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26일-여행 다섯째날(도반-히말라야-데우랄리-MBC)  

   역시나 도반에서 가장 늦은 출발! 나아졌으면 했던 무릎 상태는 별로 호전될 기미가 없다. 더구나 오늘도 아침 식사는 속이 울렁거려서 먹는 둥 마는 둥. 컨디션이 나빠도 밥은 잘 먹은 일행들의 걱정이 이어진다. 

   오늘 우리가 걸어가야 할 곳은 바로 눈 앞에 보이는 마차푸차레  산 아래다. 그러니까 사진으로 보면 마차푸차레를 가로막고 있는 시커먼 산 하나를 돌아가면 되는데, 이게 여기서 보기엔 하나지만 돌아가면 나오고 돌아가면 또 나오는 신기한 구조라서 하루 종일 걸어야 한다. 

   여전히 아침 날씨는 좋아서 마차푸차레의 어깨가 훤히 보인다. 벌써 해발 2500m를 넘어섰으나 해가 나면 따뜻해서 조금만 걸어도 금방 땀이 난다. 잠시 쉴 때 지친 일행들에게 자주 했던 말 " 어쨌든 우린 오늘밤에는 MBC에서 자고 있을 테니까..." 나중에 내려와서 은영 씨가 이 말이 참 힘이 됐다고 했다. 그러나 사실은 나에게 했던 말. 힘들어서 죽을 것 같은 시간도 결국은 지나갈 것이고, 그러면 오늘의 목적지에서 쉬게 될테니까 가자구!  

   힌쿠동굴(Hinku Cave, 3100m)에서 우리의 포터 비스누가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히말라야를 지나고 좀 오르막을 오르면 '힌쿠 동굴'이라는 곳이 나오는데, 우리가 동굴하면 떠올리는 그런 곳은 아니고, 그냥 비박(Biwak) 정도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래도 이곳에서는 멋진 조망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 길을 오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여기서 쉬는 것 같다.  

   우리 포터는 비스누라는 이름의 22살 청년으로, 지금 대학생이란다. 포터는 직업이 아니라 아르바이트라고 했다. 네팔리치고는 상당히 키가 컸고(그래서 배구선수로 활동했다고 자랑했다.) 말하는 걸 좋아해서 의주랑 늘 붙어다녔다. 그러면서 은영 씨를 좋아해서, 영어가 서툴고 무릎이 아파서 고생하는 은영 씨에게 계속 농담하고 장난을 쳤다. (나랑은 그닥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다.)

   한 마디로 우리 포터는 열혈 청년이었다. 열심히 일하고 경험을 더 쌓아서 가이드가 되고, 가이드로 더 돈을 많이 벌면 자동차를 사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차로 운전사를 하면서 결혼도 할 거라고 한다. 물론 기회가 되면 한국에도 가고 싶다고 한다.

   참고로 네팔은 자동차가 엄청나게 비싸다. 자동차에 100-150%의 세금이 붙는다고 하니, 한국에서 수입하는 중고 자동차도 가격이 새차 가격을 넘어서는 건 예사다. 거기다가 전반적으로 물가 수준이 우리의 1/4정도라니까 상대적으로 자동차를 소유한 사람은 무척 부유한 편이다. (진짜 왠만한 사람은 차가 없다.-'왠만한'이 어느 정도냐 하면, 낮술이라는 카페를 운영하시는 사장님도 아직 차가 없을 정도다.)


   역시 계곡의 중간쯤에 파란색 지붕이 보이는데 저곳이 데우랄리라는 곳이다. 어제 도반에서 멈춘 이후는 날씨 때문이었는데, 아마 도반 위쪽에는 어제 눈이 제법 내린 것 같다. 대부분의 트레커들은 이곳에서 준비해 간 아이젠이나 스패츠를 꺼낸다. 그러나, 우리는 별로 필요 없을 것 같아서 가져간 게 없으니 그냥 그대로 갔다. 

   오늘도 고산 증세인 속이 울렁거리는 게 나아지지 않았다. 사실, 고산 증세에 대비해서 다이아막스라는 약도 하루에 한 알씩 먹었는데도 효과가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또, 오늘은 무릎 관절을 연결시켜주는 아래 위쪽의 근육통 때문에 다리를 굽히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이제는 정말 산소가 희박한 것인지 조금만 빨리 헉헉거리는 숨소리가 점점 크게 들린다.

   이제 저곳, 데우랄리만 지나면 바로 MBC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MBC까지 오르는 길은 정말 만만치가 않았다.  

   마차푸차레 베이스 캠프 산장의 입구에서 찍은 사진. 와, 진짜 이곳까지 걸어온 게 나 자신을 대견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모든 상황이 최악이었는데 아침에 했던 자기 예언대로 결국 여기에 왔기 때문이다. 이 산장 입구까지 왔을 때는 정말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 정말 내가 여기에 왜 왔던가?를 스스로에게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나 오후가 지나니 이곳은 날씨가 흐리다. 오전에 히말라야를 지나올 때만 해도 맑았으나, 늦은 오후에 MBC에 도착하니 구름이 몰려들었다. 이곳의 기온은 정말 우리나라의 한겨울과 비슷했다. 오늘의 출발지인 도반은 '꽤 날씨가 쌀쌀하네. 진짜 겨울이 온 것인가?'이 정도 느낌이라면 '오늘 갑자기 한 겨울이 되었네'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이 사진은 마차푸차레 베이스 캠프 숙소에서 올라온 길을 배경으로 찍은 것이다. 막바지엔 사진기를 꺼내는 것도 쉽지 않을 정도로 지치고, 날씨가 추웠다.

   결국 저녁도 못 먹고 말았다. 도저히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마지막에는 스스로, '이거 안 먹으면 죽는다'고 생각하고 시도해 보았으나 입으로 가져가는 순간 코에서 먼저 알고 뇌에서 신호를 보내 입을 벌리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나 보다. 결국 거의 한 입도 못 먹고 콜라만 겨우 입을 대다 말았다.

   침낭을 펴고 누워 있으니 일행들이 불러서 식당으로 갔다. 난방이 전혀 없는 숙소와는 달리 식당은 따뜻한 기운이 감돈다. 일행들이 1인당 100Rs씩인 난방을 켜달라고 한 모양이었다. 거기서 모두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다른 팀도 고산 증세를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끼리는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대단하다는 것과 앞으로의 일정 등을 다시 점검하고, 내일 ABC로 올라갈 준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ABC에 다녀올 때 포터는 이곳 롯지에 남기로 했다. 어차피 갔다가 다시 MBC로 내려와야 하니까 짐을 들고 갈 필요가 없을테니 말이다. (우리끼리는 포터를 배려한 결정이었다.) 

   마르지 않은 빨래를 가스불에 말리며 온기가 있는 식당에서 늦게까지 버티다가 뜨거운 물한 통을 사서 나오는데, 우와, 정말, 세상에나, 하늘에 별이, 별이, 별이 그렇게 많은 건 처음이었다. 밤하늘이 빽빽한 별 때문에 비좁게 느껴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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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0-02-16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 많으셨네요. 그래도 저런 풍경과 밤하늘 가득한 별을 볼 수 있다면, 근처라도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느티나무 2010-02-17 12:24   좋아요 0 | URL
제가 별 것도 아닌 일에도 조금 징징거리는 스타일이라서 그런가 봅니다. 지나고 보니까 좋았는데, 그 순간에 잘 못 느낄 때도 있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