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구름 그림자를 몰아낼 수 있을까?


   방학이 이제 닷새 지났다. 아직 실감이 안 나는 사람도 있을 텐데, 닷새라니, 꽤 지났지? 지난 번 우리 모임은 학교가 아닌 숲속의 어느 민박집에서, 다른 학생이 야자를 하고 있는 시간이 아니라, 방학의 자유를 만끽하며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을 깊은 밤이었다. 지금 그 밤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하는 아쉬움이 가득이다. 졸리고 멍한 눈빛 탓에 말하지 못한 얘기도 많거니와 너무 많기도 하려니와 너희들의 얘기를 더 많이 들어야 했는데, 하는 마음 가득!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을 건네주며 내가 했던 말, 기억하지? 한 문장, 한 문장 꼭꼭 씹어서 읽어야 한다고! 소설을 쓴 사람이 한 문장도 그냥 쓴 문장이 없다고! 그렇게 읽어야 책 속에 더 깊은 의미를 숨어 있는 것을 알게 된다고! 내 말을 그냥 흘린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나름대로 꼼꼼하게 읽어보려고 애쓴 사람도 있겠지? 그 밤에 했던 얘기들을 통해 구름 그림자의 의미나 허생과 왜냐 선생의 차이, 선재와 윤수의 차이, 또 순석이의 편지와 이경미(K)의 의미까지. 또 적자생존의 논리와 윤수의 항의, 반성문을 쓰는 것의 의미 등, 모든 것들이 그냥 그대로 쓰인 것 같지만 그냥 쓴 문장은 없다는 거, 이 소설을 통해서 배웠으면 싶다. 이걸 모르면 같은 책을 읽고도 조금 아는 것이고, 이걸 찬찬히 살펴서 깨달으면 같은 책을 읽어도 남들과 전혀 다른 책읽기가 되는 것이다.

   그날 있었던 얘기들을 천천히 떠올리면서 다시 한 번 이 책을 읽어주기 바란다. 그 때는 처음 읽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책읽기가 될 것이다. 읽다가 막히면 나에게 가져와서 의미를 묻고 토론해 보는 것도 좋겠다. 또, 읽었으면 책에 대한 내용을 정리해야 하는데, 이 책을 읽고 자신의 학교생활을 진지하게 되돌아 봐 주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나에게 학교는 _________ 다.”라는 주제로 글을 한 편 써 보면 된다.(그럴 사람은 없겠지만, 노파심에서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나는 모두의 글이 어떤 방향으로 쏠리는 것을 무서워하는 사람이다. 자유롭게 자기의 생각을 정리해 볼 기회를 가지는데 의미가 있는 과제라고 믿는다.)

   너희들에게 읽히고 싶은 책이 적어도 300권은 되는데, 앞으로 우린 열 번도 만나지 못할 것 같으니 이 일을 어쩌면 좋으냐? 이건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인 거 같다. 아쉬워도 할 수 없이 방학에 읽을 책 서너 권을 추천해도 이렇다. 이 중엔 같이 읽고 얘기 나누고 싶은 책들이 대부분이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그렇게 하지 못하니까, 꼭 스스로 찾아서 읽어 보도록!! 물론 다 읽고 나면 동아리 활동집에 정리해 두는 건 의무야.

소설 : 한티재 하늘1,2(권정생), 아우라지로 가는 길1,2(김원일), 인생(위화)

인문 : 신문읽기의 혁명(손석춘), 동양철학에세이(김교빈 외), 21세기를 바꾸는 교양(박노자)

예술 : 침묵의 뿌리(조세희),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오주석), 천천히 그림읽기(진중권 외)

과학 : 생명이 있는 것은 아름답다(최재천), 우주와 인간 사이에서 질문을 던지다(김정욱 외), 물구나무 과학(전용훈), 울지 않는 늑대(팔리 모왓)

역사 : 거꾸로 읽는 세계사(유시민), 대한민국사1-4(한홍구), 십자군이야기1,2(김태권, 만화) 

   우리 동아리의 방학 계획을 이 정도에서 마무리 할까 싶다가도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인 너희들을 보면 자꾸 욕심이 난단다. 공부도 함께 하고, 좋은 그림도 같이 보고, 연극도 함께 보고, 문화유적 답사도 같이 다니고, 깊은 산에도 오르고, 스케이트장에도 가고…… 하고 싶은 것 천지지만 모두 다 할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 하겠지? 그럼 이 중에서 한두 가지 만이라도 같이 할 사람을 찾아봐야겠다. 물론, 방학 활동의 선택은 각자의 자유! 아 특별히 지리산에 오르는 날은 확정이야. 8월 21-22일!(예약을 위해 가고 싶은 사람은 8월 5일까지 나에게 귀뜸해 주렴. 가려는 사람이 세 명 이상이면 떠날 거야. 감동적인 여행이 되리라고 믿어^^) 거기에도 구름 그림자가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 마음속의 구름 그림자를 걷어 내 버리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고 믿는다.
 

                                                          7월 25일, 구름 그림자를 몰아내려는 느티나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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