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선생님들과 함께 쓴 모둠일기장에서 내가 쓴 일기만 따로 기록해 둔다. 어찌 되었든 내 삶의 소중한 흔적들... 사랑할 수 있을까?

  2010년 4월 5일, 월요일 아침에 

   며칠 전부터 심하던 감기가 좀 가라앉는다. 다행이다. 이번 주말과 휴일은 특별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났다. 어제는 구민운동장에 나갔는데 적당히 따뜻해서 좋았다. (요새 북구청에서 관리하는 구민운동장 때문에 사연이 좀 있었다. 나의 민원 제기에 구청의 답변이 무성의와 거짓말로 일관해서 게시판에 글 좀 썼다.) 난 운동장을 산책하는 시간이 가장 좋다. 평화롭고 한적한 시간. 이 여유로움이 지금 내 삶의 사이클에서 중요한 활력소이다.  

   어제 보니까 꽃이 피기 시작했다. 반갑다. 역시 지금 이 맘 때가 일 년 중에 가장 보기가 좋다. 올해는 이 시기가 너무 늦게 왔다. 그래서 몸살이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몸도 낫고, 꽃도 피고... 평온한 일상이 이어지기를... 

   학교에서의 일도 슬슬 자리가 잡히고(교무기획 담당이 일이 많다는 건 선입견!) 수업도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수업은 여전히 헛발질을 하고 있다.) 보충수업이 끝나면 무조건 바로 귀가! 진복이와 병원에 주로 갔다와서 저녁을 먹는다. 녀석과 대충 놀고 있으면 아내가 와서 가족이 모인다. 녀석의 재롱에 잠시 웃다가 씻기고, 먹이고, 재운다.(물론 주로 아내가 하는 일이지만...) 이런 일상이 좋기 때문에 가능하면 저녁 약속을 잡지 않는다. 나이가 드니까 점점 인간 관계의 폭이 좁아진다.  

   요즘은 책도 좀 읽는 편이다. '네팔 트레킹'에 대한 책을 시작으로, 등산에 대한 책도 손이 가고, 1Q84도 읽었고, 지금은 '사람은 따뜻한 시선으로 자란다'라는 육아 일기(?) 책을 보고 있는데, 그렇게 마음이 끌리지는 않았다. 그나마 트레킹이 가장 나았다. 좀 재미있는 책을 만났으면 싶다. 

올해 개인적인 바람 

- 입시 부담이 없는 과목(진로와 직업)이니 수업이 재미가 있었으면 좋겠다. 

- 평온한 일상이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 전교조 분회에 활기가 넘치고 조합원들이 잘 지냈으면 좋겠다. 

- 이 일기장이 1년 동안 잘 굴러갔으면 좋겠다. 

 

   2010년 4월 15일, 목요일 보강 시간에 

   이 일기장의 놀라운 회전력에 경악을 금치 못하다가 그냥 일주일(아니, 6일이네)을 묵혔다. 뭔가 마음 속에 고이기를 기다리기도 할 겸.(근데 여전히 마음이 텅 비었다.) 그 동안에도 평온한 일상이 계속 되었다. 크게 보면 학교와 집을 왔다갔다 하는 생활이 계속 되었고, 작게 봐도 좀 지루한 수업, 아이들과의 소소한 실랑이, 행정적인 업무 처리, 분회 알림 쪽지, 심드렁한 독서까지. 집에 가서는 별로 하는 일이 없으면서 기운이 쭉 빠진 채로 녀석과 잠시 눈을 맞추고 놀아 주기. 주말엔 늦잠과 점심, 저녁이 이어지고 다시 한 주의 일상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한 주를 떠올린다. 그나마 주말엔 산책할 수 있으니까 좀 낫지만... 

   일상이 참 무서운 게 내가 의식을 하든 그렇지 않든 쭉 계속 된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일상의 평온에 그렇게 집착하는 것일까?(아이러니한 얘기일지 몰라도 한 때는 "빛나는 일상으로"를 좌우명으로 삼았다.) 

