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청강연 재미있게 잘 들었을라나? 원래 같이 준비한 사람이 좋았다고 티내면 염치없어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학교와 학원, 그리고 좁다란 동네와 적은 친구들만이 아직은 세상의 전부라고 여기는, 많은 친구들에게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우리와 닮은 점보다는 다른 점이 더 많이 눈에 띄는 사람의 이야기라 우리 생각의 폭이 한참은 넓어졌으리라고 기대해 본다. 시간이 지나면 강연의 내용은 점차 잊혀지겠지만, 이주노동자와 그들을 위해 일해 온 분들과 함께 했던 짧은 시간은 오래도록 우리 마음에 남지 않겠나 싶다.

   아, 내 마음에 남아 있는, 그래서 ‘나의 노래’를 소개하는 시간도 각자 준비를 많이 해 온 덕분인지 음악실이라는 멋진 공간 덕분인지는 몰라도 특별한 무대에 오른 느낌을 줘서 즐거웠다. 아무리 소박할지라도 무대라는 공간은 사람을 떨리게 만들거든. 근데 그 긴장감은 기분 좋은 긴장감이었던 거 같다. 아무튼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네가 불렀던 그 노래는 아마 오래도록 그 사람과 함께 묶여서 우리들의 마음에 기억될 거야.

   지금처럼 우리 모두가 열심히 준비하고 그것을 같이 나눌 마음만 가지고 있다면 글밭 나래 우주인과 함께 우리의 행복한 시간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자, 어느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의 행복한 시간을 위해, 앞으로도 고고씽~~!!

   이번에 나눠 준 책 받았지? 책 가져가면서 ‘어? 시집(詩集)이네?’라는 친구들이 좀 있더라. 시집 한 권 안 읽어본 고등학생이 별난 게 아니라, 시집 한 권 읽어본 학생이 별난 학생인 게 우리 현실이다. 대다수의 고등학생들은 교과서에 나오는 시(詩)만으로도 충분히 벅차거든. 그렇지만 꼭 그게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잖아? 그래서 우리가 한 번 도전해 보는 거야. 고등학생도 시집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고. 더구나 사람 마음을 떨리게 하는 좋은 가을에 말이지.

   먼저 두 권의 시집을 재미있게 읽어주면 좋겠어. 다른 거 필요 없이 정말 ‘음, 이래서 시집(詩集)을 사서 읽는 사람들이 있군!’ 하고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단다. 이 두 권의 시집을 읽는 동안 평온한 네 마음에 작은 파문이 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한 번 읽고 무슨 뜻인지 모르겠거든 넘겼다가 나중에 차분하게 다시 한 번 읽어 보면 좋을 것 같다. 시집을 읽을 땐 소리 내서 읽는 게 젤 좋다고 하더라. 상황이 되면 그렇게 해 보는 것도 좋겠다. 그렇게 시집을 읽다가 네 마음을 흔든 시가 나오면 그걸 손으로 직접 한 번 써보는 거다. 그리고 그 밑에다가 이 시가 왜 네 마음을 흔들었는지 짤막한 메모를 해 보자. 어쩌면 이 짤막한 메모가 시의 본문보다 더 길 수도 있겠다. 우리 모임에 와서는 그 시를 한두 편 낭송할거야. 그리고 낭송이 끝나면 사회자가 사연을 물어 보는 형식도 좋고, 아니면 낭송자가 스스로 설명해 주는 것도 괜찮지. 어떻게 하든 상관없고 시간의 여유가 있으니 사회자와 조금 더 의논해 볼게. 낭송할 때는 배경음악이 있으면 더욱 좋을 것 같은데, 이건 내 욕심이고 각자가 알아서 해 보자. 배경음악이 있으면 좋겠지만, 이건 의무사항은 아니야.(중간고사를 이 주 앞두고 있지? 너희들 마음이 꽤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 가벼운 과제를 낸단다.)

   수요일 밤 늦게 KBS에서 방송되는 ‘낭독의 발견’ 이라는 프로그램이 다음 우리 모임의 좋은 모델이다. 어떻게 준비해야 할 지 잘 모르는 친구들은 그 프로그램을 잠깐이라도 보면 준비하는데 도움이 될 거야. 

   좋은 가을이다. 우리가 함께 즐기는 마지막 가을이기도 하지. 우리는 늘 좋은 시기가 지나고 난 다음에야 그 시기가 좋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예민한 감각으로 느끼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좋은’ 이 가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맑은 하늘 아래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날, 느티나무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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