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자연휴양림으로 여행을 갔었다. 지난 겨울에 예약했다가 때마침 눈이 많이 내리는 바람이 못 갔던 휴양림. 어렵게 거의 두 달 전에 예약을 해서 이번에 다녀왔다. 중간에 성삼재에 들러 노고단으로 올라가려고 했으나 몇 걸음 걷다가 그만 돌아섰다. 노고단까지 2.5km - 왕복하면 5km 정도? 복이 데리고 갔다 오기는 좀 힘들겠지만 그래도 뭐 어떻게든 되겠지 싶어서 나섰으나, 복병은 거리가 아니라 바람. 거긴 아직 겨울 바람이 제법 매서웠다. 아쉬웠지만 깨끗하게 돌아서서 휴양림으로 갔다.  

   널찍한 방에 짐을 풀고 뒹굴다가 이 좋은 숲에 왔는데, 그냥 있으랴 싶어서 다시 산책하러 나섰다. 그런데 산책로가 여느 휴양림과는 달리 등산로 같이 험했다. 제법 가파른 길에 한바퀴 둘러 내려오고 나니 거리도 꽤 멀었다. 1시간 20분 정도 걸었으니 그냥 가벼운 산책은 아니었다. 거의 노고단에 올라간 거리쯤은 되었다.

   다음날 아침, 이곳 휴양림의 특별 프로그램인 한지체험에 참가하기 위해 일찍 준비해서 나갔다. '체험 프로그램'이라는 게 왠지 어설프고 조잡하다는 선입관이 있어 어떤 곳에서도 참여해 본 적이 없었지만 이곳 휴양림의 한지체험은 이상하게 꼭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어제부터 들었다.(체험하려면 미리 예약해야 된다고 해서 어제 미리 전화도 했다.) 제 시간인 9시 30분에 나온 팀은 나의 불길한(?) 예상대로 달랑 두 팀! 프로그램 진행팀은 한 10분 정도 다른 손님들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눈치였으나 더 나올 기미가 없자 체험 장소로 두 가족을 데리고 이동했다. 

   가까운 곳으로 이동하는 중에도 숲의 생태며, 새 소리까지... 일행들에게 설명을 하면서 내려갔다. 그러다가 진행팀 중 한 분이 애기 이름이 물어보고 교회에서는 '진복 팔단'이라는 말을 쓰던데 혹시 진복이라는 이름을 그래서 지은 거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속으로, '어? 진복 팔단을 아시는군. 흠... 교회(성당)에 열심히 다니시는 분이군' 이런 생각을 했다.  

   체험장에 도착하니 예상대로 무척 썰렁했다. 사람이라도 좀 많았으면 덜했겠지만, 직원 다섯 명이나 붙어서 진행을 도와주고 있는데, 참가자가 초등학생 1명, 유치원생 2명뿐이니 옆에서 보고 있는 내가 다 민망했다. 한지체험이라는 과정도 닥나무 껍질이 다 벗기고 삶아서 걸쭉한 상태로 이미 담겨 있는 것을 뜰채 같은 것으로 서너번 뜨기만 하면 되는 게 다였다. 그래도 설명하시는 분들은 애들이 못 알아들으면 어른인 나한테 눈을 맞추고 얘기를 하시는데, 

   가만, 저 목소리는 무척 귀에 익은데.... 

   아까부터 그 분의 목소리가 정말 귀에 익었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래서 유심히 얼굴을 봐도 잘 모르는 분인데 목소리만은 아주 익숙했다. 분명히 내가 아는 사람. 어딘가에서 만났던 사람인데 전혀 생각이 안 났다. 내가 이상하다, 는 표정으로 계속 앉아 있었나 보다. 잠시 후에 그 분이 미리 준비한 쑥인동차를 온 사람들에게 한 잔씩 건네주셨다. 나한테도 차를 한 잔 권하시기에 받으러 가니 작은 목소리로 '저 선생님, 알 거 같아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서 내가 냉큼, "저... 선생님, 우리 아는 사이죠? 우리가 어디서 봤지요?" 이렇게 물어도 그냥 웃으시고 자리를 피하셨다.

   그 때 순간적으로 슬쩍 이름표를 확인해 봤다. OOO. 낯선 이름. 역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는 사이는 분명한데 누군지는 모르겠다. 익숙한 목소리.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억양이 무척 자연스럽다. 연배는 나랑 비슷한 거 같으니 제자일 리는 없고, 동료교사 중에 학교를 그만둔 사람도 없고... 한참을 그러다가, 선생님? 

