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준철, 우리교육, 2004
서른세 명의 제자들이 전해 준 사랑의 편지를 거의 다 읽을 무렵, 뜻밖의 전화가 왔다. 2년 전에 담임을 맡았던 제자 세 명이 생일이라고 축하 전화를 해 온 것이다.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해 나를 많이 힘들게 했던 아이들이다. 그 중 한 아이는 끝내 학교를 그만두고 말았다. 그들과 번갈아 가면서 통화를 했는데 하나같이 울음 섞인 목소리다.
"선생님, 정말 죄송해요. 선생님 담임하실 때 지각 많이 했잖아요."
"지금은 지각도 않고 학교 잘 다닌다면서?"
"그래서 더 죄송해요. 선생님 계실 때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요."
"괜찮아. 지금 잘 하면 되는 거지."
"선생님 제가 정말 부끄러워요.. 선생님이 사랑으로 대해 주셨을 때 잘하지 못한 것이요."
"그래, 그런 생각을 하다니 더욱 고맙고 장하구나."
세상에 철부지 제자들의 입에서 터져 나온 부끄럽다는 말보다 더 아름다운 말이 또 있을까. 나는 전화를 끊고 나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아이들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 것은, 아이들을 다잡이하지 못하는, 얼치기 무능 교사의 오랜 기다림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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