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장미

- 안준철, 세상 조촐한 것들이, 내일을여는책, 2001

 

주번 교사 하던 날이었지
흰 종이 쓰레기 한 점
장맛비에 젖어
측백나무 울타리에 걸려 있었어
누군가 손에 쥐었다가
무심코 버렸으리라
생각하며 허리를 굽히는데
세상에, 그게 흰 장미인 거야
이슬 같은 물기를 머금고
생글 웃고 있지 않겠어
자세히 보니 제 몸에 가시를 박은
한 줄기 초록빛 가녀린 선이
측백나무 울타리 속에 비집고 올라와
흰 장미 한 송이를 후끈 피워 놓은 거야
나는 생각했지
처음에는 그 흰 장미가
정말 종이 쓰레기였을지도 모른다고
장맛비에 젖어 측백나무 울타리에 걸린
찢겨진 한 영혼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누군가 허리를 굽혀
다가가기 전까지는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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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4-07-18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사란 누구인가? 예쁘고, 착하고, 잘 하는 걸 '좋다', '잘 한다'고 칭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교사란 아이들 속에 잠재되어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아이들이 '예쁘고, 착하고, 잘 하도록' 칭찬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아니, 학교라는 공간은 얼마나 무감각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