   그 순간, 아! 생각났다. OOO 공부방. 

   나는 십 년이 좀 넘게 부산의 빈민지역에서 공부방 교사를 했었다. 대학교 1학년 2학기에 시작해서 군대 가기 전까지 1년 6개월을 하다가, 교사로 발령받고 다시 시작해서 10년을 더 했다. 시작은 좋아하던 고등학교 선배의 권유였지만(딱 한 번, 이런 일이 있는데, 해 볼래? 였다.) 교사로 발령 받고 다시 올라가게 된 것은 이상하게도 '의무감' 같은 것이었다. 그 10년 동안 늘 열심히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내 '의무'에 충실하려고 애는 썼다고 말할 수 있다. 흔한 수사가 아니라, 정말 거기서 가르치면서 배운 게 많다. 

   그런데 그 공부방은 모 수녀원에서 운영을 맡아 하고 있어서 수녀님들 두세 분이 그 지역에서 지역 활동(빈민 사목)을 하며 공부방 옆에 수녀원 분원을 세우고 살고 있다. 그곳도 정기적으로 인사 이동이 있는 곳이라 거의 15년 동안(군대 공백기에도 연락은 하고 있었으니까) 내가 공부방과 인연을 맺으면서 알게 된 수녀님들도 꽤 많다. 

   그럼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그 수녀님 중의 한 분?  

   아까 얼굴을 보고도 못 알아본 건 그분의 머리카락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이름도 늘 세례명으로 불렀으니 낯설 수 밖에. 그런데 그 세례명이 계속 머리속에서 떠오르지 않는다. 음, 분명히 다섯 글자로 된 이름(세례명-본명)인데, 뭐였더라? 아무리 생각을 해도 끝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여기에서 일하실까? 수녀원을 나오셨구나, 언제 나오셨을까, 왜 나오셨나, 꼬리를 무는 생각들. 

   그러고보니 그 수녀님과 관련해서 아주 인상적인 기억이 떠오른다. 아마 수녀님을 만난 건 2001년이나 2002년이었을 것 같다. 공부방 담당 수녀님으로 있었고, 그 때 내가 교사대표였으니 이러저래 의논할 일도 많았다. 공부방은 여름캠프가 끝나면 방학에 들어가는데 그 때는 교사도 수녀님도 모두 휴가기간이다.  

   나는 그 여름에 도보여행을 떠났다. 부산에서 땅끝까지 걸어가는 여행! 그런데 창원에서 출발하는 이른 아침. (아마 일요일이었던 걸로 기억이 난다.) 휴가 중인 그 수녀님과 어찌어찌해서 연락이 닿아서 창원의 중앙동 근처에서 그 수녀님을 만났다. 그런데 수녀복을 입은 채로 무지하게 큰 등산배낭을 지고 우리(친구랑 나)를 만나러 왔다. 목소리도 걸음걸이도 아주 씩씩한 아가씨 같았다. 수녀님의 그 당시 집은 진해. 지리산에 올랐다가 휴가기간이라 집으로 가는 길에 우리를 만나고 가고 싶었다고 했다. 그냥 그대로 헤어졌는지, 어디서 아침을 같이 먹었는지 뚜렷한 기억이 없다. 아무튼, 큰 배낭을 지고 걸어 온 수녀님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바로 그 수녀님을 십 년만에 만났는데 오늘은 한지체험 프로그램을 설명하는 직원이 되어 이것저것 도움을 주고 있었다. 그러면서 중간에 지나가는 말로, '저 선생님 알 거 같아요'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등을 돌려서 묵묵히 체험활동의 뒷설거지를 하고 있다.

   나는 주신 차도 다 마셨고 거기 계속 있기가 무람해서 슬슬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서면서 따로 인사를 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간의 소식을 여쭈어야 하나, 모른 척 해야 하나,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수녀님은 여전히 등을 돌리고 무엇인가에 분주하다. 할 수 없이 그냥 나왔다. 숙소에 돌아와서도 마음이 무척 무겁다. 계속 신경이 쓰여서 다른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서둘러 짐을 챙겨 나오면서 혹시 사무실에 계신가 싶어서 열쇠를 반납하면서 빼꼼히 봐도 자리에 계시지 않는다. 열쇠를 두고 나오면서 내내 찜찜한 기분. 마지막까지 돌아가서 인사를 드려야 하나, 정리가 되지 않았다.  아무튼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일! 어느 곳에서나 향기로운 사람으로 잘 지내시기를 빌어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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