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지 오웰의 문체를 좋아한다. 그는 저널리스트답게 객관적 사실을 서술하는데 특히 엄격하다. 그런데 그 엄격함이 있기 전에 그의 고뇌라고 할까, 판단을 내리고 엄정한 태도를 취하기 까지의 망설임 같은 게 느껴진다. 그렇게 느끼는 근거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쉽게 말하긴 어렵겠다. 그렇지만 책을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순정한 사회주의자였기에, 사회주의를 내세운 세력의 위선에 더욱 엄정하게 맞서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라고. 전에 '스페인 내전(엔터니 비버, 교양인)'을 읽을 때는 내전 상황을 이해하기가 좀 어려웠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내전 상황의 얼개를 훨씬 더 분명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6월에는 좋은 문장의 책들을 꽤 읽은 것 같다. 그 중에서도 '느낌의 공동체'는 발군이다. 여기저기에서 이 젊은 평론가에 대한 좋은 풍문 한두 마디는 이미 들었지만, 이제 문학평론책과는 서서히 멀어진 생활인이 된 탓에 첫 평론집이었던 '몰락의 에티카'는 놓쳤다.(최근에 이 책을 샀다.) 많은 독자들이 지적했지만, 이 짧은 산문집은 자기 문장을 가진 훌륭한 문학작품이다. 이 평론가는 여느 소설가보다도 더 분명한 자기 색깔의 문체로 자기 의견을 써나간다. 이 평론가는 문학이 다른 문학과의 본질적인 차이는 바로 '언어' 예술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이 평론가의 후한 평가는 문학의 언어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평론가의 발자취를 따라 다니며 그의 평가 대로 책을 읽어보고 싶다. 

   바다의 기별은 소설가 김 훈의 에세이집. 언제나 그렇듯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한 문장을 읽을 땐 내 몸도 긴장하게 된다. 글을 읽으면서 그가 늘 말하는 몸으로 글을 밀로 나간다는 것이 무슨 느낌인지를 계속 떠올려보려고 애쓴다. 그가 쓰는 글은 온몸에 힘을 주고 휘두르는 칼과 같다. 글을 쓰는 그와 글을 읽는 내가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의 글은 전혀 위협을 주지 못하고 단지 아름다운 칼춤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글을 쓰는 그와 글을 읽는 내가 가까이 붙어 있으면  크게 다칠 것을 걱정해야 한다. 그러면 지금의 나는 어떤가?

 

 

 

 

 

 

 

  

   우리는 '삼성공화국'에 살고 있다.조정래의 허수아비춤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핍진한 소설이니만큼, 정말 소설 밖 현실도 아마 그럴 것이다. 책을 덥고는 분노를 넘어 서글픈 마음이 가득한데, 문제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는지, 나같은 백면서생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삼성을 생각한다'(김용철)를 읽었을 때만큼 생생한 현실 묘사. 역시, 소설은 힘이 세다.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라는 소설은 대학생 K로부터 선물로 받은 책이다.(나는 그 대신 밑에 있는 곰스크...를 선물로 줬다.) 소설은 3년 동안 모텔을 여행하면서 매일 밤마다 편지를 보내는 '지훈'의 이야기이다. 지훈이 이렇게 매일 편지를 쓰는 이유는 다른 누군가로부터 편지를 받기 위해서다. 그런데 지훈이 여행 중에 만났던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내지만, 아무도 지훈에게 답장을 보내지 않는다. 지훈은 매일 옆집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자기에게 도착한 편지가 있는지를 확인한다. 친구의 대답은 지난 3년 동안 한결 같다 - 아니! 나는 소설을 덮고 편지를 쓸까,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대체 누구에게? 아무리 생각해 봐도 퍼뜩 떠오르는 사람이 없어서 슬펐다.

   강남몽은 6월 초순에 읽었다. 생각해 보니 황석영 소설은 사서 읽은 게 없다. 이 책도 지인으로부터 오래 전에 선물 받은 책인데, 꽤 묵혔다가 이번에 읽게 됐다. 그 사이에 표절 논란이 지나가기도 했다. 정작 소설을 다 읽은 느낌은, 별로 재미가 없네,라는 것이다. 사건이 너무 단선적으로 전개된다는 점, 굳이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야 했을까, 싶은 부분이 무척 많다는 점 때문에 그렇다. 결론이 뻔한 소설은, 승패를 알고 보는 야구중계 만큼이나 긴장감이 없으니까... 

