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안녕!

  오늘 어떻게든 이 쪽지를 넘겨야 조금은 마음 편하게 주말과 휴일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시험 마지막 날 2교시 자습시간에 열심히 쓴다.(그럼, 내 마음의 짐이 너희들에게 옮겨 가는 거겠지!) 사실, 계획이야 며칠 전부터 계속 했지만, 대체로 어떤 일이 그렇듯 이 글도 처음 시작하기가 무척 힘들다. 그래도 첫 모임인데, 뭔가 좀 재미있는 과제가 나갔으면 좋겠다만, 내 능력의 범위에서는 별로 그럴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자 그럼 우리 모임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다음 주 수요일 모임이지? 전에 이야기했지만 9교시에는 ‘생활나누기’라는 항목으로 자유롭게 학교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특정한 주제를 정해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랬지? 이번에는 ‘나의 고등학교 첫 시험 이야기’로 해 볼까 한다. 간단하게 메모 형식으로라도 정리해서 이야기를 준비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시험 준비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라든가, 나만의 시험 준비 노하우라든가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해보자구!(시험도 지겨운데, 끝난 시험의 이야기라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항상 무슨 일이든 재미는 뒷담화가 더 있는 법이니까.)

  다음은 책 이야기! 어떤 책을 처음으로 선택할까, 무척 고민이 많았는데 결국 이 책으로 골랐다. 너희들이 읽을 책은 ‘나......의 아름다운......정원’이다. 내가 수업에 들어가는 반에서는 잠깐 소개도 했었는데, 기억이 나려나? 아마 너희들이 보통의 감수성만 가지고 있으면 책을 읽으면서  눈물이 핑, 돌 수 있는 책이다. 아마 책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할머니의 지나친 며느리 구박에 화도 날 테고, 아버지의 묵인과 방관적인 태도에 답답함도 느낄 테고, 어머니의 고된 세상살이에 답답함과 연민의 정도 생길 테고, 영주가 보여주는 영특함에 흐뭇한 웃음도 피었으리라.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동구의 따뜻한 마음씨에 책을 읽는 너희들의 마음이 흐뭇해질 거 같다. 아, 참 다들 왜 그렇게 살아야 했을까? 아마도 이 책은 그렇게 살아야하는 이유를 ‘시대’ 때문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해서, 사실 숙제로 “우리가 아는 1980년대”로 이야기를 해 볼까 하다가 너희들이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싶어서 고민을 거듭했다가 접었단다. (그래도 첫모임인데 싶어서……좀 쉬운 주제를 정해야 하지 않을까?)

  80년대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 있을 때 해 보기로 하고, 이번 독후 과제는 “내가 겪은(는) 갈등과 해결”이라는 주제로 글쓰기다. 예전에 내가 갈등을 겪었던 일이나 대상이 있었다면, 지금 내가 다른 사람이나 어떤 대상과 갈등을 겪고 있다면 내용을 소개하고 자기 나름대로 그 갈등을 정리한 방식을 써 오는 거야. 이건 구체적인 말이나 태도로 드러날 수도 있지만,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난 갈등이 더 중요할 수 있는 거지. 부모님, 선생님, 친구들(아니면 또 다른 누구일 수도 있고, 꼭 사람이 아니라 학교나 공부 같은 대상일수도 있지.)과 겉으로 보기엔 아무렇지도 않을지 모르지만 내 마음 속에 큰 고통을 줄 수도 있는 거잖아. 지금도 진행 중일 수 있고, 이젠 자국만 남아 있을 수도 있겠지. 그걸 찬찬히 들여다보고, 상황을 정리해서 글로 표현해 주면 좋겠다. 우리가 얼마나 성실하게 자신을 들여다보느냐에 따라 모임의 질이 달라질 거야.

  시험이 끝났으니 좀 홀가분한 마음으로 책을 읽어도 될 것 같지만 주어진 시간 자체가 워낙 없으니까 서둘러야 할지도 몰라. (게다가 숙제까지 있으니.)그렇지만 ‘내’가 열심히 준비하는 만큼 ‘내’ 마음이 조금 더 성장하고 그걸 모임에서 넉넉히 나누면 행복한 기운으로 조금 더 즐겁게 이 학교생활을 해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쁘게 받아들여 주면 좋겠다. 너희들의 열린 마음을 기대하고 있을게. 따로 알리지는 않을 테니, 수요일 9교시 시작종이 울리기 전에는 도서실로 올라오너라. 그럼 모두, 좋은 시간 보내시라.

2010년 5월 15일, 느티나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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