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진복이의 이모할머니께서 무선조종 장난감을 선물로 보내셨다. 진복이의 취향대로 주황색의 날렵한 스포츠카를 총모양의 무선조종기로 조종하는 장난감이다. 장난감을 보자마자, 신이 난 녀석은 내가 건전지를 끼워넣자마자 벌써 집안에서 조종기를 잡고 차를 앞으로 뒤로 제 맘대로 굴려본다. 그러나 좁은 거실이니 금세 차가 이리 쿵, 저리 쿵 곳곳에 부딪힌다.
진복이가 자동차를 저렇게 조종하는 모습을 보니 슬슬 걱정이 들었다. 왜냐하면 꽤 지난 일이긴 하지만 녀석은 전에도 제 이모에게서 비슷한 장난감을 선물 받았는데, 첫날부터 오늘처럼 아무 곳으로나 몰고 다니다가 벽에 세게 부딪힌 다음에는 작동이 되지 않아 그날부터 지금까지 그 장난감은 고이 모셔두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진짜 몇 번 가지고 놀지도 못하고, 비싼 장난감을 방치해 둔 경험이 있는지라 진복이가 또 저러는 것이 염려스러웠다.
저렇게 서툴게 조종하다간 오늘 또 바로 고장나 버리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녀석을 살살 꼬셨다. "복아, 우리 이 자동차 가지고 밖에 나가서 놀까?" "응, 좋아. 아빠, 그런데 어디 가지?" "응? 글쎄, 구민운동장 갈까, 아냐, 거긴 걸어가기엔 좀 멀어. 그럼 우리 지하주차장 넓으니까 거기 가 볼까? 차가 들어올 수도 있지만 조심하면 돼" "응, 좋아. 아빠 가자" 녀석이 조종기를 잡고, 내가 자동차를 들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지하주차장에 자동차를 내려놓으니 녀석은 신이 나서 자동차를 이리저리 조종한다. 그런데, 이 자동차 바퀴가 똑바로 설정된 게 아닌지 약간 삐뚤하게 달린다. 그러니까 자동차가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바로 가지 않고 주차장 이곳저곳의 벽이나 자동차 바퀴 받침대를 또 들이받는다.
그런데 그걸 잠깐 보고 있는 내 속이 또 터진다. 어휴, 이건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아니 진복아, 이렇게 핸들을 돌리면 옆으로 피해갈 수 있다구, 진복아, 이거 한 번만 더 부딪히면 고장날지도 몰라. 좀 조심해서 운전해 줘, 진복아 저기 자동차 들어온다. 어서 피해! 나도 모르게 10초 간격으로 계속 진복이에게 뭐라고 잔소리를 한다. 그러면 진복이도 지지 않고 꿋꿋하게, 내가 알아서 한다구, 아이~ 아빠는... 알았어. 조심할게, 아빠 이거 안 돼, 도와줘. 이렇게 받아치거나 넘긴다.
결국 30분을 계획하고 나온 우리의 지하주차장 자동차 놀이는 무선자동차 앞바퀴가 빠지면서 20분도 안 돼서 끝나고 말았다. 올라오면서도 다시 이어지는 잔소리. 진복아, 그렇게 아무데나 세게 부딪히게 하니까 결국 자동차 앞바퀴가 빠져버렸잖아! 이거 집에 가서 다시 고쳐야 한다구. 결국 같이 놀려다가 잔소리만 실컷 퍼붓고 만 셈이다.
2004년 알라디너 진/우맘님께서 써 주신 나의 심리검사 결과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CP13. CP는 비판적인 어버이로서의 자아입니다. 얼마나 다른 사람에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가, 얼마나 비판이나 체벌, 또는 규범을 중시하는가를 알려줍니다. 13점이라면 그다지 관용적이라고 볼 수는 없지요. 굳이 표현하자면 '지배적'이라고나 할까요. CP가 높으면 이상 또한 높은 편이지만, 타인을 부정하는 성향 때문에 자칫 주변으로부터 독선적이다, 완고하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는 욕심이 많아 자주 야단을 치거나 벌을 주게 될 수도 있구요. 13점이라면 심하게 극단적인 점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더 <관대해지자>하고 의식적으로 노력할 필요도 있겠습니다.^^
NP16. NP는 양육적인 어버이로서의 자아입니다. 이 점수가 높은 분들은 대개 착하다는 평을 듣고, 돌보는 일을 좋아하며 타인에게 잘 공감하는 편입니다. 짝짝짝...가장 이상적인 점수는 16점이라는 견해가 있거든요. 16점, 완벽한 점수네요.^^ 게다가 아까 CP가 좀 높은 경향이 있었기에 더욱 바람직합니다. CP는 <타인 부정>, NP는 <타인 긍정>이라 요약할 수 있거든요. 약간 높았던 CP 점수를 NP가 보완해줄 수 있을것입니다. 하지만 주의하세요, 혹여, <잔소리꾼>이라고 구박받을 수도 있답니다. 바라는 기준은 높고, 그러면서도 꼭꼭 챙기고 싶어하니까 말예요.^^ 참, 그리고 부모의 입장에서는 과보호에 주의하셔야 하구요.
아주 오래 전에 받은 결과지지만, 검사 내용이 감추고 싶은 내 속내를 그대로 뒤짚어 낸 듯해서 뜨끔했다. 그래서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두고 잊지 않았다. 그러다 요즘은, 진복이를 대해는 내 태도를 보면서 스스로 되짚어 보게 된다. 자, 조금 더 너그럽게...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