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편지
- 안도현
스무 살 안팎에는 누구나 한 번쯤 연애 편지를 썼었지
말로는 다 못할 그리움이며
무엇인가 보여주고 싶은 외로움이 있던 시절 말이야
틀린 글자가 없나 수없이 되 읽어보며
펜을 꾹꾹 눌러 백지 위에 썼었지
끝도 없는 열망을 쓰고 지우고 하다 보면
어느 날은 새벽빛이 이마를 밝히고
그때까지 사랑의 감동으로 출렁이던 몸과 마음은
종이 구겨지는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리곤 했었지
그러나 꿈속에서도 썼었지
사랑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잃어도 괜찮다고
그런데 친구, 생각해보세
그 연애 편지 쓰던 밤을 잃어버리고
학교를 졸업하고 타협을 배우고
결혼을 하면서 안락을, 승진을 위해 굴종을 익히면서
삶을 진정 사랑하였노라 말하겠는가
민중이며 정치며 통일은 지겨워
증권과 부동산과 승용차 이야기가 좋고
나 하나를 위해서라면
이 세상이야 썩어도 좋다고 생각하면서
친구, 누구보다 깨끗하게 살았노라 말하겠는가
스무 살 안팎에 쓰던 연애 편지는 그렇지 않았다네
남을 위해서 자신을 버릴 줄 아는 게
사랑이라고 썼었다네
잡 안에 도둑이 들면 물리쳐 싸우는 게
사랑이라고 썼었다네
사랑은 기다리는 게 아니라
한 발자국씩 찾으러 떠나는 거라고
그 뜨거운 연애 편지에는 지금도 쓰여 있다네
이 시를 읽으니 아직 나에게는 연애가 추억은 아니지만, 내 스무살 무렵의 어설픈 생각들이 떠오른다. 참 그 때 생각해보면 너무 단순한 세계에서 살았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더 용기가 생긴 것도 같다. 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별해 가면서 조금씩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든다는 생각도 많이 들어 슬플 때도 있지만 아직도 나는 꿈을 꾸고 있다는 점에서 무척 행복한 사람이다.
안도현의 연애 편지를 받은 오후, 마음과 뜨듯해진다. 어제는 열어둔 창문을 타고 건너온 햇살이 다사롭더니만 오늘은 바람이 분다. 서둘러 나서야겠다. 오늘은 공부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