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28일-여행 일곱째날 (뱀부-시누와-촘롱-지누단다) 


   방콕의 수안나 폼 공항에서 연결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저기 한국 분이죠?" 이러면서 말을 걸어왔다. 우리는 좀 쭈뼛쭈뼛. 괜히 한국 사람과 엮였다가 귀찮은 일이라도 생길까 봐. "어디 가세요?" 뻔한 질문. (알면서 그러시네) " 네팔이요." "와, 나도 네팔 가는데......" 이렇게 시작된 동행! 같은 비행기를 타고 서로 일정을 얘기하던 중에 우리랑 달라서(아가씨는 한 달 여행-카투만두에 보름 있다가 나중에 포카라에서 트레킹을 할 예정이었음) 공항에서 바로 헤어지려고 했는데 공항에서 택시를 함께 타고 가게 되었고, 그러다가 각자의 숙소에 짐을 놓고 대충 6시 30분에 '소풍'이라는 식당에서 저녁을 같이 먹기로 약속했다. 

   우리가 먼저 도착해서 밥을 먹고 있는데, 늦게 아가씨가 왔고, 자기도 내일 바로 포카라로 가기로 했다는 것이다.(숙소-네팔짱-에서 포카라에 미리 다녀오는 게 좋다고 추천했단다.) 우리가 1시간 정도 먼저 출발하니까 혹시 포카라에 오게 되면 우리는 낮술에서 트레킹 준비를 해서 가기로 했으니 그리로 오라고 했다.  

   다음날 포카라에 도착해 낮술에 짐을 맡기로 지도를 사고 가방을 빌리느라 좀 돌아다녔다가 다시 낮술에 가니 아가씨가 와 있었다. 아가씨는 가이드나 포터도 못 구한 상태! 우리는 짐이 비교적 가벼워서 포터가 좀 더 지고 갈 수 있는 상황. 이러니 그냥 아가씨가 우리 팀에 자연스럽게 합류하게 되었다.  

   둘째날부터 다리가 아파서 죽을 힘을 다해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은 바로 걷지 못하고, 뒷걸음질로 ABC부터 나야폴까지 내려 온 전설적인 인물! 아무튼 이 아가씨 때문에 아찔했던 일도 있었고, 즐거운 일도 많았다. 아가씨가 눈물도 많아서 우리랑 같이 다니는 동안 두 번이나 울었다.ㅋ(지금쯤이면 여행을 끝내고 집에 왔을 것 같은데...)


 

   나의 장거리 여행의 든든한 동행자, 의주샘. 음 의주샘과의 여행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시시하게 1,2박 정도로 다닌 건 다 빼고도 벌써 네 다섯 번 정도 되는 거 같다. 부산-해남 땅끝 도보여행(14일), 부산-통일전망대 도보여행(19일), 목포-태안반도 도보여행(12일)을 같이 다녔으니까 여행 파트너라고 해야겠다. [아, 의주샘 어머님이 나를 싫어하신단다. 뭐, 힘든 일 자꾸 같이 하자고 한다고...ㅠ 어머님 죄송합니다.] 이번 네팔여행은 여러가지 사정으로 안 가려고 했다가 막판에 합류하게 되었다.  

   나 혼자 갔으면 어땠을까? 뭐 나름대로 의미는 있었겠지만 재미는 적었겠지? 일행이 있으니까 든든하고 좋았다. 더구나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더니만 말도 술술! 처음 보는 여러 나라 사람들과도 친하게 지내는 재주가 있더군. 늘 알게 모르게 나한테 맞춰주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또 상황이 안 좋아도 별로 불평이 없고, 환경에 빨리 적응하는 편이라서 나로서는 안성맞춤의 동행자.(근데 사진이 꼭 교수님 같이 나왔네.)


 

   뱀부의 잠자리는 힘이 들었지만 아침에 출발할 때는 마음도 몸도 훨씬 가벼웠다. 이젠 해발 2500m 정도니까, 고산 증세는 더 이상 없고 길도 가파르지 않은 길이라 무릎도 훨씬 풀렸다. 더구나 밑으로 내려갈수록 음식맛도 더 괜찮아지니까...... 마음이 설레기도 했다.  

