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 - 개정판
다카기 진자부로 지음, 김원식 옮김 / 녹색평론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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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적 반핵운동가이자 시민과학자인 다카기 진자부로 박사의 유언적 저서'라는 부제가 붙은 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은 내가 2011년에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다. 해마다 연말이면 한 해를 돌아보는 기사에는 원자력발전소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사고가 양념처럼 등장하지만, 올해는 일본의 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문에 특히 더 원자력발전소에 대해 세계적인 관심이 모아지기도  했다. 아마도 먼 훗날, 역사가들은 2011년을 원전에 대한 세계인의 인식이 전환되는 해로 기록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2011년을 마무리하는 12월의 중순에, 세계적인 탈원전의 흐름을 거스르면서 우리나라는 영덕과 삼척 인근에 새로운 원자력 발전소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원자력발전소 건설 계획을 밝힌 것이다. 원전의 안전 문제에 대한 불안감이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인데도, 항상 '한국 원전은 (일본과) 다르다, 안전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물론 이 말을 믿는 국민은 별로 없을 테지만, 어쨌든 원자력발전소는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단 우리 동네만 빼고!) 하는 생각을 가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원자력에너지에 대한 우리 정부의 오랜 홍보전략이 효과적이라는 방증이다. 아울러 우리들은 여전히 원자력에너지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기도 하다.  

 

   우리 학교에 토론논술 교육 전문가이신 선생님이 계신데, 겨울방학 중에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논술 특강을 해 보자는 제안을 하셨다. 배운다는 자세로 얼른 참여하기로 했고, 수업을 준비하는 선생님들끼리 모여서 논술 특강의 주제를 생각해 보기로 했는데, 대체로 <원자력 시대,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주제가 시의적절하다는 의견이 대세였다.

 

   각자 역할 분담을 했는데, 학생들에게 읽힐 책 선정은 내 몫이었다. 나도 원자력 분야에 대해서는 읽어본 책이 없는지라 알라딘을 돌아다니며 눈대중으로 고른 책이 세 권이었다. 우리나라의 원자력에너지 현황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 같은) <기후 변화의 유혹, 원자력>을 주 텍스트로 삼았고, 원자력발전을 옹호하는 입장의 <원자력, 대안은 없다>, 원자력발전의 효용성을 부정하는 <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을 부텍스트로 삼았다.

 

   우연히 주문한 부텍스트인 <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이 먼저 도착했기 때문에 읽기 시작한 책인데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점점 집중력이 생기면서 며칠에 걸쳐서 천천히 읽었다. 나로서는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이는 것이라 읽는 내내 흥미로웠고, 막연했던 믿음-신화-이 구체적인 사실로 바뀌는 재미도 함께 느꼈다.

 

   이 책은 한 평생을 일본의 원자력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해 온 다카기 진자부로(이름은 낯설었으나 저서 목록을 보니, <시민과학자로 살다>는 책은 이미 알고 있는 책이었다.)의 주장을 총체적으로 정리한 글이다. 일반 시민들의 원자력에 대한 문제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성격의 책답게 전문적인 용어는 거의 없고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쓰여졌다. 책의 성격에 맞게 내용도 원자력의 개념과 역사를 개괄하고, 우리가 원자력에너지라고 할 때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무한하다, 깨끗하다, 안전하다, 우수하다, 경제적이다' 라는 이미지가 사실과 다른 거짓된 믿음이라는 뜻의 '신화'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신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일본 정부를 비롯한 원자력 옹호 세력들이 어떤 전략을 쓰는지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또한 원자력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늘 보여주는 정부의 무능한 대처도 함께 꼬집고 있다.(이 책 보면서 느낀 건데, 일본 정부와 우리나라 정부가 원자력발전 정책에 대처하는 방식이 어쩌면 그리도 똑같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이렇게 하라고 누가 가르쳐주나?) 

 

   이 책에 따르면 원자력은 다른 에너지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형성 배경(화학반응이 아니라 핵반응)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처음 핵분열 현상을 발견하고는 이를 원자폭탄 같은 무기로 활용하기로 했다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이다. 종전 이후, 핵의 평화적 이용이 강조되었으나 초기에는 누구도 평화적(상업적) 이용에 회의적이었지만, 1960년대 이후 적극 도입을 주장하는 정부의 강력한 정책적 뒷받침을 받아 원자력 발전소가 처음 건설되기 시작했다.

