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학교가 무척 어수선하지? 방학이 코앞인 탓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여느 방학 때와는 좀 다른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런 때일수록 자기 생각의 중심을 잡고 평상심을 가지는 게 중요하리라고 본다.
우리가 모여서 얘기를 나눈 지도 벌써 꽤 오래 되었네.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하겠지만 ‘도그 빌’이라는 영화, 어떻게 봤는지 모르겠다.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이 인간을 보는 관점에 대한 너희들의 생각을 충분히 들어봤으면 좋았을 텐데…… 영화가 너무 늦게 끝나는 바람에-그날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흘려보낸 시간은 반드시 우리에게 대가를 요구하더라. 그러니 지금 무의미하게 보내는 모든 시간이 아깝기도 하지만, 무섭기도 하다는 거지. 다음에 어떤 대가를 요구할까?- 얘기할 시간이 별로 없었고, 모임이 끝난 다음날부터는 기말 준비라는 블랙홀이 우리 마음을 몽땅 삼켜버렸기에 얘기할 기회가 사라졌다. 이렇게 불평만 늘어놓는 내 이야기의 요점은, 우리가 자주 모이지 못해서, 더 깊은 얘기를 나누지 못해서 아쉽다는 거다.
이번 책은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라고 했는데 재미있게 읽고 있나? 소설이라고는 해도 아마 문장 때문에 그렇게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지? 그렇지만, 그 문장 속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책이 말하려는 주제는 깊이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너희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든지 간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는 바로 카타리나가 살았던 사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거든.
이 책을 읽자마자 머릿속에 자동적으로 떠오른 일만 꼽아보려고 해도 내 손가락이 모자랄 지경이다. 우리나라의 언론(특히 인터넷 언론을 포함해서)은 ‘사생활 보호’라는 ‘인권’의 기본 개념은 집단 관음증의 그럴 듯한 포장지인 ‘알 권리’라는 이기적인 논리에 파묻혀서 내팽개쳐져 있다. (욕망은 이성보다 힘이 세니까) 그 중에서 최근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해 보면 좋겠다. 일명, “지하철 막말남 동영상”. 이 동영상의 내용은, 지하철을 타고 가던 20대가 자신과 살짝 부딪혔다는 이유로 노인에게 입에 담지 못할 막말을 하고, 옆에 있던 사람들도 말리지 못할 정도로 행패를 부린 상황이 일어난 거지. 누군가가 이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인터넷에 올렸는데, 이를 본 누리꾼들은 이 남자의 개인정보를 빼내서 인터넷에 알리자는 여론이 일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 남자의 ‘신상 털기’를 했는데, 엉뚱한 사람의 정보를 잘못 올리는 바람에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자, 너희들의 생각이 궁금하네. 처벌로서의 ‘신상 털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혹시 자기가 인터넷 댓글 달기에 열중해 본 적이 있다면 어떤 일이나 사건이었는지? 아니면, 직접 댓글을 달지는 않았지만, 달고 싶었던 사건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자기 경험을 중심으로 생각을 써 오면 좋겠다.
참, 생활나누기 숙제가 빠졌네. 사실, 이 생활나누기 숙제는 꼭 해 보고 싶었던 거라 아껴두고 있었는데, 이번에 과제로 던진다. 우리 학교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나무 사진을 찍어 오는 거다. 카메라로 찍고 그 나무의 이름을 알아오면 된다. 그냥 보면 그게 그거 같은 나무이지만 사진을 찍고, 이름을 알고, 나무에게 말을 걸다 보면 그 대상이 달라 보인단다. 우리 학교에도 얼마나 다양한 나무가 있는지 알게 될 거야.[10개 정도면 찍어 오면 너무 적을까?] 이게 싫은 사람은 A4 용지 크기 정도에 가장 맘에 드는 나무 한 그루를 그려 오시라. (이런 사람에게 특별히 ‘노력상’을 주겠다.) 그리고 그 뒷면에는 나무를 그리면서 들었던 자기 느낌을 적어 오도록 하렴.
모임은 일단 다음 주 화요일(12일)로 예정되어 있지만 너희들도 알고 있듯이 상황이 좀 유동적이다. 오늘 모여서 의논해 보자. 그리고 방학 계획도 같이 좀 생각해 보고. 그렇지만, 제일 중요한 건 내 마음의 중심을 잡아나가는 일이란 거 명심해라. 그렇기에 지금 네가 할 일은 책을 정성껏 정독하는 것, 숙제를 자기 것으로 소화해서 정리해 오는 것이다. 그럼 나중에 보자.
-2011년 7월, 느티나무가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