   뱀부에서 출발할 때 우리 팀은 나, 의주, 은영 씨에다가 어제밤 뱀부에 도착했으나 몸 상태가 안 좋아서 촘롱으로 내려가서 기다린다는 재수생(올해 대학입학생)이 합류하게 되었다. 그래서 뱀부에서 함께 출발했다가 시누와 근처에서 인도 여행을 하다가 네팔로 넘어와 트레킹을 한다는 31살 아가씨도 합류하게 되었다.(음, 이 아가씨가 MBC에서 ABC로 가는 길에 우리에게 마지막 한 모금의 물을 나눠준 분이다.) 

   우리는 사람도 많아지고 오늘 일정이 그리 빡빡하지 않기 때문에 느긋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아가씨 셋도 전체적으로 걸음이 느려서 일행의 간격이 아주 길게 늘어졌다. 쉬엄쉬엄 걸어서 시누와에 닿았을 때가 벌써 점심 때 그리하여 시누와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정말 그림 같은 풍경(눈앞에 앞산의 촘촘롱이 그대로 들어왔다.) 속에서 '배불리 먹었던-신라면으로- 점심 식사였다. 모든 것이 평온하고 여유로운 한 때였다. 

   이제 남은 길은 저 멀리 보이는 촘롱까지 가는 길이다. 시누와에서 계속 내려갔다가 얕은 계곡을 건너면 줄창 올라가야 하는 가파른 길이다. 내려가는 길은 당나귀들이 계속 돌아나니니 꽤 신경이 쓰이고, 더구나 녀석들이 아무 곳에나 싸 놓은 똥을 피하느라 여간 조심스러운 걸음이 아니었다. 내려가는 길은 아무 문제 없이 성큼성큼, 그러나 마지막 촘롱까지 올라가는 길은 그야말로 또 한 번의 사투! 그래도 결국 우리는 며칠 전에 머물렀던 촘롱의 숙소에 도착했다.


 

   촘롱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맡겨둔 짐을 찾고 나서 다시 가파른 내리막길. ABC 트레킹 중에서 가장 가파른 길이다. 올라갈 때는 이 길만 1시간 반을 올라갔는데, 내려가는 길은 아주 가볍다. 저 멀리 파란색 나마스떼 호텔의 지붕이 바로 내려다 보인다. 내려올 때는 토마토를 이고 가는 행상을 만나서 토마토를 사 먹었다.(포카라에서 사흘 동안 이 토마토를 지고 왔다고 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지누단다의 나마스떼 호텔에 도착. 얼른 짐을 풀고 세면도구와 수건만 챙겨서 다시 길을 나섰다. 바로, 지누단다의 hot spring으로 온천욕을 다녀오기 위해서다. 내려가는 길이 마냥 편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노천온천을 할 수 있다는 일념으로 후다닥 달려다시피 해서 온천에 닿았다.  

   노천온천은 모디콜라로 흘러가는 계곡 바로 옆에 있는데, 시설이야 보잘 것이 없었다. 우리의 목욕탕 정도 크기의 탕이 세 개.(온천의 온도에 따라서 구분해 놓았다.)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간이탈의실이 하나. 우리는 약간의 기부금을 내고 몸을 씻은 다음 손을 넣어서 온도를 확인해 본 다음 가장 뜨거운 곳에 들어갔다. 온천욕은 별로 관심도 없었으니, 노천 온천은 당연히 태어나서 처음인 것 같다. 

   오랫동안 탕에서 몸을 풀었더니 뭉친 다리와 어깨의 근육이 서서히 풀리는 것 같았다. 나오기 싫었지만 해가 져서 서서히 어두워져 오는지라 할 수 없이 옷을 챙겨입고 나왔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다시 제법 가파른 오르막! 돌아오니 늦게 도착한 일행들이 짐정리를 마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는 온천욕을 강추했으나, 다리가 몹시 아픈 그들에겐 별로 씨알이 먹히지 않았다.  

   아마도 오늘 저녁 이 숙소에서 잠을 자는 사람은 우리 일행들 밖에 없는 듯 사람들이 없다. 우리가 라면으로 풍성한 저녁을 먹는 동안, 숙소의 스태프는 디브디(DVD)로 상영하는 인도 영화에 전부 넋이 나가 있다. 자신들의 삶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영화 속의 삶.(아마 영화 속에 나오는 빨간 스포츠카를 이 산 속에 사는 사람들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웃고 떠들다가 밤이 깊어 숙소로 들어갔다. 음, 내일이면 이 산 속 생활도 끝이 난다. 이 생활을 더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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