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시험 문제를 만들었던 게 2009년 9월이었나, 그랬는데 방금 전에 중간고사 문제를 마무리했다. 정말 오랜만에 내는 시험문제라서 그랬나, 싶지만 생각해보면 사실 늘 그랬다. 남들은 시간 맞춰서 잘도 내던데, 나한테는 시험 문제 만드는 게 큰 스트레스다. 왜 항상 그 분-출제신-은 마감일은 넘겨야 오시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늦게 오는 그분이 나로선 야속하기만 하다.
근데 생각해 보니 늘 그랬던 거 같다. 대학교 다닐 때 내야 하는 숙제도 늘 마감 전날에 밤을 꼴딱 새우고, 마감일에 간당간당하게 억지로 밀어 넣고는 했다. 이런 숙제뿐만이 아니다. 다른 약속시간도 마찬가지. 나갈 때부터 도착하기 전까지의 시간을 머릿속으로 계산해서 항상 약속 시간에 딱 맞춰서 일어서고는 했다. 그러나 사람 일이 내가 예상한 대로 딱딱 맞아떨어지는 게 아니니 많이 늦지는 않아도 늦게 나타나는 일이 다반사였다.
사실, 지금 제대로 못 만들고 있는 학습지도 마찬가지. 늘 인쇄를 넘겨야만 하는 그 전날 밤까지 끙끙대다가 시간에 쫓겨서 어쩔 수 없이 만들어 낸다. 그러면서, 시간을 더 쏟으면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거라는-너무 많이 속아서(?) 나조차도 믿지 않지만- 아쉬움이 들어서 절대로 여유 있게 마감하지 못한다.
그런데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도 있다. 학교에서 맡은 일. 주로 단순한 작업이 대부분이라 공문이 오는 즉시, 대부분 처리한다. 마감 기간에 상관없이 그날 할 수 있는 것은 생각났을 때 마무리를 짓는다. (나는 이런 일을 하는 걸 좋아한다.)
결국, 뭔가 단순하지 않은 일에는 내 시간을 쏟는 것도 ‘최선’의 일부라는 아무 근거 없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그런가,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믿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 그러나 부족한 능력을 시간으로라도 메워야 남들과 엇비슷해지기라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봤다.
• 수업 이야기 - 3학년 학생들에겐 문제풀이를, 2학년 학생들에겐 자료 읽고 글쓰기를 한다. 근데 비유하자면 3학년은 익숙하고 안전한 패턴의 ‘1박 2일’ 같은 수업이고, 2학년은 늘 새로운 시도가 필요한 ‘무한도전’같은 수업이다. 근데 나는 3학년 수업도 괜찮다. 점점 무뎌지는 문제의식 때문이겠지만, 문제 푸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도 그 나름의 명확한 목적이 있어서인지 수업 상황이 스스로 전개되어 가는 힘이 있다. 나는 그런 에너지가 좋다. 2학년 수업은 조금 더 용감하게 사고의 틀을 깨는 시도가 필요하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성적 외에는 관심 없는 학생들에게, 이런 벽 앞에 미리 주눅 들지 말고 해 보고 활동이 있다면 과감하게 도전해 봐야겠다.
• 여행 이야기 - 올해도 2009년 가을부터 시작된 자연휴양림 투어를 계속해 볼 생각이다. 4월엔 지리산자연휴양림을, 5월은 남해편백자연휴양림을 다녀올 예정이다. 나는 일요일 아침에 휴양림 뒤편의 숲속을 산책하는 시간이 그렇게 느긋할 수가 없다. 복이가 오래 걷지 못하니까 등산을 할 수도 없어서 휴양림에 가서 딱히 하는 일은 없지만, 그냥 숲속 산책길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 충분히 좋다. [참고로 지금까지 가 본 휴양림-몇 군데 없지만- 중에서 최고는 통고산 휴양림과 근처의 울진 소광리 금강소나무숲 군락지다. 숲이나 자연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다녀오시면 무척 좋아하실 듯] 한 5년 정도 다니면 국립 자연휴양림은 거의 다 다녀올 수 있을 것 같다.
• 책과 노래 이야기 - 3월에는 거의 책을 읽지 못 했다. 그래서 알라딘에서 놀던 어느 날 갑자기 책을 사고 싶은 욕구가 폭발해서 4월 초에 책을 잔뜩 샀다. 학교를 떠난 샘들께 선물로 보내기도 했고, 진복이 그림책도 좀 샀고, 내가 구경(?)할 책도 몇 권 골랐다.(아직 읽지는 않고, 학교 책장에 쌓여 있다. 중간고사 때부터 읽으면 아마 여름방학 전에는 다 읽을 수 있다.) 동아리 아이들과 읽을 책 목록도 골라 읽어야 하고, 이런 저런 상황이 생기다 보면 여러 책을 뒤적거리게 된다.
어쩌다 그랬는지 모르겠지만-아마 알라딘에서 놀다가 그랬겠지만- 브로콜리 너마저, 라는 인디밴드의 노래를 집중해서 듣게 되었는데 노래가 참 좋았다.(브로콜리...,는 작년에 디어 클라우드, 노래를 찾아 들었을 때 알았지만 그 땐 그냥 그랬다.) 작년에 한없이 우울한 노래가 좋더니만, 올해는 위로가 될 수 있는 음악, 소박하고 따뜻한 노래가 좋아져서 계속 흥얼거리고 있다.
• 그리고 남은 이야기 - 드디어, 2010년 독서동아리 활동집이 나온다. 사실 준비는 올해 1월부터 했는데, 미적거리다가 한참 지나서야 나오는 셈이다. 이 동아리 활동집 때문에 여러 사람을 귀찮게 했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활동집을 내기 위해 애를 썼던 건, 지난 1년간 아이들과 함께 책 읽으며 나눴던 우리들의 사연을 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녀석들이 먼 훗날, 우연히 책장에 꽂힌 동아리 활동집을 뒤적여 본다면 2010년, 열일곱 그들의 소중한 일상의 흔적이 오롯이 담겨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건 나 역시도 마찬가지일 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