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공부방에 갔었다. 오후 4시 회의가 있는 날이다. 학교에서 미리 점심을 먹고, 4교시가 끝난 1시 10분에 학교를 나섰다. 4시까지니까 시간은 넉넉했지만, 중간에 약속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지하철을 타고 남포동에 내려 영도대교를 걸었다. 바람을 세찼다. 누구나 요즘 같은 추운 날씨가 싫겠지만, 나는 추위를 좀 더 많이 타는 것 같다. 세찬 바람에 눈이 시려 눈물까지 찔끔거리고, 조금 피곤했던지 오는 내내 졸아도 또 잠이 쏟아진다.

   공부방 교사모임 30분 전에 도착했다. 간단하게 오늘 할 회의 내용을 미리 정리하고 선생님들이 오시기를 기다렸다. 4시 15분, 10명의 선생님들이 모여 회의가 시작되었다. 가장 중요한 새학기 시간표 짜기,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오기 때문에 각자 시간표를 조정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나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편이라 남은 요일을 택했는데, 매주 화요일에 공부방에 올라가기로 했다.

   그리고 좀 있을 봄소풍 계획과 여름 캠프 일정, 교과서 채택 문제 등으로 치열하게 의견들이 오가고 거의 회의가 마무리되자,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전에 부터 운을 띄운 새 대표교사를 뽑아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공부방 교사대표가 일하려면 아주 많고, 안 하려고 하면 별다른 일이 없는 자리지만, 나는 1년 임기의 대표를 4년 동안이나 해 왔다.

   생각해 보면 처음 2년 동안은 무척 의욕적으로 활동을 한 것 같다. 나름대로 공부방 수업과 활동에 비중을 많이 두면서 개인적인 생활은 좀 뒤로 미뤄두었다. 그래도 그게 별로 힘든 줄도 모르고 억울하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냥 그게 좋으니까, 또 마땅히 내가 해야 하니까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러나 지난 2년간은 교사대표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래도 선생님들이 너무 자주 바뀌는 바람에 내가 어떻게 할 도리도 없어 지난 2년 동안을 버텨온 셈이다.

   이번에는 과감하게 사퇴를 발표했다. 새로 맡아주시는 선생님도 생겨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 공부방 여건도 조금은 괜찮아졌고, 또 일이라는 게 맡으면 또 다 해내게 되어 있기도 하다.  물론 나는 앞으로도 공부방에는 계속 올라가서 아이들을 만날 것이다. 그러나 내 마음은 조금 홀가분하다. 하는 일은 없어도 알게 모르게 '자리'에 눌려서 제법 힘들었던가 보다.

   회의는 일곱시에 끝났다. 내가 진행하는 마지막 회의였다. 여선생님들께서 상을 차리고 남선생님들께서 설거지를 하는 공부방 전통이 참 보기 좋다. 내가 공부방에서 십 년동안 보아온 전통이다. 자유롭고, 넉넉하고, 사람냄새 짙은 우리 공부방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앞으로도 공부방 일에 헌신적이고, 마음 따뜻한 선생님들을 더욱 닮아가고 싶다.

   아무튼 오늘은 지난 4년간 내가 져온 짐을 부려놓은 날이다. 일단은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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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rim 2004-03-07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짐을 덜어놓으신 만큼 맘의 여유가 찾아오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