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 징계를 앞두고 

 

노영민 (부산 사직고 교사)

 

그간 행복이 참 많았다
빠지는 달 없이 월급 통장에 꽂혔고
그 돈 빼내어 맛있는 것 해먹고 옷 사입고
가고 싶은 곳 가고
아이대학에도 보냈다
크게 아픈 일 없었고
한데로 밀려나 산 적도 없었다


그간 행복이 참 많았다
가르치는 일 마친 퇴근길
성지곡 삼나무 길 걷고, 보듬고
호수에 그림자 담그고 막걸리도 마셨다
버스는 어김없이 내 앞에 서주었고
잘 다녀오세요,
아침에 배웅했던 아내는
여보 왔어요,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제 조금 힘든 일이 생겼다
마음에 둔 정치인에 몇 푼 후원한 일이 죄가 되는
세상,
그것이 해임과 파면의
사유가 되는 시대
학교를 잠시 떠나야 할 일이 생겼다
수업 시작하기 앞서 “휴지 주워라”, 그 말 못 하게 될 일이 생겼다


잠시 통장에 돈 꽂히는 일이 멈추고
돈 빼쓰는 일이 조심스러워질 것이다
“노영민 선생님 안녕하세요?”
언제이름을 부르며 인사하는 특수반 현오를 못 보게 될 것이고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그늘보다 먼지 나는 운동장을 더 좋아하는 아이들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조금
고통스러운 일이 생겼다

고통이 곧 불행은 아님을 나는 믿는다
성지곡 삼나무는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고
운동을 마친 아이들은 여전히 수돗가 물을 덮어쓸 것이고
집의 문은 나를 위해 열려 있을 것이다


예기치 않은 힘든 일로
가족들은 더 단단히 묶이고
자식들은 스스로의 성장을 촉진하게 될 것이다
이해해주시는 늙은 아버지, 장모님께는 내 몸을 더욱 가차이 기댈 수 있을 것이다


그간 행복을 행복이라고 느끼지 못할 만큼 행복이 많았다
고통이 곧 불행이 아님을 믿는 나는
살아 있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축복
고통은 행복의 감수성을 키우고
삶에 대한 환희와 감사의 마음을 벼리는 기회가 될 것임을 믿는다
새로운 행복의 씨앗이 될 것임을 믿는다  


6.30 전교조 공무원 노조 힘내라, 지키자 민주주의! 부산시민대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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