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미술 이야기 - 피렌체편 - 김태권의 미술지식만화
김태권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재미도 있고, 공부도 되는 책!

   6월 10일, 오후 6시 40분. 학교에서 서둘러 저녁을 챙겨 먹고 서면으로 출발. 난 평소에는 시위하러 잘 안 나갔는데, 이번에는 이날이 무척 기다려졌다. 요즘은 무엇인가가 내 마음을 묵직하게 누르고 있어서 도저히 그냥 있을 수 없었다. 인터넷으로 '부산 6.10대회'(문화제)가 어디서 열리는 지 계속 검색해 보기도 했으니까 이번엔 나도 몸이 좀 달았나 보다. 꼭 찝어 말할 수는 없지만, 이대로 당하고 살 수는 없다는 생각, 이걸 억울하다, 고 해도 될지? 아무튼 6월 10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서면으로 나가서 힘을 보태야겠다는 굳은 결심. 벌써 며칠 전부터 하고 마음을 먹었다.(역시, 난, 이런 걸 마음 먹고 나가야 하는 아주, 아주 소심한 사람이다.) 

   멍하게 가는 게 싫어서 지하철 자리에 앉자마자 가방을 열고 책 한 권 꺼냈다. 원래 읽고 있던 책도 있지만, 지하철에서 읽으려고 가벼운 책을 챙겨 넣었다. 김태권의 ‘르네상스 미술 이야기’, 명색이 '미술지식만화'라는 이 책을 ‘가벼운 책’이라고 불러도 될까? 그래도, 지하철이 역을 지나치는 속도만큼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빠르다. 그만큼이나 빨리 내 마음도 피렌체가 가 있는 것 같다.

   시위를 하러 나서는 마음은 착잡한데, 그나마 이 책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르네상스 시대의 중세 도시, 피렌체의 풍경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책을 펼친 우리를 예술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이 도시의 구석구석으로 이끄는 사람은 바사리라는 재능 있는 화가이자 꼼꼼한 미술사학자. 이 바사리라는 인물이 잡아 끄는 대로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피렌체의 역사, 정치, 문화의 대강을 알게 되고, 이 작은 도시 국가의 역사와 정치, 문화를 씨줄과 날줄로 삼아 엮어 낸 피렌체 예술-미술과 조각, 건축-의 찬란한 결과물들을 만날 수 있다.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복잡하고도 어려웠을 것 같은 내용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 이유가 추천사에도 이야기하고 있듯이 작가의 ‘재구성’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말이 좋아 ‘재구성’이지, 재구성은 ‘창조’와 다를 바 없다.(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라고 했던 사람이 누구였더라?) 재구성을 하려면 재구성하려는 대상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해서 자신의 생각이나 관점으로 구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창조만큼이나 어려운 것이다. 

 

   이 책 곳곳에는 바사리가 쓴 ‘르네상스 미술가 열전’에서 내용이 발췌되어 있어 바사리의 책을 만화로 나타낸 것이라고 생각하지 쉽지만, 바사리의 책의 내용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하고 작품의 구상 상황에 적절한 내용을 골라, 읽는 사람이 이렇게 알기 쉽게 전달하기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이다. 만화가들이야 원래부터 재구성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지만,  딱 있어야 할 곳에 가장 적절한 내용을 배치하는 작가의 작품 구성 능력은 여느 만화가들보다는 훨씬 뛰어난 것 같다.(이건 십자군 이야기 1,2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음으로는 만화 속에서 세계 명작들을 여러 편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만화와 함께 등장하는 회화, 조각, 건축 등의 그림이 오히려 화집으로 볼 때보다 훨씬 친숙하게 느껴진다. 당연히 만화의 내용 전개에 꼭 필요한 예술품들이기도 하고. 만화 속 작품은 작품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가지 배경 상황을 자세하게 풀이해 주는데도 훌륭한 역할을 한다. 물론 작품 전체를 다 볼 수 없다는 점과 어쩔 수 없이 작품의 화질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여러 작품을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훌륭하다. 더구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속속들이 파헤져 주니 -그것도 알기 쉽게- 지식만화라는 분류가 허명은 아닌 듯싶다.  

 

   또 하나 더 들고 싶은 것은 작가의, 여전한, 촌철살인의 현실 풍자! 가령, “고-소-영 장관들하곤 질이 다른데……”(112쪽) 라든가, “지지율 역대 최저”, “거의 대운하 수준인데?(123쪽)”, “저 놈 머리는 저용량임에 틀림없어….”(128쪽) 등 이야기 곳곳에 상황에 딱 들어맞게 날려주는 코멘트는 정말 경이롭다.(십자군 이야기 1,2에서도 역시 그랬다.) 또 인터넷 용어라든지, 누리꾼들의 속어들이 내용 전개에 자연스럽게 잘 녹아들어가서 (나 같은 경우엔) 책을 읽는 내내 키득거리게 된다.

   책의 이런 장점들 때문에 조금은 가라앉은 마음으로 서둘렀던 퇴근길이 결과적으로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지하철이 서면역에 닿았을 땐 살짝 아쉬운 마음도 들었으니까. 그 아쉬운 마음이 도리어 힘이 되어, 전경들이 보호해 줘서 아늑하기까지 했던, 서면 8차선 대로에 씩씩하게 앉아 주먹을 흔들며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고 돌아왔다. 현실은 이렇게 갑갑하지만 그래도 가끔 책을 보며 키득거릴 수도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이런 책이라도 없었다면 내 생활이 참 건조했겠구나, 이런 생각을 해 봤다.

 

   百聞不如一讀이다.  

 

 

 걱정 하나와 불만 하나!  

 1. 걱정 : 설마 '르네상스 미술 이야기'가 피렌체 편으로 끝나는 건 아니겠지? 아니면, 다음 권이 한 2년 있다가 나오면, 다시 피렌체부터 읽어야 하니 곤란한데... 내 걱정이 기우杞憂이기를 빈다. 

 2. 불만 : 앞의 걱정과 비슷한 내용이긴한데, 십자군 이야기 2권 이후는 더 이상 안 나오는 건가? 곧 나온다고 2권 마지막에 써 있었던 거 같은데, 그래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는데... 십자군 이야기 계속 만들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이, 배신감의 정체는 뭔가? 음... 미술에 빠지셨네(?). : 참, 서울대 미학과 나오셨다니까 생각 나네. 그 대학 먼저 다닌, 변 모씨 좀 말릴 수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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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3 21: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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