   3월에 생각하기를 바쁜 업무만 대충 정리가 되면, 4월엔 수업을 같이 하는 학생들의 이름을 외우리라고 했건만 아직 시작도 못 했다. 그러니까 아직 아이들과도 데면데면하다. 이런 내 마음이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질 것이다. 그래서 좀 서글프다.(현재 내 마음 상태를 볼 때 이 계획은 "영구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어제 mp3를 하나 샀다. (기계치라 얼리 어댑터들이 부러울 따름이다.) 노래를 좀 담으려고-난 불법적인 일은 하지 않는다-여기저기 검색하다가 세대별 선호곡(100곡)을 봤는데, 깜짝 놀랐다. 심지어 50대들이 선호하는 노래 상위 순서에도 '걸 그룹'들의 노래가 많았다.(그 중에 내가 아는 곡은 서너곡 정도?) 갑자기 '내가 뭘 하면서 사나?' 하는 생각이 살짝 들었지만, 갑자기 이상한 반발심에 평소엔 좋아하지도 않는 인터내셔널가와 Bella ciao라는 노래를 다양한 버전으로 줄곧 들었다.(참, 내가 생각해도 성격 이상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이상하게도 마음이 착 가라앉으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 제 이름을 느티나무로 지은 이유 : 고향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나무가 느티나무겠지요? 언제나 넉넉한 품으로 시원하는 그늘을 만들어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지은 별명 "느티나무"(아직은 아니지만, 그렇게 살고 싶답니다.) 

 

   2010년 5월 10일 교무실에서, 공책을 받자마자 흔적을 남긴다. 

   어찌 보면 여유로운 일상인데 여유로움을 충분히 즐기지 못 한다. 이 여유 속에서도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 무언가 빠트리고 있는 것이 있어서 나중에 큰 낭패를 당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정작 중요한 건 '행동'인데, '마음'으로만 그치는 일이 무척 많다는 것이다.  연구 수업에 대한 압박도 상당하고 독서동아리 활동도 그렇고, 수업 준비도  머리 속은 복잡한데, 거기서 모든 일이 그치고 있다.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하는 안일한 태도! 지금껏 생각하면 의지로 한 일은 손으로 꼽을 정도가 아닌가 싶다. 늘 시간이, 상황이 내 결정과 행동을 지배해 온 듯 하다.  

   일단 머리속에 든 잡생각은 여기까지 쓰고! 

   자동차를 샀다. 주문을 오래 전(작년)에 했지만 한 달 전에야 나와서 지금은 아내의 출퇴근에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 나는 여전히 자전거를 타지만. 그 전에 15년이나 된 자동차가 있었는데, 길에서 여러 번 멈춘 적이 있어서 아내는 늘 불안해 했다. 그 차를 폐차시키는 날, 내 마음이 뻥 뚫렸다. 기계가 생물처럼 느껴졌다. 늙고 병들면 저렇게 "용도 폐기" 되는구나 싶었다. 아직도 쥐색 소나타 2만 보면 마음이 아리다. 여전히 새 차는 낯설고! 그런데 아내가 아파트 기둥에다 차를 박아서 문짝이 움푹 패였다. 아, 심란하여라, 내 마음이여! 

   일상이 안정화되어 간다는 것은 마음이 평정심을 찾아간다는 것일까? 여간한 일에는 분노하지 않으며, 또한 처음의 기쁘고 설레던 마음도 모두 집어삼키는 것이라면 안정된 일상은 좋은 것인가? 아닌가? 좋고 나쁨을 떠나 일상은 숙명적이지 않은가? 그렇기에 무서운 것이다. (의식적인 노력이 아니라 일상적인 정서를 강조하던 홍세화 선생님의 글이 생각난다.)  

   설레는 마음, 조심스러운 마음, 고마운 마음이 조금 더 오래갔으면 좋겠다. 인간이라는 동물은-물론 나를 포함해서- 영악하거나 간사한 거 같다. (쓰고 보니 좀 과한 표현같지만...) 일기장만 펼치면 생각이 꼬리를 물고 나온다. 아무런 연관도 없는... 쓰고 나면 금방 잊어버릴 생각들... 

 

   2010년 5월 24일, 월요일에 

   오늘은 약간 피곤하다. 어제 부대 '넉넉한터'에 있었기 때문에... 늦게 올라갔지만 공연은 더더더 늦게 끝났다.(11시 16분?!) 부실한 저녁에 간식을 사 먹으려고 어슬렁거리다가 동인고에 계시는 '김호룡선생님'을 만났다.(역시나 '도인'의 풍모를 하고 다니신다.) 집에 오니 벌써 12시다. 모처럼 늦은 귀가. 오면서 월요일 아침에는 꼭 분회 쪽지를 보내야지 했는데...(그렇게 했고) 내일이 모임이다. 

