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정말 이상한 해다. 몇 년을 가야 한  번 걸리는 감기가 벌써 올해 들어서 두 번째다. 학교를 옮긴 것 말고는 특별히 달라진 일도 없는데, 콧물이 슬글슬금 내려오기 시작한다. 역시, 학생들이 재빨리 눈치를 채고 툭 던지는 말 - 샘, 오늘 왜 이렇게 초췌해요? 

   며칠 동안 약간 바쁜 일은 있었다. 지난 토요일, 점심시간에 우리 반과 다른 반에서 보물찾기를 했다. 소풍가서 학년 전체로 보물 찾기를 했는데 우리 반 녀석들이 거의 찾지 못해서 특별히 우리 반만 참가하는, 보물 찾기를 했다. 우리 반 교실에 쪽지를 숨겨두고 찾는 학생에겐 바로, 선물!(그래봐야 아이스크림 하나나 과자 한 봉지) 그래도 아이들이 좋아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간식을 자주 사 주는 편인데, 그게 좀 못마땅한 사람도 있는가 보다. 그걸 보고 '거지 근성'이라고도 표현하던데, 순간 마음에 돌덩이가 쿵하고 떨어졌다. 내가 느끼기엔 아이들이 간식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게 맛있기도 하겠지만(간식 싫어하는 사람이 그리 많겠나? 더구나 공짜라면 더욱!) 선생님이 사 준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적어도 난 그랬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거라도 선생님께서 주시면 왠지 모르게 특별히 아낀 경험이 있었으니까. '이 동네...', '거지 근성'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얼굴이 굳어지면서 '이 동네'에 살고 있는-앞으로도 이 동네서 학교를 다닐 진복이가 선생님으로부터 저런 소리도 듣겠구나, 싶어서 마음이 착, 가라앉더라. 

   아무튼 보물찾기가 끝나고는 지난 소풍에서 보물 찾기에서 <느티나무샘과 데이트>를 찾은 학생과 점심 먹으로 나섰다. 둘이서 근처 피자가게에서 피자를 먹으며 신나게 떠들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맛있는 아이스크림도 하나. 데이트라면 길거리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게 필수 코스처럼 느껴지던데... 점심 잘 먹고, 얘기도 잘 하고 자습하는 학교로 돌아오니 벌써 3시 반. 자습하는 아이들과 함께 교실에 앉았다. 

   그러다가 정독실에 아이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더니 감기 몸살로 한기가 들어서 몸을 덜덜 떨고 있길래, 교무실로 데리고 와서 무릎 담요를 여러 장 덮어 한기를 좀 가라앉히고 나서, 내가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했더니 한사코 거부했었다. 이상하다 싶었지만, 꼭 혼자 가야한다고 해서 담당선생님께서 허락을 하셨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다시 정독실에 올라와서 자습시간을 다 채우고 집에 갔다고 한다. 독하다고 해야 할 지, 미련하다고 해야 할 지... 스스로 정한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는 얘기를 오늘 했었다. 

   저녁에는 모처럼 의주샘과 선희씨가 놀러왔었다. 진복이 신발을 사서 왔는데, 매번 올 때마다 선물을 들고 와서 고맙고 미안하다. 게다가 저녁까지 우리가 얻어먹었다. 저녁을 먹고 밤인데도 상쾌해서 구민운동장을 한 바퀴 산책했다. 구민운동장 산책은 진복이가 제일 좋아하는 놀이다. 운동장 옆 낙동강에 가서 돌맹이 던지는 게 그렇게 재미있나 보다. 집에 와서 차 한 잔 마시고 일어나니 벌써 10시 가까이가 되었다. 

   일요일 아침, 7시. 복이 때문에 잠이 깼는데, OO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주 담담한 목소리로,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라고 하는데 또 한 번 마음 속에 뭔가가 쿵 떨어졌다. 20년 동안 알고 지내온 친구. 나는 그 어머니가 해 주신 밥을 얻어 먹기도 했었는데. 아주 담담하게 말하는 녀석이 좀 낯설었다. 나도 저럴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어쨌든 오후와 저녁은 조문을 가야 한다. 전화를 받고 내내 마음이 편치 않다. 

   깜빡 잠이 들었다가 다시 깨니까 오전 10시 반이었다. 3월부터 일요일 오전 늦게 운동장을 산책하고 점심은 외식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이번에는 토요일 밤에 운동장에 다녀왔기 때문에 복이랑 학교로 갔다. 학교 운동장 주변과 교사(校舍) 구석구석을 천천히 돌았다. 붉게 영산홍이 핀 화단은 예뻤고, 아이들이 없는 학교는 조용하고 고즈넉해서 좋았다. 복이가 나중에 학교랑 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점심으로 국수를 먹었다. 집에 와서 낮잠을 자는 것도 익숙한  휴일 일과. 그만큼 편안하고 고요한 일상이다. 

