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핸 유난히 짧은 여름방학이 벌써 1/3이 지나가버렸다. 이번 방학 즈음엔 우리 모임에도 좀 변화가 있었고, 지금도 그 변화는 이어지는 거지? 지난 모임에 보니까 모두들 과감하게 다른 나라에서 학교를 다니려고 결심하고 실천을 옮긴 민지의 용기를 부러워하는 거 같던데……. 그런데 민지는 떠나게 되기까지는 우리가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수많은 문제들을 풀어내면서 여기까지 온 것이겠지? 우리는 민지가 씩씩하게 다녀올 수 있도록 맘껏 격려해 주자. 그리고 나는 남은 사람들이 이런 때일수록 중심을 잡고 모임을 단단히 꾸리려는 의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봤다. 물론 한 사람이 모임을 위해 헌신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각자가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무엇을 할 것인지를 스스로 판단하고 실천하는 게 훨씬 중요하겠지?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인생, 읽었어? 우리가 푸구이처럼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운명을 만약 미리 알게 된다면 어떨까? 무서울까, 슬플까, 담담할까, 괴로울까, 체념할까…… 내 미래가 저렇게 예정되어 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가? 그러면…? 그런데 예전에 내가 이 책을 읽고 작가가 우리에게 말하려는 메시지는 써 놓은 게 있는데, 대충 내용이 이렇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 것 같다. 이런 인생도 의미가 있는가? 우리가 죽을 고생을 하며 살아도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지 않는가? 그런데, 왜 우리는 살아야 하는가? 작가 자신은 이런 말로 스스로의 질문에 답을 해 두고 있다. ‘사람은 살아가는 것을 위해서 살아가지, 살아가는 것 이외의 그 어떠한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나도 작가의 질문을 씹어본다. 우리도 가끔은 사는 것이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곧잘 말한다. 그러면서도 늘 오늘의 고통스러운 삶이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줄 밑거름이 되리라고 기대한다. 그래서 결국엔 현재 우리의 고통스러운 삶이 지나가고 나면 이 고통 속에서 피어난 그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기도 한다. 그러나 위화의 소설을 읽고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해 보건데, 우리가 눈물을 보태며 고통스러운 강을 건너더라도 그 강 건너엔 우리가 기대한 그 무엇도 없을 것이라는 데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우리네 삶은 비루한 것인가? 희망은 어디에도 없는 것인가? ‘희망이 없다’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삶이 비루하다는 데는 대체로 수긍한다. 그러면 그런 비루한 삶은 왜 살아야 하느냐고?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돌려주고 싶다-살지 않으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느냐고? 살아간다는 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주어진 것이니 선택하고 말고의 문제를 이미 초월한 문제라고 말이다.  

 (위화, 인생, 을 읽고 쓴 감상문 중에서) 

   아마 부모님이 이 소설을 읽으신다면 내 말에 공감하시리라 믿는다.(아직 너희들은 앞길이 창창하니 이런 내 말이 잘 흘러들지 않겠지만! 그래서 무척 아쉽다.) 조금 더 인생의 속살을 맛 본 사람들은 알기 마련이거든. 눈물의 강을 건너면 아름답고 찬란한 무엇인가가 우리를 맞아줄 것이라고 믿지만-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열심히 공부하지!- 사실은 그 강을 건넌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을지 모른다구! 그럼 왜 열심히 살아야 하냐구? 그건, 글쎄다. 그걸 알면 내가 이러고 있지는 않겠지.

   그만하고! 이제는 우리 모임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우리 모임은 다음 주 금요일인거 다들 알고 있지? (6일) 책의 완독은 기본 중에 기본!(이런 걸로 잔소리 안 하게 해 주렴.) 글쓰기 숙제는 1) 내 인생 최고의 사건과 내 인생 최악의 사건!이라는 주제로 각각 사연을 소개하는 글을 써 올 것! 2) 내 생애 80번째 생일을 맞아 써보는 가상의 자서전을 완성해 올 것이야.

   우리에게 슬픈 일은 기말고사 성적이 나쁘게 나온 것이라든가 여름방학이 꽤 많이 지났다는 사실이 아니라, 지나간-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그 순간에 어쩌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자책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슬픔은 자기 자신이 마음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니 치유도 자기가 해야 할 몫이다. 다음엔 그런 자책이 들지 않도록 내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 진정한 슬픔에서 해방 되는 길이고! 우린 지금도 충분히 힘든데, 오늘부터 폭염이 시작된단다, 모두 조금 더 씩씩해져야할 때다.     

                                                  여름밤에 느티나무가 쓴다.

[덧붙임] 

   인생을 읽고 어떤 숙제를 내줄까, 사실 고민을 많이 했어. “음…… 내 인생 최대의 사건은 말이야……”하고 싱긋 웃으며 너희들에게 말을 건네려다가 멈칫거렸다. 순간, 인생이라는 게 그렇게 사건의 연속으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거든.  

   오늘만 해도 등교하면서 폭염 사이에 쏟아진 빗줄기 속을 자전거로 내달릴 때의 상쾌한 기운이나 비를 맞아 더욱 싱싱하고 당당한 교사(校舍) 앞의 느티나무의 늠름한 자태를 볼 때 들었던 흐뭇함은 ‘인생은 사건의 연속’이라며 구체적인 사건을 써오라고 하는 내가 내 준 숙제 속엔 분명 빠져 있을 거니까.  

   그래도 어쩌겠노? 내 능력은 여기까지인데, 더 욕심내지 말아야겠다. 오히려 우리의 숙제가 삶의 속살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는 모순을 인정해야겠다. 하지만 굳이 변명을 하자면, 인생은 이런 수많은 모순 속에서도 계속 이어지는 게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