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엔 네 권을 책을 읽었다.
홍세화 선생님이 알라딘에 소개해 주신 자발적 복종. 예전에 샀는데 읽기를 미뤘다가 이번에 읽었다. 독재 권력이나 권위주의 정권과 그 지배 체제 아래에서 살고 있는 인민의 권리의 균형은 인민의 자발적(?)인 복종의 결과라는 게 내용의 핵심. 또한 지배체제는 인민의 자발적 복종을 유도하기 위해 다양한 상징조작을 시도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도박이나 오락 같은 것에 물들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렵다, 안 된다는 생각의 범위가 곧 우리가 살고 있는 메트릭스라고 할 수 있다. 권력의 지배체제는 우리의 생각의 범위를 끊임 없이 좁히려고 시도하는데, 우리는 '연대'하지 못하고, '자발적 복종'에 이르고 말 것이다. 더 엉망이었던 세상은 많았겠지만, 우리(?)가 이렇게 무기력한 시대는 전무하지 않았나 싶다. 곱씹을수록 우울하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읽고 있는 와중에 서태지와 이지아 사건(?)이 온 인터넷에 도배를 했다. 그 며칠 전에는 신정아 씨의 책이 화제가 되어 새삼 여러 말들이 떠돌았다. 며칠을 굶은 사냥개가 먹잇감을 발견한 것처럼 달려드는 하이에나들. 국민의 알 권리(?)라는 그럴듯한 포장으로 글쓰는 자신의 관음증을 충족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아니, 이들만 비판받아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피리 부는 사나이의 피리에 홀려 절벽을 향해 미친듯이 달려가는 집단 최면에 걸린 것처럼 쥐떼 같은 사람들에게도 문제는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앞으로 계속 이런 식으로 달려간다면 소설처럼 살인사건이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은 조지 오웰의 책을 전체로 읽어 보려고 맘 먹고 산 책 그 중에서 가장 편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먼저 골라 읽었다. 1930년대 영국 탄광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을 묘사하고 있는 1부와 파시즘이 창궐하고 있는 유럽을 개탄하며 '사회주의'의 분발을 촉구하는 2부로 구성되어 있는 에세이이다. 1930년대의 영국의 모습이 지금 우리의 모습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오웰의 의도-비참한 생활상을 보여주려는-는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다. 또 옳은 방향임에도 불구하고-적어도 오웰은 그렇게 믿었다- 왜 사회주의를 받아들이지 않는가, 라는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지식인과 노동자를 사회주의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하는 '사회주의자'의 행태를 비판하고, 파시즘의 확장을 경계하는 글도 오늘의 우리 사회의 현실을 되짚어 보게 한다. 우리는, 오웰이 걱정하고 있는 사회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나?
너의 의무를 묻는다는 김해시에서 주관하는 인문학 대회에 주제도서로 선정되어 있었기에 고른 책이다. 처음에는 동아리 애들이랑 참가해 볼까, 생각했다가 우물쭈물하다 보니 기회를 놓쳤다. 그렇지만 올해 주제도서로 선정된 책들은 다 읽어 볼 생각이다. 가능하면 동아리 아이들과 읽고 토론하면 좋겠다. 책은 무엇이 사회구성원의 의무이며, 인간을 목적으로 대우하는 것이 의무의 의미이고, 법과 의무, 공동체의 의미 등을 거쳐서 우리가 왜 의무를 지켜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인간다움의 도리'로서의 의무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청소년들이 읽기엔 약간 어려울 수도 있지만, 제대로 읽으면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5월엔 더 많은 책을 읽기보다는 나에게 의미 있는 책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