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오늘부터 학교 갈 일이 별로 없으니 이제는 그럴 일이 없다만, 학교를 나와서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 아이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내 얼굴에 아이스크림 귀신이 붙었는지, 나만 보면 '선생님, 아이스크림 사 주세요!'를 연발하는 아이들.

   그래도 나의 대답은 항상 "응, 알았어. 가까운 수퍼는 어디지?" 그러면서 아이들이랑 수퍼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린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은 두 번이나 그랬다. 나는 아이들이랑 군것질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학교 밖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훨씬 더 활기가 넘친다. 정말 고등학생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어쩌면 내가 아이스크림을 잘 사 주는 이유가 그런 모습을 오래 보고 싶어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아이들이랑 아이스크림 사 먹는 일은 아주 유쾌하다.

   오늘 만난 녀석들은 대뜸 "선생님, 더워요"라고 하기에, 모른 척하며 "더워? 그럼 이렇게~!"하면서 내 손부채로 막 부쳤다. ㅋㅋ 그랬더니, "이거 말구요, 아이스크림 사 주세요" 란다. 내가 "수퍼가 어디 있지?"라니까 말 없이 손으로 수퍼를 가리킨다. 수퍼 쪽으로 가다가 한 녀석이-전에 내가 학교 매점 아주머니랑 닮았다고 했더니, 뾰로통해서 나의 옆구리를 툭툭 찌른 녀석이다- "선생님, OOO OOO 아이스크림 사 주세요" 그래서 내가 잠깐 어떻게 할까 판단하려고 하는 순간! 그 옆에 있던 녀석이 "야, 그건 솔직히 좀 오버다. 그냥 콘 아이스크림 먹자"라고 했다.(잘 된 일인지, 아닌지???) 녀석들과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보충수업 끝난 날인데 뭘 하냐고 했더니, 오늘은 공부가 너무 안 돼서 찜질방에 갔다 올 거란다. 귀여운 녀석들... 내가 학교 다닐 땐 상상도 못한 일이었는데...ㅋㅋ 잠깐이지만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교사-학생의 거리감은 없다.

   그렇지만 나도 가끔은 아이스크림을 너무 자주 사 주면 교육적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다. 그러나 이 녀석들이 무슨 초등학생도 아니고, 교육적 운운하는 것은 좀 위선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몇 달만 지나면 그까짓 수퍼 아이스크림이나 매점에서 파는 불량식품들은 그네들의 입맛을 그렇게 당기지도 않을 것이다. 아마도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게 되겠지. 그래도 '선생'이 사주는 거라고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좋아라 하며 먹는다. 그리고 아이들은 먼 훗날 혹 기억할 지도 모른다.

   '예전에, 아주 예전에 말이야... 우리 선생님이 사 주신 아이스크림 먹으며 선생님과 동네 한 바퀴 걸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었다'고.

   나는 아이들이 그것만 기억해 줘도 아마 행복한 '선생'일지 모른다. 물론 기억해 주지 않아도 지금 현재가 좋았으니 상관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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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17 2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콩 2004-08-18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습게도 이런 생각이 먼저 드네요.. '나도.. 학교 다닐 때, 샘들께 아이스크림 사 달라고 한번이라도 쫄라볼껄...' 항상 샘들은 너무 '높고 먼' 곳에 있어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들 이었지요. 그 높은 '교단'에서 내려서야겠어요. ("내려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직 아닌가 봐요 ^^; ") 비록 '카리스마'없다는 비판을 받더라도. 아이스크림 다 먹을 동안의 일상적인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