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이다. 사람들이 시간의 흐름을 하루, 한 달, 일 년으로 구분지어 놓은 건, 이런 구분을 통해서 시간의 변화를 확인함과 동시에 변화의 틀을 바탕으로 새로운 결심을 쉽게 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새로운 출발이니 너희들도 새로운 결심, 새로운 행동, 뭐든 달라지고 싶다는 욕망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앞에 잔뜩 흐름의 새로운 변화라고 해 놓고, 지난 이야기를 하자니 좀 어색하긴 하다만 그래도 이 쪽지가 지금까지 보여준 일관된 흐름이 있으니 지난 번 모임으로 되돌아가 보자. 나의 서양미술 순례,가 읽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었지? 나도 너희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기엔 그리 녹녹치 않은 문장과 행간에 배어있는 작가의 슬픔이 너희들의 마음에 전해지기 위해 필요한 작가의 가족사-가족사이면서 우리나라의 굴곡진 현대사겠지- 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했던 상황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었다.

   그런데 말이다, 내가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정말, 그게 다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정말, 그 책이 너희들이 읽기에 턱없이 어려운 내용이었을까? 우리는 작가가 전하려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자 얼마나 노력했나, 한 번 읽고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면 다시 생각을 가다듬고 한 번 더 읽어봐야 하는 거 아닐까? 배경지식이 중요한 책이라는 힌트가 주어졌다면 적어도 작가의 가족사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애써야 했던 것은 아닐까? 정작 이런 자기 노력에는 게을렀으면서도 ‘책 내용이 어렵다’는 ‘변명’으로 일관한 것은 아니었던지 우려스럽다. 만약 그랬다면 그런 사람은 결국 언제나 그 ‘수준’에 머물고 만다. 자기가 책을 못 읽어내는 게 자기의 노력 부족이 아니라, 어렵게 쓴 작가 탓이니, 다음에도 비슷한 책을 만나면 마찬가지 결과가 나오는 거 아닐까?

   모임 첫날부터 시작해서 토론의 가장 중요한 활동이라고 여러 번 이야기했던 ‘듣기’ 문제도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했다.(모임이 끝나가는 이 마당에 이런 얘기가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모르겠다만, 우리 모임에서 제대로 배운 자세가 네 삶에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내가 좋은 화자(話者)가 되려면 훌륭한 청자(聽者)가 되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강조했었는데, 모임에선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니까 이야기의 흐름이 뚝뚝 끊어지고,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쉽게 샌다. 지난 모임에는 잘 듣던 친구가 이번에는 영 아니고, 지난번에는 옆 친구랑 얘기하느라 남의 얘기는 거의 안 듣던 친구가 이번에는 잘 듣는 걸 보니, 특정한 학생의 듣기 능력 문제가 아니라, 모일 때의 마음가짐이 문제인 것 같다. (아울러 친한 애들끼리 어울려 앉는 건 좋은데, 그 친구랑 해야 할 얘기가 있다면 마치고 둘이서 하면 안 될까?) 그래도 다른 친구가 진지하게 얘기를 하고 있는데, 혼자 딴 책을 보고 있는 건 좀 너무 했다고 생각하지 않니? (난 깜짝 놀랐다구-세상에 이런 일이!)

   잔소리는 이쯤해 두고, 이번 책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우리들의 하느님> 제목만 보고 종교에 관한 책이 아닌가 싶어서 거부감(혹은 반가움)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 보면 인간에게 종교는 왜 있나? 여러 답이 있겠지만, 결국은 인간이 올바로 살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거 아니겠나? 이 책은 사람이 제대로 살기 위해 필요한 근본적인 깨달음에 대한 책이라고 봐야할 것 같다. 권정생 선생님은 하느님을 믿는 사람인데, 보통 우리가 흔히 아는 종교인의 모습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이 땅에서 교회가 보인 모습에 실망해서 교회를 비판하는 자세는 오히려 교회를 믿지 않는 사람보다 훨씬 매섭고 엄정하다. 그러면서도 이 분은 일상에서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는 굳건한 믿음에서 나온 빛나는 성찰이 돋보이는 책을 써 내신 분이다.

  너희들도 이런 생활글을 한 편 써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숙제라고 생각하고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라는 주제로 글을 한 번 써 보자. 1월 6일은 일찍 마치는 대로 바로 중앙현관에 모여서 어디를 좀 가려고 한다. 특강은 거기 가서 들을 거야. 아마 거기서 점심을 먹고 편하게 이야기도 나누고 궁금한 건 묻기도 하고 그러자. 마치면 거기서 좀 놀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텐데 이야기의 일관된 주제는 - 어떻게 살 것인가? 좀, 추상적이지? 그렇지만, 이야기를 하다 보면 훨씬 구체적인 모습으로 다가가게 되리라고 믿는다.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여기까지. 나머지는 하느님께 맡기자! 
 

2009년 새해 시작부터 지독한 몸살을 앓고 있는 느티나무가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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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9-01-05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쥐한테도 밥을 주셨다던 바른 삶... 正生이란 제목의 '지식채널'이 있었지요.
지독한 몸살엔... 링거 맞고, 뜨끈한 아랫목에서 죽은 듯 자는 게 약입니다. ㅎㅎ
이제 40대죠? 한해 한해가 다를거요. 몸 건강 잘 챙기며 시작합시다.
방학 되면, 해콩샘이랑 밥이나 한끼 합시다!
아프지 마쇼. 진복이 옮을라~~ㅎㅎ

느티나무 2009-01-05 22:11   좋아요 0 | URL
네, 지식채널은 책으로 봤어요. 애들한테도 보여주려고요. 신기하게도 살면서 링거란 건 맞아 본 적이 없습니다. 아직 마흔 되려면 훠~~~ㄹ~~~씬 남았습니다.(누구 때문에 동년배라고 착각하신듯 합니다.)이제 몸살 6일짼데, 이쯤 되면 슬슬 나아가야죠. 제가 진복이한테 옮아서.. 이렇게 된 거 같은데요.푸핫~! 아무튼, 글샘님도 건강하게 올 해 나시기를 빕니다. 올핸 학교를 옮기는데, 어디서 새로 시작하게 될지... 긴장과 설렘이 교차합니다.

글샘 2009-01-06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맞다. 콩콩샘이 그렇군요. ㅎㅎ 올해 학교를 옮기시는군요. 어딜 가시든 아이들과 재미있는 삶을 살게 되실 것입니다. ^^
저도 요즘 일상적으로 알콜의존증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휴=3=3
오늘 방학 했는데, 한 1주일 쉬니깐... 좀 낫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