 

 

 

 

 

 

 

 

 

   동물동장은 이번에 조지 오웰의 마지막 책으로 읽었다. 사실, 오웰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책이지만  어쩐지 손길이 안 닿다가 이번에 조지 오웰에 푹 빠져 있는 동안 내처 읽었다.  

   이 책을 쓸 당시의 오웰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스페인 전쟁에 참전했을 때 스탈린이 지배하는 사회주의 세력의 추악한(?) 이면을 확인했던 오웰이었기에 현실 사회주의의 허상에 대해 누구보다도 날카롭게 지적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결국 오웰이 꿈꾸던 사회주의는 인민을 위한  이상으로서만 존재할 뿐이었다. 대신 현실의 사회주의는 인민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유사 파시즘적인 지배체제만 존재할 뿐이었다. 이상적인 사회주의자였던 오웰에게는 이런 현실이 당혹스럽게 받아들어거나 참담한 심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상이 현실에서 추악한 모습을 드러낼 때 절망하거나 투항하거나 침잠하기 마련인데, 오웰은 꿋꿋하게 이상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간다. - 그게 바로 동물농장의 가치이다. 현실의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풍자적 비판을 통해 사회주의자로서의 자신의 신념을 다시 한번 확인시키고 있다.

   오래 전에 산티아고에 빠진 적이 있었다. 앞으로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 점찍어 둔 곳! 누구나 그렇듯 현실-내 마음 속에서 만들어 놓은-이 녹녹하지는 않아서 늘 마음을 품고 있는 곳이었는다. 그러다 최근에 다시 몸살처럼 산티아고 가는 길에 대한 열망이 가득 차서 무턱 대고 이 책을 사서 읽었다.(그러나 이미 이 책은 우리집 책장에 얌전히 꽂혀 있던 책이었다.) 간절히 바라면 언젠가는 이루어 진다는 말을 다시 한 번 믿어 볼 밖에... 진복이랑 저 길을 끝까지 걸을 수 있는 날이 올까, 올거야, 오겠지!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는 무척 흥미롭게 읽은 책이다. 최근에는 우리 사회의 청년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책들은 많지만 '열정'이라는 특정한 프리즘을 통해 이 땅의 청년들의 삶을 통시적, 공시적 관점으로 정리해 놓고 있다는 점이 우선 새롭다. 제목처럼, 우리 사회-특히 자본-가 청년들에게 왜 열정을 강요하는지, 열정을 강요받고 있는 청년들의 현실은 어떤지, 어떤 방식으로 열정을 강요하는지, 언제부터 이 열정을 강요하기 시작했는지, 그리고 이 열정의 끝에는 과연 어뗜 미래가 펼쳐지는지를 각 장별로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20대가 읽으면 생각할 게 많은 책이다. 그리고, "니가 좋아서 하는 일이잖아?"는 말은 쉽게 하지 말아야겠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따로두 권을 샀다. 내가 읽으려던 곰스크는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를 선물로 받는 바람에 다른 사람에게로 건너갔다. 마침 이 책이 그 때 그 순간 내 가방에 들어 있었으므로. 또 마침 미래를 고민하는 대학교 3학년 학생에게 어울릴만한 책이기도 했으므로. 한동안 곰스크에 대해 잊고 있다가 책을 읽은 녀석이 문자로 연락을 해 왔으므로. 그날 바로 주문을 넣고 책을 받았다.  

   단편인 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단순한 이야기다. 또 뭔가 암시적이다. 단순하면서도 분명하지 않은 이야기. 그러니까 곰스크는 이 책을 읽은 여러 사람이 자기 상황에 맞는 여러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책이다. 우리는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곰스크가 있고, 모두 곰스크로 달려가고 있거나, 그 기차에서 잠시 내린 사람들이기도 하니까.  

   교실 밖으로 걸어나온 시는 독서평설이라는 고등학생용 잡지에 연재했던 시 안내서를 단행본으로 묶은 책이다. 글쓴이는 시인 김선우, 손택수. 고등학생들이 친절하고 정답게 시에 접근할 수 있도록 자분자분 설명을 잘 해 놓은 책이다. 눈높이가 고등학생에 맞춰져 있어서 읽는데, 별로 어려움이 없다. 좋은 시들이 주제나 소재별로 분류하여 해설하고 있는 것도 이 책의 친절함이 돋보인다. 그렇지만, 나는 다 못 읽고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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