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중간고사 기간. 늦어도 한참 늦었다. 늦게 찾아와도 중간고사 기간은 기분이 좋다. 왜냐면 오전에 시험감독만 하면 오후엔 비교적 자유로운 시간이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각자 맡은 업무에 따라서 답안지 채점도 하고, 다음날 시험이면 문제지 검토를 최종적으로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학년 담임을 맡은 사람들은 다 같이 모일 기회가 적기 때문에(야자감독을 해야 하니, 밤마다 두 명씩은 꼭 학교에 남아 있어야 한다.) 시험기간에 학년 담임 모임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관례가 되어 있다. 

   학년모임 알러지가 있는 나는, 어떻게 하면 이 모임을 빠질 수 있을까, 궁리만 한다. 그러다 빠지기가 쉽지 않으면 어떻게든 1차로 빨리 끝내고 2차부터는 안면몰수하고 집으로 가려고 애를 쓴다. 

   모임을 주도하는 분들은 어디서나 그렇듯 '주당'들. 40대 후반의 남교사들이 주축이다. 자식들도 이제 다 컸고, 사모님들도 남편이 집에 일찍 오는 걸 그리 반기시지(?) 않는 연배가 된지라 어떻게든 모임을 연장해서 2차, 3차 여러 명이 어울려 다니고 싶어한다. 사람들이 회식에 다 오면 서로 친해졌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며, 보통 그렇듯, '옛날에 우리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어법을 주로 구사한다. 항상 2차를 생각하고 장소와 시간을 주도한다.

   여기에 동조하지 않으나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젊은 여선생님들. 미혼인 그들은 늦게까지 놀아도 딸린 식구가 없기 때문에 노는 것은 별로 문제가 안 되나, 과히 학교의 '노땅'들과 노는 것이 그리 썩 유쾌한 것은 아니나 안면몰수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기 때문에, 다 같이 움직이는 특징이 있다. 분위기를 타서 다 같이 2차를 가서나 모두 집으로 흩어지거나. 대체로 모임에서의 발언권은 약하나 단체로 움직이고, 이 집단의 참석 여부가 회식의 분위기를 좌우하기 때문에 주도자들이 적절하게 의견을 수용해 주는 편이다. 대신 자기 의견을 내는 것에 비교적 소극적이다.

   집에 가면 부모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애들도 있고, 회식을 싫어하는 (나를 포함해서) 세 사람. 어떻게든 회식에 빠지기 위해서 애쓴다. 그러나 소심한 반대파로  한 두 번을 제외하고는 거의 참석하는 편. 모임에서는 자리만 채우고 있기 일쑤나(그런 특징 때문에 오히려 더 주목받는 경향이 있다.) 모임에 빈자리가 없어야 학교 '분위기'가 좋다는 황당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 때문에 잘 빠지지 못한다. 분위기를 망치는 주범으로 몰려 학교 생활을 피곤하게 하는 것도 마음에 걸리고.

   학년부장. 학년의 담임을 챙겨야 한다는 부담감. 그게 결국 좋은 모임을 만드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회식을 즐기는 스타일. 역시 집에 가서 챙겨야 할 식구가 없기 때문에 늦는 것에 상관 없이 맘 편하게 모임을 주도할 수 있다. 대신 여자 특유의 배려심이 있어, 갈 사람은 먼저 보내자는 주의. 

   나는 항상 회식이 싫다. 옛날에도 그런 공식 모임을 아주 싫어했다. 거기에서 나오는 애들 얘기도 싫고, 학교 얘기도 싫고, 그냥 분위기를 위해 하는 싱거운 소리도 다 싫다. 지금은 거기에다 내 처지를 생각해 볼 때 더욱 회식이 싫다. 내가 평소에도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있는데, 시험기간만이라도 집에 일찍 가서 진복이랑 놀고 싶기도 하고, 가족들끼리 저녁도 먹고 싶은데 그런 날 꼭 다 같이 회식을 해야 한단다. 백 번 양보해서 그런 회식이 조직원의 의무(?)처럼 느껴진다고 하더라도, 그건 1차로 끝내야 한다. 

   서로가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자. 제발, 회식에서 나를 좀 빼달라! 내 돈 내고 안 먹을테니, 제발 나를 좀 빼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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