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2010년)에 학교 선생님 몇 분과 교환일기를 썼다. 교환일기는 공책 한 권을 준비하고 순서를 정해 돌아가면서 일기나 단상을 쓰고 다음 선생님께 일기장을 넘기는 형식으로 작년 4월부터 12월까지 적은 글이다. 수업에, 담임에, 업무에, 노조활동에... 끝이 없는 일더미 속에 묻혀 살다가 문득 내 앞 순서의 선생님께 이 일기장을 받아들고는 한숨 돌리면서 내 자신을 되돌아 보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사실, 별 것 아닌 일일 수도 있지만, 직장에서 동료들과 속내를 터놓을 글을 쓴다는 건 그리 흔한 일은 아닌 것 같다. 그 직장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아주 편해보이는-학교라고 해도 말이다.
12월 중순에 돌아온 일기장은 방학 동안 우리집에 고이 모셔놓을 생각이다. 문득 작년에 쓴 일기를 다시 읽어보니 그 때 내 고민의 흔적들이 이제는 생경하기도 하고, 여전히 아프게 다가오는 것들도 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이 일기를 통해 일상적이고 관성적인 삶을 되짚으면서 생각을 가다듬으며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앞으로 며칠 안에 내 일기는 알라딘에 옮겨 놓을 생각이다. 어차피 공개를 전제로 한 글이었으니 이곳에 있어도 별로 이상할 건 없다. 2010년을 정리하는 내 방식으로 삼아야겠다.
함께 글을 쓰신 몇 분 선생님께서 이번에 학교를 옮기시는데 내년에도 계속 이 공책을 쓸 수 있을까? 나야, 샘들이 좋다면 언제나 좋지만! 아무튼 이 공책을 보고 있자니 나에게는 작년도 그리 나빴던 해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에게 애는 썼다, 라는 평가를 주고 싶다. 무엇보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새로 시작해서 끝까지 마무리했다는 점에서 말이다.
[사진에 대한 간략한 설명]
1번 - 하늘색 예쁜 표지의 공책. 온 학교를 돌아다녀야 하기에 일부러 표지는 붙이지 않았다.
2번 - 겉장을 넘기면 선생님들께 드리는 말씀과 일기장을 넘기는 순서가 적혀 있다.
3번 - 선생님들께 드리는 내용은 저렇다. 일기 쓰기를 함께 하신 분은 아홉 분.
4번 - 첫 번째 일기는 내가 썼다. 4월 3일이었나? 그랬다.
5번 - 한 명이 일기를 쓰면 그 뒤에 댓글이 빼곡하게 달린다.
6번 - 한 선생님은 젊은 시절 손석희 당시 아니운서로부터 받은 편지 복사본을 붙이기도 하셨다
7번 - 예쁜 색볼펜으로 정성들여 쓰신 글들이 많다.
8번 - 12월 2일에 "써니" 선생님께서 쓰신 글을 마지막으로 방학 전날(12월 23일)에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