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를 씹다가

- 박성우

 

S#1[나 등장]  

무대를 가로질러 천천히 걷는다. 이후 걸음을 멈출 때,

퇴근길에 오이를 샀네, 댕강댕강 끊어 씹으며 골목을 오르네

나(지윤) : (마치 아련한 추억이 떠오르는 듯)  이 오이를 먹을 때마다 나는 늘 선자 고년이 생각이 나네. 선자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내 짝지……

[나 퇴장]

 

S#2[나, 선자, 경윤, 수열 등장]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와 자리를 잡으면,

선자, 고년이 우리 집에 첨으로 놀러 온 건, 초등학교 오학년 가을이었네

(배우들이 자리를 잡고... 행동을 할 준비가 됐는지 확인하면서 천천히)

나(지윤) : 여기 우리집이다. 빨리 들어온나

경윤(효진) : 우와-, 집 진짜 좋다.

수열(하경) : 이야-, 너거 집 엄청 부잔가 보다. 우와- 저기 저 그네 니가 타는 거가?

경윤(효진) : 야, 나 저 그네 한 번만 타보면 안 되나?

나(지윤) : 에이, 그네는 무슨… 그건 나중에 타고, 우리… 저기... 오이 따 먹으러 안 갈래?

               저,기 우리집 고추밭에 가면 오이가 억수로 많타...

경윤(효진) : (나를 붙잡으면서)

                   오이? 그래 좋다!! 얼른 가자, 얼른! 너거 고추밭에 가보고 싶다.

( 경윤을 밀친다.)

나(지윤) : 누가 니보고 같이 가자꼬 했나? 니 말고, 선자 말이다, 선자! (부르럽게) 선자야.

경윤(효진) : 치, 내가 잘못 들었는가보네. 근데 나도 가 보고 싶은데...

선자(일행) : 오이, 말이가? 내는 오이 진짜로 좋아하는데... 가도 되나?

경윤 /수열 : 어? 너거 둘이 뭐하는 기고? 얼레리 꼴레리…… 둘이는 연애한대요.

[나, 선자, 경윤, 수열 퇴장]




S#3[나, 선자 등장]

밭 가상에 열린 조선오이나 따줄까 해서, 까치재 고추밭으로 갔었네

애들이 놀려도 고년은 잘도 따라왔었네

[이 대사만 인물이 걸어나올 때 신나게 목소리로 할 것.]

경윤/수열 : (목소리만) 얼레리 꼴레리 둘이는 연애한대요.

나(지윤) : 이거 진짜 맛있는 오이다, 한 번 먹어볼래?

선자(일행) : (오이를 베어 물며) 니가 따 준 오이라 그런지 진~짜~ 맛있다.

나(지윤) : 내가 가재 잡아 줄까? 저 아래 개울에 가면 가재도 많거든

선자(일행) : 가재? 그래, 가재 잡는 것도 재밌겠다.

나(지윤) : 그래 쫌만 기다려봐라. 내가 금방 잡아올테니까. 

밭을 내려와 도랑에서 가제를 잡는디, 고년이 오이를 씹으며 말했었네

[선자(일행)](최대한 예쁘게, 부끄러움을 잔뜩 담아서) 나 는 니 가 좋 은 디

실한 고추만치로 붉어진 채 서둘러 재를 내려왔었네.

[나, 선자 퇴장] 인물들, 얼굴에 붉은 곤지 붙이고 관객에게 보여주고 나서 퇴장 

 

S#4[선자 등장]

[선자가 이미 앉아서 피아노를 치고 있을 때]


하루에 버스 두 대 들어오는 골짜기에서, 고년은 풍금을 잘 쳤었네

선자, 피아노에 앉아 노엘을 연주하며 간단한 소리를 낸다.


[나, 선자 등장]

십오리 길 교회에서 받은 공책도 내게 줬었네

선자(일행) : 이 공책 니한테 줄라고 하는데?

나(효진) : 어? 근데 이걸 왜 나한테 주는데?

선자(일행) : 모~른~다, 나도!

[나, 퇴장] 


S#5[나, 선자, 경윤, 수열 등장]

한 번은 까치재 밤나무 아래서 밤을 까는디,

나(지윤) : 수열아! 밤 쫌 잘 까봐라.

수열(하경) : 나도 열심히 하고 있다니까!

                   선자야, 거기 쫌만 기다리고 있거래이. 내가 얼른 니 얼굴만한 밤으로 까줄테니께. 내가 우리 동네에서 밤은 제일 잘 깐다아이가?

선자(일행) : 응, 그래 와, 많이 주면 좋겠다. (나에게) 우와, 수열이가 많이 준단다. 우히히

나(지윤) : 에이, 뭐가 좋다고... 수열이 쟈는 원래 밤 못 따는디.

              (수열에게) 니가 뭐 제일 잘 깐다고 그라노? 비키 봐라...  

            밤은 요렇게요렇게 까야 한다 알겠나?

수열(하경) : (허리춤을 잡고, 오줌 마려운 동장을 하면서) 어, 어? 안 되겠다. 나 잠깐 저기 쫌 갔다가 올게.

나(지윤) : 니 와그라는데? 밤까다가 어디, 어디 갈라꼬?

수열(하경) : 오줌, 오줌 잠시만 누고 올게.

........................(잠시 어색한 침묵)

나(지윤) : 이상하다. 수열이가 쫌 늦네...

선자(일행) : 그, 그러게 말이다.(발그레)

선자 : (부끄러운 듯 몸을 꼬면서) 저, 그, 란, 디...

 

선자가 ‘나’에게 뽀뽀를 한다. [쪽!] 

수열이가 오줌 싸러 간 사이에

고년이 내 볼테기에다 거시기를 해버렸네 

선자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가리며 뛰어간다.(퇴장)

나,는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다가 기분이 좋아져서 씩 웃으며 걸어간다.(퇴장)




S#6[나, 등장]

질겅질겅 추억도 씹으며 집으로 가네

[나가 걸어가다가 멈춰서 고개를 돌리면,]

아무리 염병 떨어도, 경찰한테 시집 간 고년을 넘볼 순 없는 것인디

나(지윤) 천천히 걸어서 집으로 가고 있다. 오이를 씹으며 걷는다.

그러다 문득, 최근 생각이 나는 듯, 기억을 떠올리는 표정

[수열, 선자 등장]

반대편에서 팔짱을 끼고 들어온다.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선자(일행) : 여보, 오늘도 힘내요.

수열(선준) : (행복한 표정으로 애교스럽게) 충~ 성!

[수열, 선자 퇴장]


고년은 뱉어도 뱉어도 뱉어지지 않네

먼놈의 오이꼭다리가 요렇코롬 쓰다냐 

 

나(지윤) 오이를 거칠게 먹으면서 퉷, 퉷! 해 본다.

오이를 원망하듯 쳐다보며 한숨, 그리고 기운이 없는 듯 천천히 걸어서 집으로 퇴장한다. 

[마침]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느티나무 2010-11-02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하하~!! 시낭송대회에서 했던 연극이 우리 학교에서 최우수상을 받는다고 한다.ㅋ 아이들에게 전했더니 좋아서 완전, 난리였다. 아무튼 준비하느라 고생했는데, 또 결과가 좋아서 다행이다^^ 나 역시 기분이 무척 좋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