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이다. 월요일은 야자 당번하는 날(7시 30분까지 등교)이라 아침부터 조금 서둘러야 한다. 그러나 약간 늦어서 지하철은 놓쳤고, 버스를 타러 갔다. 산성으로 가는 고물버스가 정류장에서 안 가고 서 있기에, 슬쩍 보았더니 손님이 아무도 없어서 기다린 것이었다. 버스를 타니 바로 출발!

   오늘부터 학교에서 지각 단속을 엄격하게 한단다. 한마디로 웃길 따름이다. 왜 이제서야 단속을 한다는 거지? 시험이 끝나고 더 이상 아이들을 강제할 수단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왜 아이들은 시험이 끝이라고 생각할까? 그건 학교가 당연히 시험만 중요하다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물론, 청소할 때나 인사할 때만 공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먼저 인간이 되어야한다고 뻔뻔하게 말하는 몰지각한 '선생'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가슴에 손을 얹고 한 번 말해 보시라. 당신이 학생들의 인성교육을 위해 무엇을, 얼마나 해 왔는지를! 단 한 번이라고 진정으로 공부보다 인성이 더 가치있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모든 학교 운영은 크게는 대학 입시와 작게는 중간/기말고사-흔한 말로 내신성적 관리-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으니, 학생들은 학교에서 시험만 끝나면 모든 게 끝났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아마 한 며칠은 이 분위기로 몰아갈 것이다. 그러나 우리반은 잘 모르겠다. 사실 오늘 지각한 우리반 학생에게 웃으면서 '별일 없었지? 그냥 늦은 거지?'하고 묻고 '내일부터는 지각하지 마라'고 하고 교실에 올려보내자, 옆에 서 있던 여학생의 부러움과 놀라움, 어이없어 하는 표정이 볼만 했다.ㅋㅋ. 그러나 평소에 교실에서는 모두에게 지각은 나쁜 습관이기 때문에 꼭 고쳐야 한다고 여러번 강조한다. 학교니까 지각해도 이 정도로 봐주지만 사회는 냉정하다고 엄포도 놓고, 그렇기 때문에 학교 다닐 때 지각하는 습관이 들면 사회에 나가서도 마찬가지여서 항상 주의해야 한다고 또 잔소리를 한다. 그러나 지각해서 학교에서 단체로 벌 받은 녀석에게까지 잔소리하고 싶지는 않다. 

   조례시간에 난 애들에게 연말 이벤트로 재미난 것을 구상해 보자고 제한했으니 우리반은 처음부터 그런 분위기와는 맞지 않는다. 맘대로 해 보시라지? 헤헤! 암튼 연말에 한 번은 애들이랑 교실에서 놀기로 했다. 내가 콜라 빨리 마시기 대회를 하자고 했는데... 한다면 아마 교실은 엉망진창이 될 걸? ㅋㅋㅋ

   (사실은 앞의 이야기가 오늘의 주된 이야기가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많이 나가버렸네?)오늘 기분 좋은 일 두 가지가 있어서 기억해 두려고 한다. 첫번째는 오늘 아침에 출근했을 때 모 학생이 올려둔 편지를 읽어서이고, 2학년의 '록연'이가 처음으로 나에게 자판기 커피를 사 준 일이다.

   편지 보낸-아마도 '써 준'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 나한테만 보낸 것도 아니고, 그냥 여러 선생님들께 쓰는 것 중에 내 것도 한 통 있었던 거지만- 그 학생은 내가 그 편지 때문에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잘 모를 것이다. 특히 (아부성 발언일지도 모르지만) 내 수업을 들어보면 재미있다는 말이 무척 고마웠고, 요즘엔 수업시간에 잘 자지 않는다는 것도 좋았다.(한 때는 잠는 학생을 깨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깨웠으나, 서로가 감정만 상하는 것 같아서 내버려 두기도 했었는데, 그게 약간 서운할 수도 있었겠지?) 아무튼 이런 편지도 보낼 줄 알게 된 걸 보면 이젠 철이 다 든 셈이다. 요즘은 약간 바쁘지만, 시간을 내어서 꼭 답장을 써 주고 싶다.

   청소시간이 끝나갈 무렵. 교실에서 청소하라고 애들에게 이야기하고 내려오다가 록연이를 만났다. 갑자기 4층으로 올라가자고 하기에 왜 그러냐고 했더니, '그냥요'란다. 그러면 안 간다고 했더니 나에게 커피를 사준다고 한다. "정말? 그럼 약속!"  둘이서 손도장을 찍고 다시 4층 자판기로 올라갔다. 맨날 나에게 돈달라고만 하는 록연이가 오늘은 자기 돈 200원을 넣어서 나에게 커피를 뽑아준 날이다. 4층 창가에 서서 그 짧은 시간에 같이 커피를 마셨다. 은근히 집에 갈 차비가 있는지 걱정이 되어 묻는데, "없어요"란다. 7교시 시작종이 울려서 서둘러 교무실로 내려갔다. 수업이 끝나고 교무실에 내려가다 록연이가 집에 가는 걸 보았다. 웃으면서 다가가서 "록연아! 인사하고 가야지!" 했더니 실실 웃으며 "안해요"라기에 따라가서 기어이 인사를 하게 하였다. "록연아!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라고 해야지. 현관 앞에서 신발을 신고, 그제야 나에게 인사를 했다. 얼마 전에는 나에게 '우리 집에 놀러 올래요? 맛있는 거 줄께요'라고 하기도 했었다. 

   록연이를 어떻게 해 보겠다는 욕심을 버리고-이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록연이가 이 학교라는 공간에서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학교에서는 아무 쓸모 없는 존재일지라도-사람은 쓸모를 위해 태어나지는 않지 않는가?-록연이가 시무룩하지 않고, 나를 보면 피하지 않고, 나에게 환하게 웃으며 다가올 때가 좋다. 가끔씩 교무실에서 막무가내일 때는 빼고!(수행평가 채점도 해야 하는데, 지금 뭘 하고 있는 것이야?) 이만 쓰고 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