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의 책읽기,라는 페이퍼는 머릿속에만 있었다. 방학하면 좀 진중하게 책을 읽을 수 있으려나 싶어서 평소에 보관함에 담긴 책을 좀 샀었다. 그런데, 나의 여름 방학은 <나꼼수>,<운동(걷기, 수영)>,<보충수업>,<펀드>라는 네 가지 키워드로 내 여유의 전부를 소진해 버리고 말았다. 그러니 책 한 권 읽지 않은 날이 계속됐는데, 어떻게 8월의 책읽기를 쓸 수 있을까 싶어 9월의 책읽기와 함께 써두기로 마음 먹었다. 그런데 오늘 책읽은 목록을 뒤적여 보니까 한 권도 안 읽은 건 아니구나, 싶어 다행이긴 하다. 

 

 

 

 

 

 

 

   분노하라, 열풍이 지나갔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유럽에서 일어난 열풍까지는 아니고, 미풍이 살짝 불다가 말었다. 아마 책에서 보여주고 있는 유럽의 모습이 우리의 오늘의 모습과 많이 다른 까닭일까? 모르긴 몰라도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적 환경이 유럽의 그것보다 더 열악했으면 했지 덜하지는 않을텐데 왜 우리는 분노하지 않을까? 우리는 이미 분노하는 힘마저 빼앗겼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런 것도 자기합리화의 혐의가 짙다. 분노하기엔 지나치게 심약한 내 성향 탓인지도 모르겠다. 읽는 내내 '와, 부럽다' 이런 생각이 계속 들다가 책을 덮고 났더니, 그럼 우리는 "어떻게 분노할까요?"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그래도 다른 것 다 차치하고서라도 이런 사자후를 토해 낼 수 있는 '노병'이 존재하는 나라가 부럽다. 우리는 누가 있어 청년들에게 분노하라,고 외칠 것이며, 한 사람의 외침이 청년들의 마음에 작은 파문을 만들어 내고, 또 그들이 깃발을 들고 거리로 나오게 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데 퍼뜩 떠오르는 사람이 없는 걸 보니 나의 과문을 탓해야 할까 보다.

   조정래의 소설 황토를 읽었다. 올해 세 번째 읽는 조정래의 소설(불놀이, 허수아비춤). 오래 전(1970년대에)에 나온 중편 소설을 새로 고쳐 쓴 장편소설이다. 이 책의 광고처럼 소설가의 평생 화두인 굴곡의 현대사가 개인의 삶에 어떤 상처를 주는가를 명확하면서도 간결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과히 광고가 사기는 아닌 셈이다.(이 정도만 해도 착한 광고라고 봐줄 만하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인물은 맏아들 태순이었다. 태순은 어머니와 6.25때 주둔한 미군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동생을 경멸하지만, 정작 자신도 자기 어머니가 부모님을 구하기 위해 어쩔 수없이 야마다라는 일본인과 살면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러면서 자기와 처지가 똑같은 동생에게 훨씬 더 냉혹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이는 점례(어머니)를 비롯한 이 가족에게 닥친 현대사의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상처받은 영혼들은 그들끼리 다시 상처를 주고 받는다. 이런 상황이야 말로 비극이다.

   확신의 함정은 동아리 아이들과 공부하면서 읽었다. 조금 더 토론에 적합하도록 주제, 혹은 쟁점을 분명하게 소개했으면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고등학생이 읽기에도 별 무리 없이 재미있게 잘 읽히는 장점이 있다. 확신의 함정, 이라는 제목은 아마 첫 번째 꼭지의 글을 설명할 수 있는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아리 아이들과 이 책을 읽고 자신이 배신당한 이야기-확신과 배신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를 나눠봤는데, 생각보다 깊은 이야기가 나오지 않아서 안타까웠다. 아마, 분위기 탓도 있었을테고, 내 설명이나 숙제가 명확한 방향을 설정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우리가 서로의 상처를 꺼내보이기엔 아직 가까이 다가가지 않은 상태일 수도있겠지.

   대한민국 원주민은 최규석이 그린 만화이다. 이미 최규석이 냈던 다른 만화는 꾸준히 읽어왔다. 이 책도 다른 작품처럼 대체로 우울하다. 특히, '가족'이라는 존재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 가족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나에게 되묻는다. 그래서 읽을 가치가 있었던 책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원주민이란 근대적인 삶에 일반화되기 이전에 살았던-물론 지금도 보통은 노인이 되어 살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원주민과 근대인(가치의 개념은 빼고)이 공존하고 있는 이 나라의 문제는 너무 빨리 삶의 방식이 바뀐데 있다. 근 100년 전의 조선을 떠올리면 그때 그 시절의 삶과 지금의 삶의 간극이 너무도 크다. 이런 나라는 흔치 않을 거 같다. 이런 나라에 태어나서 살고 있는 나는 축복받은 사람일까? 

 

 

 

 

 

    

   이 네 편 책들의 공통점은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여름이 오기 전 진작에 사 둔 책이고, 시간이 좀 많았던 방학을 전후해서 호기롭게 펼친 책이었으나 점점 시들시들해져서 결국 마무리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언젠가는 다시 꺼내 볼 책들이니, 아직 책장으로 보내지는 않아야겠다. 당분간은 내 책상 어느 모서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을 책들. 

  철학과 굴뚝청소부는 서양 철학의 흐름과 철학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 읽기 시작한 책이다. 사기열전은 까치출판사에서 나온 사기열전을 본 적이 있으나 거의 기억나는 내용이 없어서 이번에 새로 민음사에서 나온 책을 사서 읽었다. 공자의 제자열전을 읽다가 지쳤다. 어느날 마음이 동하면 다시 집어들 수 있을 거다. 1,2권을 다 샀는데, 안 읽고 쌓아두면 무척 아까울 것 같다.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읽으면 소설가 김훈의 문장이 떠오른다. 당연하게도 '칼의 노래'를 먼저 읽었기 때문이다. 이순신이 진짜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 마음 속에 벼린 칼을 품고 살았던 사람. 모래강의 신비는 필요한 부분만 찾아 읽었다. 아름다운 내성천이 곧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해서 한번 다녀와야겠다고 결심했는데, 여행 일정을 짜는데 꼭 필요한 책이기도 했다. 앞으로 몇 번은 더 꺼내봐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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