   1,2교시는 수학여행 잔류학생 지도로 약간 바빴다. 3교시는 1-8반 보강. 줄넘기를 하고 싶다는 애들을 주저 앉혔더니 불만이 폭발했다. 살살 달래다가 결국 "빽" 소리를 지르고야 말았다. 지금은 다시 4교시, 잔류학생들과 앉아서 글을 쓴다.  

   생각해 보니 시간이 참 허망하다. 사흘 간의 연휴를 앞두고 잔뜩 들떠서 이것저것 궁리도 하고 계획도 세웠는데, 시간이 하수구에 물 빠지듯 사라져 버리고 지금은 그 시간이 언제였나 싶게도 아련하다.(그러니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은 진리인가 보다.) 앞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이 다가오더라도 견뎌나가면 그 또한 지나가고 마는 순간일 것이다.  

   이런 생각이 내가 괴로운 순간을 버티는 힘이다. 그러니 위화의 이야기에 끌렸던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눈물과 고난의 강을 건너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나 눈물과 한숨으로 건넌 강의 끝에는 우리가 기대하는 아무 것도 없다. 그저 강을 건너왔다는 사실만 남을 뿐! 그런데 왜 우리는 눈물의 강을 건너야 하는가? 그야, 태어났기 때문에 살아갈 뿐이라고 한다. 그 강을 건너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쓸데 없이 심각하네. 근데 글 쓰는 순간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 아닌가? 아무 생각이 없다가도... 자기와 마주하는 글쓰기의 순간이 되면... 이렇다.) 

   분위기를 바꾸는 의미에서 , 어제 김제동 씨에게서 들었던 이야기. 

   복권에 미친 한 사내가 있었다. 얼마나 간절했던지 온갖 신에게 밤마다 기도를 했다고 한다. 꼭 한 번만 일등에 당첨되고 해 달라고 잠들기 전에 신에게 빌었다고 한다. 드디어 이 길고 긴 기도에 감동한 신이 그 사내의 꿈에 나타났다고 한다. 그러자 꿈에서 이 사내가 감격해서 드디어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는 줄 알고 눈물을 흘리는데, 신이 그랬단다. 

   "제발 사고 기도해라" 

   웃음 속에 뼈가 있는 얘기였다. 행동하란 얘기였다. 

   그래서 말인데 요즘은 선거가 좀 걱정이다.(음, 이게 내 문제가 된 거다.) 예전에는 부모님만 어떻게 해 보려고만 했는데, 이번에는 이곳저곳 친구들에게 연락을 좀 했다. 나름대로 최선은 아니더라도 열심히 하고 있다.ㅋ 결과야 뒤에 문제고, 이대로 주저앉기엔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 

   오늘은 보충수업이 없으니 4시 30분에 집에 왔다. 가능하면 진복이가 어린이집 버스에서 내리는 걸 맞으려고 서둘렀지만 이미 집으로 들어간 뒤였다. 이렇게 일찍 오면 꼭 녀석을 데리고 산책을 나간다. 구민운동장이나 대천천을 한 바퀴 돌아오는데 그게 그렇게 행복한 시간일 수 없다. (아, 오늘은 대천천 다리 아래서 담배 피우는 고딩을 불렀더니, 인근 학교 체육복을 입고는 우리 학교를 다닌다고 했다. 녀석도 참, 운이 없는 놈이다. 또 다른 다리 아래에서 중학생들이 모여서 돈을 주고 받길래 또 불렀다. 뭐 말도 안 되는 변명만 늘어 놓았지만, 예방 차원에서 딴 데 가서 놀라고 했다. 이 모든 걸 복이를 안고 했다는 사실. 또 한 편으로는 '어른'이라는 이유로 '학생'들에게 너무 간섭하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리저리 좌충우돌해서 집에 오니까 벌써 6시. 아내는 9교시 수업이라 좀 늦는다고 한다. (근데 참 집에 오면 몸이 천근만근이라 괴롭다. 아, 마음대로 몸이 안 움직여지니까 집에서 슬슬 눈치를 보고... 몸은 무겁고, 마음도 무겁고...)  

