, 살아 있어야 하니까. (96쪽)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랑을 알아보는 기준이 있어요."

어머니의 두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그건 그 사람이 도망치려 한다는 거예요."

"......"

"엄마, 나는......엄마가 나한테서 도망치려 했다는 걸 알아서, 그 사랑이 진짜인 걸 알아요" (143쪽)

 

"그 느낌이 정말 궁금했어요. 어, 그러니까...... 저는...... 뭔가 실패할 기회조차 없었거든요."

"......"

"실패해 보고 싶었어요. 실망하고, 그러고, 나도 그렇게 크게 울어보고 싶었어요." (172쪽)

 

'이 아이, 모든 연애의 시작엔 반드시 음악이 있다는 걸, 벌써부터 알아차린 걸까?' (189쪽)

 

"근데 내가 마흔 넘었을 때 딱 그런 생각이 들더구나. 이제 내 몸은 나빠질 일만 남았다, 하는. 몸이 좋아 몸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산 게 지금까지의 삶이었구나, 앞으로는 뭔가 잃어버릴 일만 남았겠구나 하고 말이야." (298-299쪽)

 

'쿵...... 쾅...... 쿵......쾅......'

약하고 희미하지만 분명 거기 있는 소리였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의 파동 안에 머물렀다. 그 자장 끝 맨 나중에 그려지는 동심원이 토성 주위의 고리처럼 우리를 오목하게 감쌌다. 아주 오래전, 어머니의 뱃속에서 만난 그런 박자를, 누군가와 온전하게 합쳐지는 느낌을 다시는 경험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그것과 비슷한 느낌을 줄 수 있는 방법 하나를 비로소 알아낸 기분이었다. 그건 누군가를 힘껏 안아 서로의 박동을 느낄 만큼 심장을 가까이 포개는 거였다. (320쪽)

 

 

   이렇게 인생에 대한 예리한 상상력이 가득 담긴 문장을 옮겨 쓰고 보니, 이 소설에서는 재미뿐만 아니라 깨달을 수 있는 내용이 참 많다는 생각을 한다. 내 엉뚱한 생각의 뒷통수를 치는 내용도 있고, 막연하고 흐릿하던 생각의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나도 이젠 어느덧 이런 문장들을 읽으며, 마음속으로 '맞아, 맞아' 하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인생이그렇지' 하며 씁쓰레할 나이가 된 것이다.

 

   그러니 굳이 빛나는 문장이 아니어도 좋다. 문장의 미감(美)에 아둔한 이 독자가 '재기발랄한 문장이 반짝반짝 빛나는 소설' 이라는 평론가들의 밝은 눈을 따라가지 못해도 굳이 실망할 필요는 없다. 나에게 이 소설은  또 다른 측면에서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앞서 얘기했던 인생에 대한 아포리즘 같은 문장들만으로 소설의 재미는 충분하다. (이렇게 쓰고보니 그게 그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글의 앞부분에 썼던 내용은 좀 야박하지 않나 싶다. 그 야박함은 어쩌면 나에게만 쉽게 열리지 않는 문장에 대한 심미안을 갖춘 그들에 대한 눈먼 질투심일 것이다. 하긴 그 질투심의 화살은 과녁을 한참 빗나가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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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8 23: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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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9 10: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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