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하루종일 졸았던 탓에 새벽까지 잠을 못 잤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모의고사 문제를 풀고(이건 kimji님 서재에서 얻은 힌트다) '거짓말쟁이와 모나리자'라는 책을 읽었다. 사계절의 1318 문고 시리즈는 언제 읽어도 재미가 있다. 읽으면서 내내 쓸 데 없는 생각이 들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동성애자라던데... 레오나르도가 좋아한 사람이 이 책에 나오는 '살라이'라는 젊은이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월요일, 한 주가 시작되었다. 1교시는 신나게 수업했다. 아이들과 유쾌하게 웃고, 수업도 신이 났었다. 2교시는 수업이 없는 시간... 도서관 이용자(학생)의 기본 정보를 고치는-진급 처리- 작업을 했다. 3교시는 또 수업이었다. 아이들의 표정이 무척 어둡다. 아마도 금요일에 친 모의고사에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4교시에는 수업이 없어서 빨리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6교시 수업에 쓸 프린트를 복사해 두었다. 점심시간은 도서실에서 아이들의 도서 대출 업무를 맡았다. (월요일과 수요일은 도우미 어머니가 없기 때문에 내가 해야 한다.) 이 일도 신나기는 하지만 점심시간을 이렇게 보내고 나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종이 쳐도 도서실에서 미적거리는 아이들을 보내고 도서실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서둘러 교실로 올라갔다. 5교시 수업도 좀 힘이 들었다. 전반적으로 아이들이 많이 힘들어 보인다. 5교시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 잠깐 동안 아이들과 모의고사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해 주었다. 6교시도 수업이다. 6교시는 1학년 진로와 직업인데, 나는 도서실에서 아이들과 소설 읽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서둘러 도서실 문을 열고, 아이들을 앉히고 준비한 학습지를 나누며 오늘 공부해야 할 과제를 일러준다. 그러나 1학년들은 산만하고 잡담이 심해서 나는 답답하다. 오늘 배울 소설은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다. 내가 낸 질문에 제대로 답도 못하면서 마냥 떠들고 노는 것에만 정신이 팔린 이 녀석들을 어떻게 해야 좋을 지 모르겠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은 모두 교실로 돌아갔다. 나는 점심시간에 정리하지 못한 책들을 서가에 꽂았다. 원래, 청소당번이 있으나 오늘은 나타나지 않았다. 지나가는 학생에게 쓰레기통을 부탁하고 교무실에 와 앉았다. 10분의 여유가 있다. 7교시는 또 보충수업이다. 아침에 수업한 그 반이라 약간 걱정은 덜 된다. (아침에 반응이 좋았으니까...) 교실에 올라갔더니 여러가지 일 때문에 교실 분위기가 붕붕 뜬다. 괜히 아이들의 페이스에 말려서 잠깐 수업을 제쳐두고 옆길로 빠졌다. 그래도 수업 분위기는 좋았다.

   오늘 수업이 모두 끝나는 4시 50분. 드디어 교무실 내 컴퓨터 앞에 앉았다. 오늘 도서실 이용자 1학년 등록을 마무리하려고 했으나 몇 가지 문제로 입력이 잘 안 되었다. 그냥 집에 가야겠다고 마음 먹은 순간,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 아차차, 내 책가방을 3-6반 교실에 두고 왔구나! (수업 중에 중요한 자료가 가방에 있어서 들고 갔던 가방을 가지고 내려오지 않은 것이었다.) 그 생각이 떠올랐을 땐 이미 8교시 보충수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할 수 없이 교무실에서 내일 할 일을 건성으로 하면서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렸다.

   수업이 끝나는 6시 10분. 3학년 교실에 올라가서 가방을 찾았다. 교무실을 나섰다. 날은 잔뜩 흐리다. 곧 비가 쏟아질 것이다. 갑자기 며칠 전에 보충수업하다 쓰러지신 선생님이 생각났다.

-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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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i 2004-03-30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이 안 오는 밤에 푸는 문제풀이는 효과가 있으시던가요? ^>^ 제가 쓰는 방법이 또 이렇게 전해지다니 반가운 마음에 덥석 코멘트를 답니다. 님의 일상을 읽다보니, 제 어깨가 벌써 쳐지는 기분이 듭니다. 유독히 힘겨운 날도 있고, 유난히 어려운 날도 분명 있지요. 슬펐다,라는 마지막 문장이 많이 남습니다. 그래도 매 수업을 열심히, 그리고 진실되게 접근하는 모습을 뵙게 되어서, 그저 읽는 이지만 안심,같은 기분도 들곤 하더군요. 힘내십시오. 마음으로 많이 응원해 드리겠습니다.

모래언덕 2004-03-30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책엔가 보니 살라이가 맞는 것 같더군요. 무의도식하는 그를 일생 곁에 두고 보살펴주었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그런지 전 이 책을 사긴 했는대 별로 재미있지 않았고 아이들에게도 권하지 않았어요. 왠지 공허한 느낌이 들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