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년 개띠 - 고침판
서정홍 지음 / 보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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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료들과 가끔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른다. 예전에는 '최신곡'도 몇 곡 알아서 노래방에서 가끔 연습도 하곤 했는데, 언젠가부터 '최신곡'을 부르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너무 빨리 나왔다가 금방 사라져 버리는 최신곡의 유행 주기도 그렇고, 요즘 노래 자체의 빠른 템포나 가사 등을 소화하지 못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 때는 같은 나이에도 언제나 최신곡을 준비해 두었다가 자랑스럽게 부르는 동료를 부러워 적이 있었다. 나만 이렇게 세상의 흐름을 좇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어 은근슬쩍 불안하기도 했다.

   서정홍의 <58년 개띠>를 읽으면서 누구나 '노동'에 대해, '우리말'에 대해, '시'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된다. 수 십 년 기름밥을 먹고 등골이 빠지도록 일하였으나, 여전히 가난한 노동자 시인이 담담하게, 그래서 더욱 서늘하게 다가오는 '노동'에 대해 말한다. 이 시인의 노래는 나에게 그냥 철지난 '옛노래가' 아니라 애창곡이 되어 마음을 푹 담글 수 있게 하였다. 가끔씩 '너무 단순한 도식성에 빠진 것이 아닐까?'-가난한 사람(노동자)은 착하고, 부자(사용자)는 나쁘다-하는 생각이 들어 약간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그런 생각은 이내 시집 뒤편으로 갈수록 돋보이는 현실감 있고 생생한 일상의 묘사와 함께 날아가 버렸다. 모처럼 진짜 노동자의 눈으로 시를 쓰는 시인의 시집이다.

   특히 내 눈길을 끌었던 시들은 '우리말 사랑' 연작시들이다. 쉬운 우리말의 혜택을 누구보다 많이 누리는 시인들이지만 우리말의 고마움을 모르는 시인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또 어느 시인의 시집에서 어려운 말 쓰지 말고 쉬운 우리말로 이야기하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고 있는가? 서정홍 시인처럼 이렇게 분명하고 쉽게, 우리말을 아끼고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 시인도 별로 없었을 것 같다. '애수니 비애니 그러지 말고/그냥 슬픔이라 쓰세요./환희니 희열이니 그러지 말고/그냥 기쁨이라 쓰세요'라고 말하는 시인은 이 시집 전체에서도 자신의 말대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우리말로, 거짓된 것으로 꾸미지 않고 말하고 있다.

   결국 '시인이란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살려 우리 삶의 현실을 노래하는 사람'이라고 하고, 시인의 노래집을 시집이라고 한다면 '서정홍'은 '시인'이라는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시인이고, '58년 개띠'는 그의 노래집인 것이다. 일하면서 살아가는 삶의 고달픔이나 기쁨을 이야기하는 노동 문학이 어찌 1980년대만의 것일까? 지금도 여전히 이 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현실은 많이 달라지지 않았고, '현실의 달라짐'을 말하기 전에 본질적으로 인간은 일하는 동물이 아닌가? 그러기에 노동 문학은 흘러간 '유행가'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애창곡'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 시집을 읽고 나니 노래방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맘껏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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