   오후 5시 OO 병원으로 조문을 갔다. 아는 얼굴이라곤 후배 한 명. 아직 이른 시간이라 문상객은 별로 없었다. 한 두어 시간 앉아 있으니까 장례식장은 조문객으로 붐볐다. 녀석이 꽤 정력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지라 지인이 많은 덕이다. 멀뚱하게 있다가 뒤늦게 찾아 온 동기들이랑 이런 저런 얘기! 모두 학교 선생들인지라 늘 그 얘기가 그 얘기다. 그래도 여느 학교의 선생님들보다는 편하고 속내를 털어놓기에 좋다. 이젠 서로의 생각이 많이 다르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가끔은 치대고 싶은 동기들이니까. 

  10시가 넘어서 일어섰다. 택시를 탈까 하다가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 안에서 두리번거리는 게 재미있었다. 아내와 밀린 얘기를 나눴다. 나는 주로 문상갔던 얘기고, 아내는 진복이랑 있었던 일을 말했다. 진복이가 차츰 제 엄마와 친밀해지고, 나를 조금씩 밀어내고 있다. 귀가 시간이 늦은 탓이 아마 클 것이다. 분발해야겠다. 

   다음날 출근을 앞둔 시간. 울리는 전화벨 소리. 낯선 번호, 낯선 목소리. 착 가라앉은 목소리다. 우리반 학부모님. 아내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학생이 상주(喪主)라 오늘부터 학교에 갈 수 없단다. 어제 아침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일단 서둘러 출근을 했다. 머리가 멍했다. 밖에는 날이 습했다. 곧 비가 내릴 것 같았다.

   아침 조례시간에 OO가 학교에 못 나온 이유를 말했다. 저녁에 조문 갈 사람은 나에게 말하고 가도 좋다고 했다. 나도 1교시 후에는 다음 수업이 오후에 있었기 때문에 문상을 가기로 마음 먹었다. 어느새 밖에는 빗방울이 굵어졌다.  

   양정까지는 꽤 멀었다. 장례식장에 들어서니 오전이라 문상객은 거의 없었다. 빈소에 절을 하고 나서 녀석과 마주 앉았다. 학교에 있을 때는 얘기해 볼 기회가 없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녀석이 겪었을 불안과 고통과 답답함이 쉽게 와 닿지 않았다. 더구나 앞으로 녀석이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는 더욱 가늠이 되지 않는다. 녀석의 귀에 가 닿지도 않을 힘없는 소리인, '기운을 내야 한다'고 여러 번 중얼거렸다. 

   수업이 시작되기 10분 전에 학교에 도착했다. 더구나 오후 수업은 토요일 수업까지 포함해서 5,6,7,8교시가 연강이었다. 마음도 심란한데다가 기운도 없어서 영 수업이 힘들었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사탕 사 준다는 약속이 생각나서 막대사탕 하나씩 물려줬다. 나는 수업 시간에 슬쩍 눙치면서 한 마디! "얘들아, 사는 건 슬픈 일이데이", 아이들은 "우하하"   

   저녁에 별다른 일 없이 학교에 남았다. 아이들이 자습하는 걸 지키고 앉아 있었다. 자습시간에 아이들이 쓴 우리 반 일기장을 읽고 답장을 써 준다. 날마다 돌아가면서 쓰니까 매일 공부해야 하는데, 몸이 안 따라준다는 내용으로 가득 채운다. 나도 지치지 않고, '그래도 해야한다'고 쓰고 또 쓴다.(쓰면서도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다.) 10시에 종이 울리고 아이들이 왁자지껄 떠들면서 몰려나간다. 서둘러 가방을 챙기고 학교를 나온다. 길고 긴 주말과 휴일, 그리고 월요일이었다.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오늘(화) 아침에 일어나니 편도가 부었는지 침을 삼키기가 몹시 어렵고 코도 막혔다. 지금도 여전히 콧물이 흐르고 있다. 다시 감기에 걸렸나 보다. 올해 들어 두 번째다. 참 이상한 한 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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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04-23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이 버거운 사람들이 늘 우리 주변에 있지요. 남겨진 사람들이 덜 힘들어졌으면 합니다. 느티나무님도 감기 어여 떨치시구요. 멋진 선생님과 함께 하는 아이들이 복 받았어요.

느티나무 2009-04-23 16:26   좋아요 0 | URL
네, 얼른 감기 떨쳐야지요. 어제는 9시부터 자고 오늘 아침에 일어났더니 감기가 좀 떨어지는 것 같더라구요. 학교 와서 일하니까 그대로였지만... 삶이 버거운 사람들... 한편으로 내 삶을 견주면서 그들 만큼은, 이라며 속으로 안도하곤 합니다. 얄팍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