   녀석은 눈물이 참 많다. 내 말투가 조금만 달라져도 금방 눈물이 그렁그렁. 나도 눈물이 참 많다. 드라마(거의 안 보지만)나 책을 읽다가 조금만 슬픈 장면이 나와도 찔끔거린다. (녀석은 내 성격을 닮은 것 같다.) 요즘은 어떤 단어만 들어도 자동연상으로 마음이 뭉클한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이 말만 들어도 마음이 아프다. 눈물이 많은 녀석에게 울음이 적은 세상을 위해 조금 더 열심히 애써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비록, 강 건너엔 아무 것도 없을 지라도... 녀석이 또 살아가야 하니까.

 

   2010년 7월 26일 

   우와, 진짜 오래간만에 돌아온 일기장이네. 한 번 건너 뛰었더니 까마득하네. 앞으로는 빼먹지 않고 잘 써야지. 앞에 일기를 읽으니 다들 힘들고 지친 1학기를 보내거나, 지루하고 재미없는 일상에 대한 하소연이 많은 거 같다. 뭐 나도 뾰족한 수가 없었으니, 이 범주에서 크게 다를 게 없었던 듯. 그래도 1학기를 되짚어 보니 좋았던 일도 많았다. 우선 그 기억을 떠올려서 기력을 회복해 봐야 겠다. 

   당연히 첫 번째는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칼퇴근족이라는 사실.(우헤헤) 칼퇴근족은 심리적 여유 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 재충전이 (충분히는 아니더라도 적당히) 되기 때문에 수업에도 조금 더 여유가 생기는 게 사실이다. 더구나 나의 수업은 '진로와 직업'. 사실, 이게 마냥 쉬웠던 건 아닌데, 시험 문제 출제에서 해방되는 것만으로도 꽤 행복했다.(난 '그 분'이 안 오시면 문제를 못 내고, 나의 '그 분'은 항상 마감일 새벽에 오시는지라...아직도 나의 '그 분'이 누구신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 귀뜸하자면, 그 분은 출제의 신!) 

   독서동아리도 늦게 시작한 것 치고는 녀석들이 잘 따라와 주는 것 같아 재밌다. 호기심이 많고, 학습 의욕이 높은 학생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언제나 즐겁다. (모든 수업시간이 이럴 수는 없는 걸까?) 

   전교조 분회를 위해 하는 자잘한 일들도 아직은 즐기면서 하는 편이다. 쪽지나 서명, 자료 배포, 모임 준비... 이런 일들이 별 무리 없이 꾸려지고, 사람들의 관심이나 자극을 일깨우는 것 같아 의미 있는 일로 여겨진다. (나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일을 하면서 좋은- 말이 통하는- 사람의 속내도 가끔 알게 되는 경우도 있고... 아무튼 분회가 '나쁘지 않다', 아니 '좋다.' 

   일을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갈등 없이 좋았다. 주변에 앉아 같이 일하는 분들과 큰 마찰 없이 즐겁게 일해 온 것도 운이 좋았다. 아주 친해진 건 아니지만, 적당한 '선'을 잘 지키고 있으니 이것도 좋은 일이었다.  

   집에서야 녀석이랑 잘 지낸다. 쑥쑥 크는 녀석을 볼 수 있어 무척 기쁘다. 아내와도 큰소리는 잘 나지 않고 일상을 지내며 주말엔 나들이를 다닌다. 장인 어른이야 돌아가셨지만, 장모님, 부모님 아직 건강에 큰 이상이 없으시니 크게 근심할 일은 올해 없었다. 아니, 하나하나 또 따지고 들면 불만, 걱정 투성이겠지만 여기에서 멈춰야겠다.  

   방학해도 달라진 게 없는 일상이다. 음 1시에 집에 가는 애들을 보면서 진짜 학교는 이래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매일 한다. 우린 너무 많이 공부하고 너무 많이 일한다. 당연한 게 이상하게 여겨지는 이상한 나라, 이상한 학교. 아무튼 지금이 보충수업이 아니라 학기 중 일과가 되는 날이 꼭 오리라, 믿는다. 그런 날을 살아서, 꼭 보리라. 아, 그런 학교에서 근무해 보고 퇴직하리라. 남들이 그런 학교를 위해 싸울 때, 적어도 뒷배경은 되어 양심에 부끄러움을 덜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 아, 이런, 또 일기가 심각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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