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등 우리교육, 2004년 , 3월호
다큐, 이 교사 - 좌충우돌 욕심쟁이 교사, 한 뼘 더 성장하다.
(서울 목일중 조영선 교사 인터뷰에서)
아이와 교사가 같은 행사를 치르고 나서 보이는 상반된 반응. 그것은 충분한 소통을 통해 일체감을 가지지 못한 결과일까? 아니면 가르침을 전제로 한 사이에서는 당연히 빚어질 수 밖에 없는 차이일까?
학급행사는 행사 자체보다 교사가 학생을 관찰하는 기회를 갖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교사가 수업을 통해서만 학생을 만날 때는 학생을 일면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학교에서 설령 포르노를 본다고 해도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죠. 교사는 아이들 문화를 학교로 끌어와서 그들이 그것을 낯설게 볼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거예요. 사실 아이들이 학교 밖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잖아요. 교사의 역할은 그것을 성찰하는 힘을 키워 주는 것이겠지요.
그는 올해에는 교사들과 함께 학급운영 모임을 꾸려 보려고 마음먹고 있다. 혼자서 아이들을 꼼꼼하게 들여다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관찰을 함께 나눌 사람들이, 교사 조영선이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을 꼼꼼하게 살펴 줄 사람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교사로서의 성숙은 외부인의 시선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정해진다고 그는 믿는다.
42-47쪽
2004, 이 교사의 수업 준비법 발문에서
교사에게 '수업 준비법'을 묻는다는 것은 곧 그가 지향하고 있는 수업의 이상향을 묻는 일일 것이다. 그 교사가 어떤 방식으로 수업을 조직하고자 하는 것인지, 교과 내용의 핵심을 무엇으로 파악하고 있는지에 따라 수업을 준비하는 교사의 실천 역시 다른 양상을 지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교사에게 '수업 준비법'을 묻는다는 것은 곧 현재의 삶 자체를 묻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소소한 생활 습관들부터 교육철학과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교사는 자기 삶을 통해 수업을 준비하고, 규정한다.
57쪽
오늘은 시내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이 교육청 주관으로 모의고사를 친 날이다. 나는 오늘도 오후에는 연수를 가야하기 때문에 시험감독을 오전에 1,2,3,4교시를 해야 했다. 작년에 가르친 2학년 교실에 처음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내가 교실에 들어가니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반응들... 대부분이 '참 오래간만이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내가 시험을 위한 안내를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역시, 여전하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아무튼 2학년들을 모처럼 보아서 나 역시도 기분이 좋았다.
모의고사 치는 날은 매달 날아오는 우리교육 잡지를 읽기로 마음먹었다. 발령받으면서 이 잡지를 정기구독 했으니까 이제 6년째다. 한 3년은 그럭저럭 읽으려고 노력도 하고, 안 읽은 달은 마음이 좀 불편하기도 했는데, 지난 2년간의 제대로 본 기억이 없다. 그렇지만, 이 잡지만이라도 옆에 두지 않으면 더 무뎌질까봐 걱정이 든다.(사실, 구독완료 시점에 오는 전화를 매정하게 거절하지 못 하는 내 성격 탓도 크다. 상대가 강하게 나오면 나는 딱 부러지게 칼같이 행동하는데, 상대가 부탁하듯 말하면 예스맨이 된다.)
2년 전에는 학교내에서 우리교육 독자모임도 꾸리고 했었는데, 이 학교엔 구독자가 나 혼자다. 어제 우리교육에서 우리 학교에 새로오신 두 분의 선생님께 우편물이 와서 독자인 줄 알고, 독자모임하면 좋겠다 싶어서 우편물을 챙겨서 슬쩍 여쭈었더니 독자가 아니시란다. 아마도 그냥 구독을 안내하는 팜플랫인 듯 했다. 우리 학교엔 언제쯤 독자가 나타날까? ㅋㅋㅋ
모의고사 시간에 들어가서 처음부터 차근차근 펼쳐 읽었다. 그러다가 조영선선생님의 인터뷰부분에서 손에 쥔 연필이 움직였다. 이제 4년차의 선생님. 지금 그 선생님께서 하고 있는 고민이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이기도 하고, 내가 겪은 과정을 이제 거치는 것도 있고, 내가 아직 접근하지 못한 부분을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 같아서 눈길이 머물고 줄을 그었다.
이 교사의 수업 준비법을 읽으면서 공통된 특징을 발견했는데, 자기만의 자료가 풍부하다는 것, 그러나 그 자료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해 본다는 것, 교육과정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해서 교재를 재구성한다는 것 정도였다. 나도 열심히 준비하고 싶다는 의욕이 들어서 기분이 좋았다. 지금은 고등학교 3학년생들과 문제집을 풀고 있지만, 내년에는 다시 나만의 멋진 수업을 위해 준비하리라 다짐도 해 보았다.
그러나 내 눈길을 오래 붙든 건, 자기 삶을 통해 수업을 규정하고 준비한다는 구절이었다. 아, 얼마나 엄청난 의미가 담긴 말인가? 내가 지금껏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한 삶 자체가 바로 내 수업을 규정하고, 준비하는 것이라니...
한 순간도 제대로 살지 않을 수 없겠다. 항상, '교사'라는 존재로 살아야 한다는 것.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예전에 읽었던 글의 내용처럼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잘 전달해 줄까에서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로, 다시 무엇을 가르칠까에서 교사인 나와 학생들이 올바른 인격체로 성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자, 깨달았으니 실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