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3일에 첫 일기를 쓰고, 4월 18-19일에 썼던데, 이번엔 5월 17일이다. 그러고 보니 한달에 한 번 일기를 쓰는 셈이다. 저번 일기를 쓰고 아, 얼른 5월이 왔으면 했는데, 스스륵, 5월이 지나가고 있다. 왜 이렇게 되돌아보면 딱히 한 일이 없을까? 정말, 이러다 죽을 때 내 인생을 되돌아 보아도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는 기분이 드는 거 아닐까 싶다.

   5월 5일 어린이날, 6살 짜리 아들의 아빠가 오후 1시에 잠에서 깼다. 참으로 간 큰 아빠가 아닐 수 없다. 어디라도 가 보자는 눈치를 보내는 아내와 무조건 "놀이공원, 까꿍(실내놀이터), 키즈랜드(경륜장 안의 실내놀이터)"를 외치는 녀석을 꼬드겨서 아파트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아파트 광장에서 자전거를 타고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았다. 처음엔 시큰둥하던 녀석도 자전거를 타는 재미와, 놀이터에서 만난 친구 덕분에 더 조르지도 않고 금방 기분이 좋아졌다. 흠, 난 혼자 아파트 앞 의자에 멍하게 앉아 있다가, 꾸벅꾸벅 졸다가, 초록바람을 맞고 '흐흐'대다가, 가끔씩 녀석이 놀고 있는 모습을 보다가... 제법 높다랗던 해가 훌쩍 강 너머로 질 때까지 그냥, 그냥 있었다.

   5월 10일은 작심하고 녀석이랑 좀 제대로 놀아주려고 결심했는데, 5월 9일부터 제법 큰 비가 왔다. 당연히 밖에는 나가지도 못하고, 집에서 사흘동안 뒹굴었다. '까꿍'에 데려가려고 했으나, 이번에는 녀석이 별로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사실, 얼마 지나지도 않은 지금 생각해 보니 뭘 했는지 딱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집에서 아무 것도 안 하고(?) 놀았기 때문일 것이다. 

   5월 14-15일에는 남해편백자연휴양림을 다녀왔다. 휴양림 들어가는 길에 합천에도 있는 바람흔적 미술관에도 들르고, 나비 생태공원에서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건 일요일 아침에 편백나무 숲을 걸었던 일. 이런 여유롭고 편안한 시간이 좋다. 오후에는 남해에 널려있는 체험마을을 골라 갯벌체험을 했다. 주로 했던 일은 조개 캐기. 눈썰미가 좋은 사람은 낙지도 잡긴 했지만, 우리 가족은 조개만 열심히 캤다. 근데 점점 놀이가 노동으로 전이되더라.(이 노동 덕분에 세 가족-우리, 처가, 본가-은 오늘 저녁 시원한 조개탕으로 저녁을 먹었다.) 그래도 이렇게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거 보면 무엇에 씌인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5월 들어서 나의 과소비 중독증이 또다시 폭발하여 일을 저지르고 난 뒤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텀블로 두 개랑 읽어야 할 책만 잔뜩 쌓였다. 남들에겐 촌스럽기 그지 없는 텀블러(시중가 15000원)에 꽂혀서-5만원 이상 책을 사면 텀블러를 공짜로 준다- 질렀다. 책이야 나중에 읽어도 읽긴 읽겠지만, 마음을 절제, 해야 했는데 아쉽다. 

   5월 17일, 오늘 아침에는 컴퓨터를 켜고 메일함을 열었더니 생각지도 못한 기쁜 소식이 하나 있었다. 책 사면서 자동으로 이벤트에 응모한 게 덜컥 당첨이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1등 1명, 2등 2명, 3등 3명을 뽑는데 3등으로 뽑혔단다. 왠 횡재냐 싶었다. 선물이... 나중에 오면 '이씨네 이벤트'를 해 볼 예정이다.(이상하게 나는 내기를 하면 꼭 이길 것 같고, 이벤트에 응모하면 항상 당첨될 것 같은 근.자.감이 있다. 실제로는 잘 되지 않으면서도 항상 하기 전에는 그런 기분이 든다.)

   저녁에는 모처럼 2학년 독서토론 모임을 했는데, 녀석들이 나를 또 한번 감동시켰다. 동아리 모임을 기다리고 기다리던 녀석들이라 오늘도 모임은 무척 활기차고 재미있었다. 홍세화 씨의 '생각의 좌표'를 읽고 '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졌나?'라는 주제 아래, '나'의 어떤 생각은 어떤 근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는지 점검해 봤다. 독서나 토론이 생각의 출처라고 말하는 녀석도 있었지만 의외로 대중매체를 꼽는 친구들도 있었다. 아무튼 폭풍 '수다' 같은 과제 발표와 토론을 했더니 벌써 시간이 후다닥! 동아리 모임은 거의 매번 아쉬운 마음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공부를 아쉬운 마음으로 끝나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래서 나는 이 동아리 활동에 애정이 깊다. 이제 다음 책을 고르고 과제를 내는 일이 남았다. 그래도 기분 좋은 밤이다.  

   기분 좋은 밤의 기분을 더 만끽하려고 늦은 밤 밖에 나왔더니 달이 훤하다. 꼭 달빛 때문만은 아니지만 늦은 밤 혼자 구민운동장을 걷는데 상쾌하다. 그래, 이런 봄날이라면 제법 살만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더 욕심 부리지 말고 자족해야 할 듯 하다. 그래, 이 정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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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이최고야 2011-05-23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이 참 평화롭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