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9교시와 자율학습 시간에 글밭 나래 우주인 모임이 있었다. 책은 위화의 인생이었고 책읽기 후 함께 나눌 이야기의 주제는 내 인생 최고의 사건/최악의 사건이었다. 지난 모임은 조금은 특별했던 지라 꼭 기억해 두고 싶다.

   9교시는 생활나누기 시간으로 활용하는데, 올해 들어서는 일상적인 이야기 보다는 특별한 활동을 많이 해 보고 있다. 예를 들면 내 마음에 남는 노래 부르기,처럼 자기를 표현하거나 자기 자신을 탐구하는 과제 발표가 많은데, 어제는 사회자 권한으로 몸풀기 게임을 했다. 벌칙이 있는 수건돌리기, 지난 주 1박 2일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나왔던 술레잡기, 고기잡이 등을 하니 1시간이 뚝닥 가 버렸다.

   저녁을 먹고 다시 모여 본격적인 독후 활동 시간. 먼저 책을 읽고 느낀 점을 간단하게 발표하기였는데, 아이들은 책에서 '죽음'의 이미지를 많이 떠올린 것 같았다. 사실 이 책은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것인데, 의외로 죽음이 주는 느낌에 대한 말들이 자주 나와 좀 의외였다. 그래도 어떻게 보면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의 죽음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기도 한 것이고, 결국 살아간다는 것은 죽음을 향해 간다는 말도 되니까.

   아이들에게 책을 건네 줄 때 "이 책을 읽고 눈물이 흐르면 네가 인생에 대해서 뭘 좀 아는 것이야"라고 말해 주었는데, 아이들은 그 말이 크게 걸렸나 보다. 대부분 눈물은 안 나던데? 아직 나는 인생을 잘 모르는 것인가? 하는 반응이 주였다.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하는 중에 자기가 쓴 글을 읽던 엽이가 눈물을 흘렸다. 책을 읽으면서 울었던 생각이 다시 났는지 자기가 써 온 글을 읽기 시작할 때부터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하더니 곧 울먹이며 말을 겨우 알아들을 정도인 채로 겨우 다 읽었다.

   나는 책을 건네 줄 때 시험기간이라 부모님이 먼저 읽어 보시는 게 좋겠다고 말했었는데, 부모님과 함께 책을 읽은 학생도 꽤 있었다. 예서, 민아, 정인(황), 정인(박)이 어머니나 아버지께서 책을 읽으셨다는데, 내가 부모라면 자식과 책을 두고 서로 소통할 수 있어서 참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학생들도 부모님께 책을 권했을 텐데 이 학생들은 특별히 발표시간에 부모님이 책을 읽으시고 느낀 점을 알려주셨다.)

   독후 과제로 내 인생의 최고의 사건과 최악의 사건을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두 사건을 모두 발표하기엔 시간이 부족해서 한 명이 최고의 사건을 이야기하면 그 다음 사람은 최악의 사건을 발표하기로 했다.

   문이 잠겨서 밖에 오래 있었던 이야기, 방송부원이 된 이야기, 같이 있던 친구가 교통사고가 났던 사건(설빈이가 이야기를 할 때 조금씩 목소리가 떨렸다.) 어머니가 수술 받은 일(이 얘기를 들을 때도 다들 숙연해졌다.), 초등학교 때 좋아한 남자애들 생일에 초대했던 일, 오랫동안 키운 강아지를 잃어버린 일(예서도 이 때 울었다.) 제일 좋은 자리에 앉아서 신화 콘서트를 본 일(이건 현주-현주는 신화의 10년 팬!) 피아노를 치는 무대에 섰던 일, 부모님이 힘들게 사셨던 일... 돌아가면서 최악과 최고의 사건이 엇갈리는데 마치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축소판 같은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그래도 어제가 특별한 이유는 도경이 때문이었다. 도경이는 '이 이야기는 저번에 시 낭송회 때 읽은 시와 관련이 있어요',라는 말로 자기가 쓴 글을 읽어내려 갔는데 한 서너 문장을 읽었나, 그 때부터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조금 더 이어지자 아이들도 모두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조금 지나니까 글을 읽고 있는 도경이도 읽기를 멈추고 서러워서 울고, 도경이의 말을 듣고 있는 아이들도 슬퍼서 펑펑 울었다. (아마 제일 먼저 울었던 건 의외로 '동재'였을 것이다.)

   평소에 눈물이 많은 나도 눈가에 눈물이 흘러서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몰랐다.(더구나 우리는 무용실 바닥에 둥그렇게 모여 앉아 발표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 사람들이 울고 있는 모습이 바로 앞에서 빤히 보인다.) 그래도 도경이는 울먹거리며 끝까지 자기가 쓴 글을 다 읽었고, 도경이의 발표가 끝나자 아이들이 우르르 다가가서 꼭 안아주었다.

   아직도 발표를 못한 친구들도 서넛이나 남았고, 나도 내 이야기를 못 했지만 아쉽게도 마치는 종이 울렸다. 서둘러 짐을 챙기는 아이들의 표정에 아쉬움과 후련함이 교차하는 것처럼 보였다. 몇은 얼른 밖으로 나갔고, 몇은 둘러서서 발표를 들으며 못 다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래도 제일 표정이 밝아 보이는 건 도경이였다. 마음에 담았던 얘기를 다 풀었으니 어제 가장 속이 편했던 사람은 당연히 도경이였겠지.(도경이는 내가 맨날 '찌질이'라고 부른다. 예쁜 자식이 부정탈까 싶어서 '개똥이'라는 천한 이름으로 불렀다는 이야기와 똑같은 이치로 말이다. 그런데, 어제 발표로 '에이스'로 부르기로 했다.) 

   내가 무용실 문을 열고 나오는데 도경이의 절친한 친구인 영원이가 전부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나오면서 우리 조금 전에 다 울었다~,라고 말은 하면서도 방긋거리는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들을 보더니, 오늘 뭐 했는데? 너희들 좀 이상하다~,를 연발했다. 나에게 인사를 건네고 돌아가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참 씩씩하게 들렸다. 덕분에 나도 좀 울었더니 기분이 좋았다.

   나도 교무실에 내려와 가방을 챙겼다. 반 친구들과 함께 지현이가 내려왔다. 도경이 얘기를 잠깐 꺼냈더니 아직도 그 생각이 나는지 눈물이 그렁그렁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나오면서 아름다운 밤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참, 어제는 아름다운 밤이었다. 집으로 가는 도중에 정인이의 문자가 왔다.-오늘 모임으로 한 걸음 더 서로에게 다가선 것 같다고! 그래서 나는 누군가의 마음 속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라고 답했다.

   또 누군가가 들어올 수 있게 마음의 문을 여는 사람이 진정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용기 있는 사람이 또 행복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여 주었다.

   어제는 참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아름다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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