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개학을 하고 나서의 첫 편지는, 얘들아 방학 잘 보냈니, 이렇게 인사를 하며 시작해야 하는데 서로가 뻔히 방학 동안의 상황을 아는 지라 저렇게 묻는 게 조금 쑥스럽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방학은 좀 짧았다, 그치? 그래도 모든 일에는 어둠이 있으면 밝음도 있는 법! 오늘로 125일이 남은, 무척 길다는 겨울방학을 기다려 보자. 

   보충수업이 끝나고 나서 독서캠프 다녀오니 개학이 코앞이었지? 금덩어리 같은 방학을 쪼개 다녀온 캠프가 너희들에게 시간 낭비였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을까 모르겠다. 내 생각엔 준비팀이 계획하고 준비한 활동의 50% 밖에 못 한 거 같아서 좀 아쉬웠지만, 다른 학교와 함께 꾸린 캠프가 처음이었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으려 한다. 이번의 아쉬움을 밑거름 삼아야 다음에 더 멋진 캠프를 준비할 수 있겠지? 내년에도 혹시 이런 캠프 준비팀이 구성된다면 너희들이 적극 참여해서 기획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우리 동아리 멤버는 원래 이런 캠프 다녀오면 자기 손으로 후기를 정리해야 하는 게 기본이라는 거 알고 있지? 하루 이틀 미루기 시작하면 결국엔 못 한다. 이 글을 읽고 ‘해야 한다’는 마음을 먹고 오늘 중으로 반드시 정리해 보렴. 적는 방법은 의외로 쉽지. 간단히 일정을 소개하고,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들었던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정리하면 훌륭한 후기가 될 거야. 특별히 인상적인 활동이 있었으면 소개하고 왜 그랬는지도 기록해 두면 더욱 ‘엣지’ 있는 글이 될 듯싶다. 동아리 모임에서 너희들이 써 온 글을 바탕으로 30분 정도 평가회를 할 예정이니 생각을 잘 정리해 오너라.

   이젠 이번에 받은 책 이야기 좀 해 볼까? 책의 제목이 좀 낯설지? 호모 코레아니쿠스(진중권, 웅진지식하우스). 제목을 알기 쉽게 번역하면 그냥 ‘한국인’……? 지금의 한국인,이라는 사람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한국인’이 되었는가, 하는 질문에 대답하는 책이야. 100년 전에 한반도에 살았던 우리의 조상들은 지금의 우리와 얼마나 닮았을까,를 조금만 생각해 본다면, 아마 피부색을 빼고는 하나도 닮지 않았다, 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럼, 오늘의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한국인’은 언제, 어떻게 나타났을까, 하는 궁금증이 당연히 생기겠지? 이 책은 이런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도록 ‘오늘날(근대적) 한국인’의 탄생 과정과 이들의 보편적인 사고 구조를 탐색하고 있는 재미있고도 의미 있는 책이야.

   다음 주 수요일 모임 이야기를 해야겠지? 7교시부터 모임을 시작한다는 거 알고 있을 테고( 7,8,9교시로 마무리하자.), 수현이가 던진 이야기 주제도 다들 준비하고 있을 것이고, 캠프 평가회도 해야 하니, 난 좀 쉽고 재미있는 활동 과제를 내려고 머리를 쥐어짜 본다. 또 우리가 읽을 책이 그리 술술 넘어가는 책이 아니니만큼 숙제는 간단하고 쉽게 내려고 나름 고민했단다.

   이번 독후활동 과제는 뇌구조 그리기다. 자신의 뇌를 꼼꼼하게 들여다보면서 뇌구조를 만들어보렴.(따로 받는 종이에 적어 넣으면 된단다.) 그리고 한국인의 뇌구조도 나름 분석해 봐야 할 테니까 10대의 뇌구조(남/여), 20대의 뇌구조(남/여), 30대의 뇌구조(남/여), 40대의 뇌구조(남/여), 50대의 뇌구조(남/여), 기타 세대의 뇌구조(남/여) 중에서 스스로 한 세대를 정해서 뇌구조를 파악해 오는 것이 이번 과제다. 이 과제는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서 어떤 특정한 사람의 뇌구조를 통해 특정 세대의 보편적 뇌구조를 들여다보는 것이 목표다. 예를 들면, 오늘날 한국의 20대 여자의 최대 관심사는 무엇을까,를 생각해 보자는 거지. 여러 사람의 뇌구조를 모아서 공통분모를 찾아도 되고, 특정한 사람이 어떤 세대의 ‘전형’이 된다는 생각이 들면 그 사람의 뇌구조를 소개해도 된단다. 우선은 가까운 가족이나 친척과 얘기를 나눠보는 것이 좋겠지?

   쪽지에 정리하고 보니 숙제가 제법 많다. 그래도 씩씩하게 잘 해 오겠지? 풍성한 식탁을 위해 넉넉하게 준비해 오렴.

그럼, 행복한 수요일 밤을 기다리며, 느티나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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