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30일-여행 아홉째날(포카라)

   모처럼 숙소에서 달게 잤다. 집도 좋을 뿐 아니라 침대 바닥에 전기 장판까지 깔려 있어서 침낭이 필요 없는 잠자리가 얼마나 황홀했는지 모른다. 더구나 그 전에 젊은 주인 내외분과의 즐거운 대화. 서로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탐색하느라 조심스러웠지만 그래도 대화는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서 괜찮았다.  

   다음 날은 김치찌개로 아침을 먹었다. 사모님이 준비해 주신 아침은 이곳이 네팔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 정도로 우리 집에서 먹는 거랑 똑같다. 아침을 먹고 다시, 휴식! 오늘은 정말 아무 것도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리라 다짐을 해 본다.(이런 것도 다짐을 해야 하나?) 페와 호수에서 보트를 타는 것은 오후가 좋다는 주인장의 정보로 오전은 그냥 동네만 어슬렁거리기로 했다.  

   배낭을 메지 않은 어깨가 가볍고 무릎은 언제 아팠냐는 듯 멀쩡하다. 잠시 정리를 하다가 레이크 사이드로 나왔다. 여기는 완전 봄 날씨! 호수를 따라 온갖 가게들이 즐비한데도, 우리네 도심 같은 번잡함이 없다. 이상하게 도시는 평화롭고 고요하다. 낮술은 페와 호수의 입구에 있기 때문에 호수의 끝까지 가는 길이 제법 멀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경이롭다.

   이리저리 기웃거리고 골목도 찬찬히 살피다가 기념품을 사기로 하고 편의점을 찾았다. 뭘 사 가는 게 좋을까 고민하다가 나름, 선물하기에 좋다는 '히말라야 립 밤'을 10개나 샀다. 그런데 웃긴 건 인도에서 만든  립 밤의 정가는 20Rs. 그게 네팔로 넘어와서 가게에 팔리는 건 45Rs. 여기 사람들은 그런 표시가 같이 붙어있어도 별 문제가 없단다. 립 밤을 사고 간식을 사 먹고, 호숫가에도 갔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점심을 안 먹기로 하고 숙소에서 뒹굴고 있는데, 숙소에 불이 안 켜지니까 그냥 심심하다. 할 일 없는 두 남자, 그냥 낮잠이나 자다가 오후에 일어나 다시 레이크사이드로 산책. 곳곳의 야외카페에는 책을 읽는 사람들 천국이다. 의주샘이 갑자기, 한국인들에게 모모로 유명한 '소비따 네'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소비따 네'에 가서 김치전과 김치 모모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배도 부르고 이젠 슬슬 페와 호수로 뱃놀이를 하러 갈 시간! 

   페와 호수의 평화로움은 포카라를 상징한다. 게다가 호수 주변에 북적거리는 인파는 언제나 사람들로 넘쳐나는 포카라의 다른 면을 상징하기도 한다. 아무튼 인파에 섞여 호수 가운데 왕실 사원이 있는 작은 섬까지 갔다 왔다. 오는 길에 거리의 수 많은 노점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실제로 과일도 사 먹었다. 여길 언제 다시 올 수 있으랴! 싶어서 포카라의 풍경 하나하나를 마음에 담으려고 애썼다.

   저녁은 낮술에서 먹었다. 낮술도 어제와는 달리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한 중간에 앉아서 오늘도 '고기'로 저녁을 먹는다. 게다가 주인장과 그곳 지인들과 어울려서 맥주 한 잔!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가는데, 이야기의 주제는 항상 '해외여행'이다. 우리가 내일 타이를 경유한다는 걸 알고는 자연스럽게 타이 여행이 주제가 되어 버렸다.(난 경험이 없으니 할 말이 별로 없다.) 식당이 몹시 바쁜 것 같아서 일단 숙소로 돌아왔다.  

   내일은 드디어 돌아가는 날이다. 다시 한 번 짐을 잘 챙겼나 살피고 일찍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퇴근하고 돌아온 주인 내외가 우리를 부른다. 다시 이어지는 이야기! 깊은 밤에야 이야기는 끝나는 내일은 사랑콧에 올랐다가 공항으로 바로 가기로 했다. 내일밤은 비행기안에서 보낼 것이고 아침이 되면 그리운 우리집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난 여행이 잘 안 맞는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떠나는 그 순간에 바로 집이 그리워지는 사람이니 말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이곳 포카라에 다시 올 수 있을 것만 같다. 고요함과 번잡함이 공존하된 평화가 있는 곳, 포카라는 참 매력적인 곳이다. 아, 히말라야야 다시  말해 무엇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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