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교시 없애라니 정규수업 앞당기는'편법'


조향미선생님/[한겨레신문 6월 7일자 17면]


  요즘 우리 나라 대부분의 인문계 고등학교 현장은 심각한 갈등과 분열에 싸여 있다. 0교시 폐지 때문이다. 이 문제는 얼마 전 교육부와 전교조 본부가 합의하고 각 시도 단위로도 합의를 했거나 합의 중에 있다.


  '0교시'란 기이한 이름의 시간은 대체 무엇인가? 일반적인 고등학교의 정규수업은 대략 9시에 시작되는데, 그 정상 일과 전 7시50분에서 8시40분까지 하는 시간을 0교시라 부른다. 그 0교시를 일괄 폐지하라는 공문이 부산 같은 곳에는 벌써 보름 전에 도착했다.

   그런데 원숭이도 아닌 인간을 대상으로 이 무슨 조삼모사란 말인가! 0교시를 못하게 되니, 많은 학교에서는 일과 자체를 1시간 정도 앞당겨 시작하자는 안을 내놓았다. 그 동안 0에서 8까지 진행하던 일과를 1에서 9까지 말만 바꾸어 하겠다는 것이다.(정규수업은 6 혹은 7교시까지다.) 수십년 묵은 0교시를 겨우 폐지시키니 이제 9교시라는 시간이 학생과 교사의 숨을 더욱 옥죄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의 일과 조정을 생각해 낸 사람들은 교육청, 교장 등의 관리자들과 어떻든 보충수업을 많이 하는 것이 좋다는 일부 교사들이다. 그 동안 0교시를 반대하던 사람과 지지하는 사람들의 갈등이 이제는 9교시 개설 유무를 놓고 그대로 대립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 학교에서는 일과 조정안을 놓고 여론조사와 토론회, 투표까지 하다가 구성원들 간에 극한의 감정대립으로 치닫기도 한다.


   0교시를 폐지한 근본 취지는 조기등교와 수업이 학생들의 건강을 해치고 수업효과도 낮다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과다한 강제보충수업을 줄이겠다는 것이었다. 0교시 때문에 많은 아이들은 아침을 굶고 변비에 시달려 왔다. 수업을 해본 교사들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하루 일과 중 0교시만큼 힘들고 재미없는 수업도 없다. 아이들은 그냥 몸만 앉아 있을 뿐이다. 아니, 앉아 있는 것도 아니다. 많은 아이들이 책상에 고개를 박고 엎드려 자고 있다.


   그 0교시를 폐지하니, 이제는 9교시! 오전에 4시간, 오후에 5시간이나 수업을 하는 것이 과연 학생들의 진정한 학력 향상에 도움이 될까 법으로 정한 노동시간은 8시간이다. 그런데 고등학생들은 6~7시간의 정규수업, 2~3시간 보충수업, 1시간 〈교육방송〉시청, 2시간 남짓 야간 자습, 또 상당수는 심야 학원! 이것이 우리 나라 고등학생의 '경이로운'일과다. 그런데도 학력이 떨어졌다는 얘기가 들린다. 무엇으로 이 불가사의를 설명할까.


   학창시절 누구나 경험해 봤겠지만, 진짜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다. 하루에 10시간이나 수업(강의)을 듣고 나면 혼자 공부할 시간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까 4당5락! 잠을 4시간만 자면 혼자 공부할 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할 이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정말 하루에 9, 10시간을 수업해야 하는 거라면, 왜 교육부는 교육과정을 애초에 그리 짜놓지 않았는가


   그런데 일부 교사와 학부모, 절대다수 교장들은 이런 과다한 0교시나 9교시를 반대하는 교사들을 학생은 생각지 않는 이기적이고 게으른 선생으로 몰고 있다. 결코 적지 않은 액수의 보충수업수당을 과외로 받으면서 보충수업을 많이 하려는 교사는 교육적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고, 퇴근 후에도 남아 갖가지 수업자료를 만들고 아이들의 과제물을 집에까지 들고 가서 검사하고 교정해 주는 교사라도 강제적이고 과다한 보충수업을 반대하면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선생이란다.


   대체 교육이란 무엇이며, 미래세대에게 진정 길러주어야 할 능력이란 무엇인가? 질에 관계없이 수업 시수를 무조건 많이 늘리기만 하면 좋은 교육이 이뤄지고 아이들은 정말 능력 있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을까? 강제적인 수업에만 의존해 온 아이들은 대학에 가서도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모른다고 한다. 모든 학생들에게 9시간, 10시간 수업을 받아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정말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것일까?


   학부모들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왜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강제보충수업이 사라지지 않았는지, 그것은 다른󰡐이익󰡑이 개입한 문제라는 것을. 선생의 수업만 많이 듣는다고 결코 내 아이의 학력이 신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설사 점수 몇 점이 오른다 하더라도 그런 점수만으로는 주체적이고 자발적으로 삶을 열어 가는 진정 능력 있는 인간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