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고 싶지만
고등학생 48명 지음, 한국글쓰기연구회 엮음 / 보리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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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일요일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별로 즐겁지 않았다. 잠에서 깨어 밥을 먹고 집에 있는데 아버지께서 나보고 수건에다 찬물 좀 적셔오라고 하셨다. 나는 아버지 이마를 손으로 만져 보았다. 불덩이였다. 어머니께 아버지가 열이 지금 아주 많이 난다고 말을 하였더니 어머니께서는 아버지 약을 찾아서 드시게 하시고는 아버지께 안마를 해 주는 것이었다.

   아버지께서는 많이 편찮으신지 누워서 일어나지도 않고 이쪽저쪽으로 가끔씩 뒹굴었다. 어머니께서는 나에게 아버지께 안마를 좀 해 주고 같이 있어 주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아버지께 안마를 해 주려고 다리를 만졌다. 그런데 너무나 야위어서 그런지 내 팔보다 더 얇게 느껴졌다. 나는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는 화장실에 앉아 혼자 울었다. 우리들 때문에 고생하시다 병을 얻은 아버지를 생각하니 저절로 눈물이 나와서 참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께 한 번도 잘해주지 못 하고 철없이만 굴었던 나 자신이 이렇게 비참하게 느껴질 때가 처음이었다.'

- 2000년 5월 14일 2학년 용덕


   <날고 싶지만>을 읽고 몇 년 전 우리반 용덕이의 학급일기를 다시 보게 되었다. 학기초에 '반장'하고 싶다고 우겨서 겨우 당선되고, 성질 급해서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누구에게라도 덤벼들고, 자기보다 약한 학생들을 가끔 때리기도 하던 '꼴통' 반장 녀석이었다. 담임인 내 속을 무던히 썩였던 녀석이었는데, 어찌어찌 졸업은 해서 군대가기 전에 가끔 술 사달라고 전화를 하고는 했다. 그래도 지금은 어엿한 군인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 가끔은 '대학 갈라믄 무슨 공부해야 됩니꺼?'라며 자기 방식으로 안부전화도 하는 기특한 놈을 생각나게 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 놈한테 해 준 게 무엇일까? 가만 생각해 본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담임교사로써 특별히 해 준 일은 없는 거 같다. 꾀병부리면 귀에도 안 들어갈 잔소리나 잔뜩 하고, 말썽부리거나 약속을 안 지키면 매를 들기도 하고, 학교에 안 나오면 전화해서 꾸중하고, 다른 친구들 괴롭히면 벌도 주고, 다신 그러지 말라고 타이르고... -아마도 이런 말하긴 쑥스럽지만- 그 해가 끝날 때까지 끊임없이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게 다르다면 달랐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용덕이의 집안 사정을 알고 있어도 학교에서 부적응 행동을 보이면 전체를 생각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로 곤란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내가 그 녀석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걸 그 놈도 학년말에는 알아줬던 게 아니었을까?

   옆에서 지켜 본 우리 고등학생들은 정말 고민이 많다. 어른들이라면 안 해도 될 고민들을 제 생애 전부를 걸고 하기도 하고, 세상이 청소년들에게 덮어씌운 고민을 안고 끙끙대기도 한다. 때로는 고민이 깊어지면 상처받고, 방황하기도 한다. 그 시절의 고민과 방황과 상처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건강한 것이기도 하다.

   어른들은-부모님과 선생님들은- 왜 그렇게 기억력이 나쁜지 자기들도 겪은 청소년들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 한다. 고민해야 성장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쓸 데 없이'라는 무관심한 말로 무질러 버린다. <날고 싶지만>은 청소년들이 사는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어른들이 보면 사소하고 아무 것도 아닌 일들을 써 놓은 책이지만, 그 시기, 그 시절에는 중요하고, 소중한 것들을 기록한 책이다. 가족, 학교, 친구들의 세계를 전부로 고민하는-그래서 더욱 건강한- 우리 청소년들의 삶이 속내들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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