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 인식 대상인 사람 속에는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마치 식물의 씨앗 속에 전체 식물이 될 가능성이 놓여 있듯이 주어졌다. 식물은 자체내 들어있는 객관적 법칙성으로 말이암아 성장, 변화한다.
그러나 사람은 스스로 자신 속에 놓여있는 변화 요소를 끄집어내어서 자신의 힘으로 변화시키지 않는 한 불완전한 상태로 남을 수 밖에 없다. 자연은 사람을 단순히 자연 존재로, 사회는 법에 맞게 행동하는 존재로 만든다. 그러나 자유로운 존재로 만드는 것은 오직 사람 스스로 할 수 있다.
자연은 사람을 어느 특정 단계의 발달에서 그 구속을 풀어준다. 그리고 사회는 이런한 발달을 어느 단계까지 조금 더 이끌어준다. 그러나 마지막 손질은 오직 사람 스스로 자신에게 가할 수 밖에 없다.
루돌프 슈타이너의 '자유의 철학'(1894) / 변종인 譯
제3회 참교육실천 보고대회가 있는 날이다. 늘 고민한 성과들을 내놓은 선생님들의 용기와 노력이 부럽고, 존경스럽다. 그리고 해마다 공짜로 받아 먹기만 하려고 드는 내가 좀 밉살스럽기도 하다. 앞으로는 좀 나아지도록 노력해보자. 늘 누군가와 나누려는 마음은 가득하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보고대회의 기조 강연은 독일의 대안학교인 '슈타이너학교의 감성 교육에 대한 이해' 정도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인 것 같고, 너무 높은 꿈은-당장 현실로 바꿀 수 없는- 막막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이상이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가야할 지표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학생 자치영역의 분과토론은 약간 충격적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 두 명이 발표자였는데-그러나, 어제의 발표가 참교육실천 보고대회라는 큰 영역에 포함될 수 있을까?- 학교 밖 동아리 활동을 하는 학생의 동아리 활동 과정에 대한 소개와 모 고등학교 학생회장으로 학생들의 권리 찾기를 시도한 사례들을 발제로 해서 토론이 이어졌다. 첫 번 째 토론은 학교 밖 동아리 활동이 학교 활동과 연계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이고 두 번째는 학생자치 활동을 위해 교사가 해야할 역활은 무엇인가?를 두고 활발한 의견들이 나왔다.
학생 자치라... 아직도 학생 자치 활동을 불온한 시각으로 보고, 학생들에게 공부만 강요하는 엉터리 학교에서 그런 아이들이 자라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고, 내가 학생 자치 활동을 위해 같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도 짚어보게 된 것이 얻은 것이라면 얻은 것이다. 오늘에야 다시 생각해 보니 내 마음 한 켠에서도 '저러면 공부는 언제 하누?'하는 생각을 참 떨치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학생 자치는 학생에 대한, 아니 한 인간에 대한 믿음이다. 학교라는 상황이 아니라면 '자치'에 대한 논란 자체가 없을 것이다. 학생 자치는 '공부를 잘 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다른 무엇에 우선할 수 없는 기본적인 권리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이 당연한 권리가 '당연히' 무시된다. 내가 외면하고 체념하고 침묵하는 동안 이 권리는 학생들의 손에 가 닿을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