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의 바다 여행과 주말의 모꼬지를 겸한 여행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있다. 정신 없이 지나가는 시간들이었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한 여행이라 아주 즐겁고 행복했던 것 같다. 먼저 바다 여행은 남해가 목적지였다.
부산에서 출발해서 사천을 거쳐, 남해-창선교를 지나서 창선면 지족의 원시어업인 죽방렴을 돌아보았다. 남해에 들어서자, 서서히 분발이 날렸다. 창선에서 시작한 남해 일주는 물건의 어부림을 거치고, 물미 해안을 지나서 송정과 상주해수욕장까지 닿았다. 철 지난 해수욕장에, 게다가 눈까지 흩뿌리는 날씨라 더 없이 을씨년스러웠지만,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창밖으로 건너다보며 점심을 먹는 것도 좋았다. 금산에 오르다 방향을 잘못 잡아서, 보리암이 올려다 보이는 중간에 내려와야 했다.
다음은 가천다랭이마을까지 해안을 따라 왔을 때는 햇살도 옅게 남은 오후가 되어버렸다. 찬바람이 세차게 불고, 눈까지 내린 날에도 수백층의 다랭이밭에는 파란 싹들이 심겨져 있다. 저 여리디 여린 싹들은 어떤 힘으로 찬바람을 막아서고 있을까?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는 나로서는 경이로울 뿐이다. 수백층을 반듯하게 쌓아올린 저 밭을 보고 있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한 층 한 층올라갈 때마다 농민들은 피땀을 쏟았을 것이다. 피땀으로 얼룩진 논밭에서 나는 왜 멋지다는 감탄사만 연발하는 것일까?
시골농가가 주는 편안함과 낯섦이 마음 속에서 서걱거렸다.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연기 속에서는 나무 타는 냄새와 갓 지은 쌀밥 냄새와 남루하지만 정겨운 어머니의 냄새가 배어져 나온다. 낡아서 귀퉁이 한 쪽이 헐린 흙집에도, 외양간에 갇힌 누런 소에도, 담근 막걸리를 판다고 허름하게 써붙인 나무간판에도 호기심으로 눈길은 가 닿지만, 이제는 정말 호기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나는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랐고, 우리집은 농사를 짓기도 했었기 때문에 여행하며 들르는 농촌은 조금 특별한 느낌이 든다. 마치 설을 쇠러 시골 고향 마을에 왔을 때 느끼는 도시 사람들의 감정이 아닐까 싶다.(많은 사람들이 시골을 고향으로 두지만,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느끼는 시골 고향 마을에 대한 느낌은 남다르지 않을까 한다.) 애틋한 정이 가는 그런 고향 같은 곳이라는 느낌이 들곤 했었는데, 어느 때부턴가 나에게도 그냥 지나치는 여행지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드는 것 같다. 아마도 할머니와 외할머니의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싶다.
흔하게 볼 수 없는 풍경이라는 생각이 들면 연신 사진기를 만지작거리게 되는 것도 사진기를 산 얼마 전부터 생긴 버릇이다. 나도 '마음에 담으면 되지'라고 늘 입버릇처럼 말하던 때가 있었는데... 마음에 담는 것보다 사진에 담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은 왜 하게 된 것일까?
이런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하면서 다랭이마을을 둘러보고 지나쳐왔다. 다시 '남해'의 남서쪽 해안을 빙 둘러서 읍내로 들어왔다. 남서쪽 해안도 이름이 나지 않았을 뿐이지, 가는 곳곳이 절경을 감추고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읍내를 거쳐서 옛날에는 유일한 남해의 관문이었던 아름다운 남해대교를 지났다. 대교를 지나면서 대학 1학년 때 동기들이랑 대교 위에서-물론 밤이었다- 오줌을 누며, '태평양에 물을 보탠다'며 웃고 떠들던 때가 생각이 났다. 돌아오는 길은 아주 수월했다. 평일이라 고속도로도 훤하게 뚫려 있었고, 걱정했던 눈도 쌓이지 않고, 눈(目) 구경만 시켜주고 그쳤다.
남해 여행은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너무 운전에 집중한 탓인지 어깨가 약간 결리긴 했지만, 그것마저도 돌아오는 길에 찜질방에서 풀고 나니... 더 없이 행복했다.
[남해 물건어부림]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일과 해풍을 막기 위해 수백년전 조성한 인공림. 그 때 나무를 심었던 사람들에 의해서 세상은 더욱 살만한 곳이 되고 있지 않을까?
지금은 겨울이라 나무들이 볼품 없어 보이지만, 여름이 되면 무성한 잎으로 제 몫을 충분히 다할 것이니 저런들 어떠랴. 결국 그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할 수 있느냐가 중요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