 

   처음엔 원자력에너지를 '발전'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이용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었으나 그 희망섞인 기대에도 불국하고 결국 그 생산과정에서의 위험성 떄문에 '발전' 분야로만 제한되고 말았다고 한다. 이후 원자력발전소를 도입한 정부의 강력한 후원 아래, 1980년대말까지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신화'는 그 양상을 달리하면서 지속적으로 강화되어 갔으나, 원자력발전의 잇단 사고와 함께 이에 대처하는 정부의 무능력을 보면서 국민들이 서서히 그 신화를 의심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산업으로서의 원자력 시대는 서서히 사양화의 길을 걷게 된다고 주장한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 역시도 원자력발전에 대해서는 막연히 경제적일 거라는 생각을 해 왔다. 사람들이 지금과 같은 생활 수준을 유지하려고 한다면 에너지원으로서의 원자력은 '필요악'이라고 믿었다.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지만, 당장은 대안 에너지-아직은 주류가 될 수 없는-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을 과장하는 것이라고 짐작하기도 했다. 전체 에너지 생산량에서 신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금의 원자력발전소의 비중에 버금가려면 아직도 많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기도 했다. 따라서 지금은 생활 수준을 유지하려면 원자력에너지의 위험성을 감수해야만 한다는 것이 내가 내린 막연한 결론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좀 다르게 설명한다. 앞으로 더욱 전력자유화 추세가 본격화된다면 초기 자본이 많이 드는데다가 원자력 발전의 난제인 핵폐기물 문제(처리 비용이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를 떠안아야 한다는 점에서 그 어떤 전력회사도 원자력 발전에 뛰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따라서 이익을 위해선 지옥에라도 찾아가는 기업이 포기하는 사업이 원자력발전 사업이기 때문에 이 분야는 경제성이 없다는 것이다.  현존하는 매장자원의 경제성이야 말할 것도 없고, 곧 태양에너지를 비롯한 신재생에너지의 경제성도 엄밀히 계산하면 지금의 원자력에너지의 경제성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원자력 에너지를 유지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 (사양화의 길을 걷고 있다고는 하지만) 왜 원자력의 시대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는 것일까? 이 책에 따르면 원자력 에너지 도입은 경제성이든, 안전성이든, 지속가능성이든 모든 측면에서 문제가 많은데 왜 일본 정부는 이를 고집하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또한 1960년대 초반 일본 정부의 강력한 정책적 지원으로 발전회사에서 원자력 발전을 시작하게 되었다는데, 일본 정부가 재벌에 엄청난 특혜를 베풀면서까지 원자력 발전소를 짓도록 해야할 어떤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일본은 원자폭탄의 피해당사국이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가 원자력에너지를 서둘러 도입하려는 것을 잘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오히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반대편의 주장, 즉 원자력을 옹호하는 세력의 논리를 들어보고 싶었다. 다카기 진자부로 박사의 말처럼 원자력에너지에 대해 이렇게 명약관화(明若觀火)한 결론이 내려진다면 전 세계에 원자력발전소는 당장 가동을 중지해야 할 것인데, 독일 등 일부 국가는 가동중단을 선언하기는 했지만, 원전 강국인 미국, 프랑스를 비롯한 다른 여러 나라들은 원전 계속 정책을 밀고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나라들의 원전 옹호 논리는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어쩌면 다른 분야에서처럼 과학계에서도 같은 현상을 두고도 다른 해석을 할 수 있거나, 자신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데 필요한 자료와 통계를 이용해서 필요한 결론을 이끌어 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이 한 권의 책으로 섣부른 결론을 내리지는 않겠다. 아무리 도덕적으로 타당한 주장도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주장이라면 그 또한 거짓된 믿음인 '신화'에 불과한 것이 아니겠는가? 아직은 서로의 주장을 더 비교하고 검토해봐야겠다. (어째 결론이 좀 어정쩡하다.) 그러니 기다려달라, 아직은 생각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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