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유행한 말처럼, 별일 없이 산다. 근래에 보기 드문 착한(?) - 교사들의 말을 곧잘 듣는- 아이들의 담임을 맡아 같이 학교에 남아서 아이들이 공부하는 걸 지키고 앉아 있다. 3월부터 지난 주까지는 상담이랍시고, 아이들이 살아온 내력을 묻고, 현재의 성적과 고민을 묻고, 미래의 꿈에 대해서 물었다. 대답하기 힘든 질문도 많았는데, 녀석들은 술술 잘도 풀어놓았다.
학교 건물 앞 화단에 핀 영산홍이 진달래보다 붉다. 점심을 먹고 바람이 제법 차가운 학교를 한바퀴 돌았다.그래봐야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아이들이 지나가면서 연신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건넨다. 나는 손을 흔들거나 가볍게 고개를 숙인다.서로에게 웃음이 번진다. 수업 시간에도 마찬가지다. 어디서 요렇게 예쁜 녀석들만 골라 왔나 싶을 정도로 멋진 녀석들이 많다. 저희들 속내야 어떤지 잘 모르지만, 내가 보여주는 별 것 아닌 친절에도 감동한다. 나는 그런 녀석들이 신기하다.
요즘 늘 슬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사람들은 의외라는 듯, 갸우뚱! 어떤 날은 그래, 괴롭고 힘든 세상, 이만하면 견딜만도 하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갑자기 까닭도 모르게 마음이 답답해서 미칠 것 같은 날도 있다. 그러면서 별일 없이 산다.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래도 난 별일 없이 산다. 이 분노는 '나는 그래도 아직 건강한 생각을 하는 소시민'이라는 자기합리화의 '알리바이'이다. 정말 세상이 '개똥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별일 없이 살고 있으니, 내가 '개똥 같다'고 욕하는 세상에 대해 아무런 의미 있는 행동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책을 열심히 읽겠다고 마음 먹은지도 오래. 그냥 하릴 없이 책만 뒤적이다가 시간을 보내는 게 벌써 두 달도 넘었다. 좀 보다가 밀쳐두고, 밀쳐두고... 책은 왜 읽나? 하는 생각이 너무 자주 드는 게 문제다. 지금도 책은 늘 손에 들고 다니지만, 도무지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슬럼프가 너무 오래간다. 그래도 별일 없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